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망똘망한 이목구비의 여배우 최영신(29)이 감성멜로 연극 ‘사랑에 스치다(2월5일까지 대학로 드림시어터)로 4년 동안 간직해온 꿈을 이뤘다. 무대에 오르기 전 대학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긴장을 한 스푼 덜어냈다.

 

 

■ 공연사이트 뒤져 오디션 신청...상처 많은 독신주의자 역할 매료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 금방 막공(마지막 공연)까지 오게 됐어요. 아쉬움 반, 시원함 반? ‘죽이는 수녀이야기’ 이후 4년 만에 마음의 고향과 같던 연극에 출연한데다 직접 공연 오디션 사이트를 찾아 지원한 작품이라 의미가 깊고 애착이 커요.”

지난해 가을 소속사에서 나온 뒤 누군가의 지시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연기활동을 해보고 싶던 찰라, 사이트 뜬 여러 오디션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에 스치다’의 경우 오디션용 대본이 첨부파일로 있었는데 한 신만 봤음에도 여주인공 은주의 대사들에 공감이 갔다. “어 뭐지?”

“같은 학교에서 만난 수학교사 동욱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자신의 속내를 연극톤이 아니라 영화처럼 진솔하게 털어놓는 면이 좋았어요. 텍스트만 보고도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지원하게 됐죠. 연습을 시작했을 때 잊고 있었던 점들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한편 시작하는 느낌이었어요. 초연부터 동욱 역을 맡은 오동욱 배우께서 매끄럽게 리드해주셔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죠.”

학교 기간제 영어교사 은주는 주관 뚜렷하며 밝고 씩씩한 여자다. 하지만 부모님에게서 받은 상처, 첫사랑 선배에게 고백 한번 못해본 채 떠나보낸 사랑의 상처로 인해 독신주의자로 살아간다. 그러다 동욱과 만나 새로운 사랑으로 아픔을 극복하며 한 단계 성장한다.

 

 

■ 자신과 비슷한 구석 많아...성현아와 2인2색 은주 연기

“처음엔 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고 남들 앞에선 그렇지 않은 척하는 점에서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서 은주를 표현하려다 보니 어려움에 많이 직면하게 되더라고요. 밝게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내면은 그러지 않은 게 입체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던 거죠.”

은주는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의지하려기보다 스스로 갇혀 해결하는 스타일. 최영신 역시 예전에 그런 면이 있었다.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을 ‘사랑에 스치다’ 대본을 읽으면서, 은주를 연기하면서 인정하고 털어냈다. 성찰과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은주 캐릭터는 컴백한 여배우 성현아와 번갈아가며 연기하고 있다.

“정형석 연출님께서 각자에 맞는 은주로 맞춤형 캐릭터를 만들어주셨어요. 현아 언니가 더 자연스럽고 성숙한 느낌이라면 전 조금 더 밝고 쾌활하죠. 술 마시는 장면이나 대사도 약간씩 달라서 같은 연극이지만 2편의 공연을 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동일한 건 영화 같은 연극이란 점이고요.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기보다 자연스럽게...잔잔하게 스며드는 게 장점이거든요.”

 

 

■ 연극 '나생문' 본뒤 배우 꿈...드라마 '시크릿가든' 출연 후 유명세

경기도 평택에서 나고 자란 최영신은 고교시절, 서울 대학로로 반 소풍을 나오게 돼 우연히 소극장 연극 ‘나생문’을 관람했다. 생애 첫 연극 구경이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접한 연극은 희망의 한줄기 빛이었다.

“다닥다닥 앉아서 보는 내내 배우들에게 압도돼 그 시대, 공간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에게 ‘서울의 연기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부모님이 완강히 반대했음에도 ‘배워보지도, 시도해보지도 않고 못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 같다’ ‘배워보고 아니면 그만 두겠다’고 울며불며 설득했죠. 처음으로 반항을 해본 거예요. 간신히 허락을 받아서 학원에 다니고 결국은 대학(명지대 연영과)에까지 진학하게 됐어요.”

재학 당시 아서 밀러의 ‘시련’,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 참여하며 연기력을 벼렸으나 졸업 후 영상 쪽으로 물꼬가 트였다. 첫 드라마는 사극 ‘거상 김만덕’이었고 이어 ‘시크릿 가든’에 출연하게 됐다.

극중 뮤직비디오 감독 김사랑의 조감독으로 오스카 음원유출사건 터졌을 때 같이 연루된 인물이다. 비중이 큰 역할이 아니었음에도 이내 평택의 유명인사가 돼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다. 이후 드라마 ‘마이더스’ ‘천번의 입맞춤’ ‘도플갱어’, 영화 ‘워킹걸’ ‘극적인 하룻밤’ ‘두번째 스물’ 등에 나왔고 오는 2월24일부터 방영되는 박보영 박형식 주연의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시청자와 만날 예정이다.

 

 

■ 마로니에 고시텔에 둥지...초보 1인가구 '혼술'예찬

공연을 위해 한시적으로 평택의 본가에서 나와 대학로 마로니에 인근 고시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랑에 스치다’ 출연, 초보 1인가구가 된 이후 바뀐 라이프 스타일 가운데 하나가 주량과 혼술이다.

“예전엔 술을 마시면 온몸이 빨개져서 주량이 소주 반병이었는데 지금은 한 병 정도로 늘었어요. 혼술은 아예 모르고 지냈는데 이젠 왜 사람들이 혼술 하는지 알게 됐어요. 공연을 끝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마음이 헛헛해지더라고요.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술이 땡기고요. 마시면 잠시 모든 걸 잊게 되면서 편안하게 잠자게 돼요.”

어렵게 무대의 길을 다시 뚫은 만큼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다. 기회가 되면 장진 감독의 페미니즘 연극 ‘꽃의 비밀’, 감성 옴니버스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참여하고 싶다. 꼭 정복해야할 버킷리스트다.

“고인이 된 장진영 배우님을 너무 좋아해요. ‘청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잊을 수 없는 영화들이고요. 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동시에 표현한 배우라 많은 영감을 제게 줬어요. 진경, 라미란 선배님처럼 무대에서 꾸준히 내공과 실력을 쌓아 평생 가는 연기자가 되고 싶고요. 선배님들이 제겐 좋은 자극이자 훌륭한 교과서예요.”

‘사랑에 스치다’가 끝나면 3월 말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2주간 열리는 ‘2017년 신춘문예 단막극전’에 참여한다. 당선작 7편 가운데 정형석 연출의 50분 분량 단막극 ‘루비’에 일찌감치 캐스팅돼서다. 방송사 교양프로 녹화에 초대된 마술사 이야기로, 최영신은 PD 역할을 맡았다.

“새해의 출발이 좋아서 2017년이 기대가 돼요. 대중이 저를 보면 행복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게 신년 소망이에요. 슬픈 캐릭터를 연기하든 기쁜 캐릭터를 하든 제가 주는 감정으로 인해 치유가 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가 행복하게 잘 살아야할 것 같아요.”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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