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14일 ‘비선의 그림자- 조작과 진실’을 통해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50년 공직생활을 파헤쳤다. 이날 방송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전국 기준 12.6%의 시청률을 기록, 2주 연속 10%를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박정희 시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50년 동안 숱한 조작사건마다 이름을 올리며, 역사의 굴곡마다 요직을 전전하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자의 흑역사를 10장면으로 모았다.

 

 

1. 유신헌법 기초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문세광의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피살됐다. 체포된 문세광의 굳게 닫힌 입을 열기 위해 정수장학회 1기 출신 젊은 검사 김기춘이 투입돼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김기춘은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승승장구했으며 민주주의 억압과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유신헌법 초안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유신정권의 핵심 주류 라인에 들어간 그는 동료들보다 빠른 속도로 승진했고 대공수사국장이 됐다.

 

2. 1122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사건

중앙정보부의 실권을 장악한 김기춘은 1975년 "북괴의 지령에 따라 모국 유학생으로 위장한 간첩 일당 2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방송에서 강종건씨는 고문과 협박에 강제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해자 강종헌씨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소위 학원침투간첩단을 만들어간 거다"고 말했다. 이들은 36년 만인 2013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독재정권 타도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간첩’을 활용했고, 한국말이 서툰 재일동포 유학생들은 간첩 조작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으며 이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김기춘이었다. 이 사건은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으로 재조명된 바 있다.

 

 

3.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

1991년 김기춘이 법무부장관이었던 시절 전대미문의 사건이 또 일어났다.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다. 이 당시는 노태우 정권이 위기를 맞았던 때이며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시인 김지하, 박홍 서강대 총장 등이 분신을 부추키는 죽음의 세력을 운운하자 이를 절묘하게 활용해 강기훈에게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패륜아라는 누명을 씌우며 정권의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 프레임을 만든 것 역시 김기춘이라는 예측이 다수다.

 

4. 초원복집사건

처음으로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14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11일 법무부 장관을 막 그만 둔 김기춘은 부산 초원복집에서 주요 기관장들과 마주한 뒤 "믿을 데라고는 부산 경남이 똘똘 뭉치는 것 밖에 없다. 민간에서 지역감정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안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했다. 지역감정을 일으켜 김영삼 후보에게 힘을 실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노골적으로 금권선거, 관권선거를 부추기는 발언이었다. 불법 선거운동을 모의한 이 사건은 김기춘에게 치명상이 될 수 있었으나 통일국민당원의 불법 도청을 문제 삼아 사건의 본질을 흐리며 무마시켰다.

 

5. 노무현 탄핵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던 김기춘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공개변론에서 그는 “측근 비리, 실정과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충고해왔지만 오만과 독선, 비민주적 행동은 계속 됐다.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이 무산된 이후에도 “노무현은 사이코다. 자기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고 자제력이 없다. 그러니 나라가 이 꼬라지지”라고 저주를 멈추지 않았다.

 

 

6. 정윤회 십상시 문건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등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기록한 ‘정윤회 문건’ 사건에서는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응천 의원은 검찰 조사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작성, 보고했으나 김기춘이 위세가 막강한 그들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기춘은 이에 대해 "조사하라고 한 적 없다. 보고서가 와서 알았다"고 부인했다. 파괴력이 막강했던 이 사건은 문건 내용보다 문건 유출 과정을 규명하는 데 관심이 집중돼버렸다. 실체적 진실을 부정해버린 초원복집사건의 판박이다.

 

7. 세월호 희화화

2014년 가족을 잃고 힘들어하던 세월호 유족들은 어느 순간 생떼를 쓰는 사람이 돼있었다. 특히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공격의 대상이 됐다. 그해 여름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이 진행되던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족 천막 옆에서 어버이연합이 짜장면을 먹고 일베가 피자를 먹는 행동이 이어졌다. 당시 민정수석을 지냈던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김기춘의 지시로 보이는 표시와 함께 “자살 방조죄, 단식은 생명 위해 행위, 국민적 비난 가해지도록 언론지도”라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직후 보수단체와 일베의 공격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8. 홍성담 화백 외압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하기 위해 세월호 참사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 홍성담 화백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그림을 바꾸라는 지시가 왔다. 김영한 비망록에도 이 내용이 등장한다. 애국단체가 홍성담 화백을 고소한다는 내용이 등장하고 실제로 그날 홍성담 화백은 고발당했다. 홍 화백은 "소름이 끼쳤다. 수석비서관 회의라면 우리나라 권력의 최정점 아니냐. 화가 한 사람 이름을 14번을 거론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내가 뭘 그렇게 큰 죄를 졌나“고 항변했다.

 

 

9. 사법부 통제시도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도 담겨 있었다. 박상옥 대법관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축소 은폐하는데 동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야당의 반대에도 그는 결국 대법관이 됐다. 박상옥 대법관 1년 전부터 청와대는 검찰 출신 대법관을 알아보고 있었다. 대법관 임명은 법무부의 고유권한인 만큼 추천인을 통해 이를 추진하라는 세부상황까지 지시했다. 김희수 변호사는 "삼권분립은 가장 기본적인 권력 구조다. 그걸 무시한 거다. 박 대통령과 공모 하에 한 것인지 김기춘이 독단적으로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범죄다"고 지적했다.

 

10. 문화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에서 역대 최고령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렸던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정윤회 최순실 부부가 비선 실세였다면 그는 공식 실세였다. 국정조사 청문회 후 특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이행을 지시한 인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지목하고 있으며 특검 소환이 임박했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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