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자아가 있니?”

단 한 마디로 안방극장의 온도를 서늘하게 반전시켰다. 화제의 드라마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포털업계 30대 커리어우먼 배타미(임수정)-송가경(전혜진)-차현(이다희)의 우정과 경쟁을 축으로 진행되는 드라마다. 짜릿한 서사의 한 편에는 가공할 내공을 발산하는 40년차 배우 예수정(64)이 있다.

명문가 외동딸로 자라나 남편이 죽고 난 뒤 KU그룹 수장을 맡아 탁월한 경영실력으로 대한민국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통찰력, 정치력, 냉정함, 배포, 노회함에 있어 ‘갑 오브 갑’이다. 부모와 남편 잘 만나 재벌가 안주인으로 호사를 누리며 약자에게 폭언, 폭행 등 갑질이나 일삼는 ‘사모님’들과는 클래스가 다르다.

회사 경영 대신 영화를 선택한 아들 오진우(지승현)에게선 가차없이 정을 뗐다. 계열사인 포털업계 1위 유니콘 이사이자 며느리 송가경의 경우 효용가치가 있기에 수족처럼 부린다. 평소 “가경아”란 호칭은 자애로운 시어머니의 언어가 아니라 애완견이나 장난감을 대하는 시그널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며느리를 향해 말간 표정으로 “넌 왜 자아가 있니?” “넌 꿈이 뭐니?”란 비아냥, “이 집안의 개로 살겠다면서 왜 너를 위해 사니?”란 독설을 서스름 없이 내뱉는다.

은발과 금발이 뒤섞인 도발적인 헤어스타일에 우아하면서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그의 취미생활은 그림이다. 젊은 남자모델 상반신에 직접 문신을 그리는가 하면 작업이 끝나면 “쓰읍~”이란 사인으로 퇴장을 명령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결코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음절에 힘을 줘 긴장을 조성하는 예수정의 대사처리는 묘한 감흥을 자아낸다. 더욱이 같은 연극배우 출신인 전혜진과의 호흡은 구멍이 없으며 퍼런 불꽃이 일렁인다.

사진=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스틸컷

기존 영화와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여성 기업인 그리고 어머니이자 시어머니, 악인의 얼굴을 살 떨리게 그려내고 있는 예수정에 대한 관심이 솟구치고 있다.

고려대 독문과 재학 시절인 1979년, 유신시대의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눈뜨며 고려대 극회 단원으로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졸업과 함께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잠시 활동하다 1984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에서 연극학 석사 공부를 시작한 그는 육아와 박사과정을 밟던 남편 뒷바라지로 자신의 학위 논문까지 포기하며 8년을 독일에서 보냈다.

1991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매년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올랐고 ‘과부들’ ‘벚꽃동산’ ‘세일즈맨의 죽음’ ‘밤으로의 긴 여로’ ‘하나코’ ‘하얀 토끼 빨간 토끼’ ‘신의 아그네스’ ‘늙은 부부 이야기’ 등에 출연하며 눈부신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가장 권위 있는 김동훈연극상(2004)을 비롯해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연기상, 히서연극상,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이해랑연극상을 휩쓸었다.

2003년 장준환 감독의 요청으로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 신하균의 엄마 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후 ‘황진이’ ‘기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뢰인’ ‘비밀은 없다’ ‘터널’ ‘허스토리’에 출연했다. 천만영화 출연작은 ‘도둑들’ ‘부산행’ ‘신과함께1, 2’ 무려 네 편에 이른다. 지난해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행복의 나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S&A 엔터테인먼트 제공

예술가 패밀리의 일원이다. 어머니는 2005년 작고한 여배우들의 대모이자 원로배우 정애란(장수드라마 ‘전원일기’ 최불암의 어머니 역)이며 형부는 중견 탤런트 한진희, 남편은 김창화 교수(상명대 예술대학 학장 역임), 딸은 연극 연출가 김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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