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의 휴식 따윈 없다. 대신 프랑스 코미디 연극 ‘톡톡’에서 일본 라이선스 뮤지컬 ‘꽃보다 남자’로 무대 위 널뛰기를 하며 구슬땀을 뿌리는 중이다. 꽃남 배우 김지휘(33) 스토리다.
■ 연극 '톡톡'서 대칭집착증 환자 밥 열연
30일 마지막 공연을 앞둔 연극열전6의 네 번재 작품 ‘톡톡’(대학로 티오엠2관)은 강박증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6명 환자들의 이야기로 국내 초연되는 프랑스 코미디다. 스트레스가 일상화된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김지휘는 모든 사물의 대칭이 맞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는 대칭집착증 밥으로 출연한다.
“지금까지 대본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다른 행동들도 하는데 혜화역에서 집으로 가는 내내 대본에만 집중했던 작품이에요. 처음이었어요. 너무 재밌고 신선해서 꼭 하길 원했는데 운좋게 캐스팅이 됐죠.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해왔는데 ‘모범생들’ ‘헤이, 자나’와 함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에요. 요즘은 연극에 많이 끌려요.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되는 호흡, 집중력이 가장 큰 매력이죠.”
탄탄한 대본을 가지고 리딩작업만 1개월을 투입했다. 움직임이 많지 않은데다 등장하면 퇴장이 거의 없는 작품이라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했다. 난생 처음 코미디 연극에 도전했지만 대본의 힘으로 잘 묻어갈 수 있었다.
“누군가를 웃기는데 소질이 없는데 워낙 상황이 웃겨서 코믹극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어요. 또한 서현철 최진석 김진수 김대종 선배님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예전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싶으면 긴가민가 하는 상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는데 선배님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시더라고요. 진지하게 베스트를 다해야 찾아지는 것들이 있음을 깨우쳤죠. 응원도 많이 해주셨고요. 기회가 되면 또 다른 희극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 뮤지컬 '꽃남' 츤데레 재벌상속자 츠카사...이창섭 켄과 3인3색 연기
극과 극 비교체험이다. ‘톡톡’을 끝낸 뒤에는 오는 2월24일 개막하는 국내 초연 뮤지컬 ‘꽃보다 남자’(5월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F4의 리더인 재벌가 상속자이자 안하무인 츤데레 츠카사로 무대에 오른다. 한참 연하인 아이돌그룹 비투비 이창섭과 빅스의 켄과 번갈아 가며 츠카사를 연기할 예정이다.
“‘톡톡’과는 완전히 반대예요.(웃음) 잡초 같은 생명력의 서민 여학생 츠쿠시(제이민 이민영)의 부모님 역할을 맡은 배우 세 분을 빼고는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아요. 오랜만의 대극장 공연이기도 하고요. ‘톡톡’에서 심도 깊게 선배님들과 치열하게 호흡을 맞췄다가 만화 원작의 로맨스 뮤지컬에서 아이돌들과 같이 하게 돼 신기해요. 연습 초반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아시아권에 ‘F4 열풍’을 지핀 ‘꽃보다 남자’는 만화로도 유명하지만 국내에선 이민호 구혜선 주연의 드라마로 명성을 떨쳤다. 대중들은 구준표 역 이민호와 비교를 할 수밖에 없다.
“원작과 다르다고 해서 드라마는 보질 않았어요. 만화는 처음 탐독했고요. 제가 연기하는 츠카사가 만화 속에서 나온 듯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랑을 몰랐던 그가 츠쿠시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기 멋대로인 남자가 변화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려운 점은 만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현실에 적용하기 난감한 내용들이 많아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유치하고 오글거리지 않을까? 고민이지만 그래도 그 느낌으로 가야겠죠.”
30대 배우가 고3 역할을 하는 비애(?)다. 하지만 워낙 동안이라 연극 ‘모범생들’,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에서 연이어 10대 역할을 매끄럽게 완수했다.
“이제 어린 역할은 그만해야지 했는데 또 하게 됐어요. 한때는 학생 역할을 많이 맡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죠.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 ‘빨리 늙고 싶다’고 빌기도 했고요. 하지만 분명 동안 이미지가 작품에 선택되는데 있어 도움을 줬고 또 늙는다고 변하는 건 아니라서 잘 활용을 해야지 싶어요. 캐릭터를 폭 넓게 오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 김지휘 오종혁 라이언...2000년대 남성그룹 출신 '대학로 트로이카'
‘꽃보다 남자’는 아이돌 향연이라 불릴 정도로 국내 정상급 보이·걸그룹 멤버들이 대거 참여한다. 김지휘 역시 20대 초중반 무렵 남성그룹 활동을 했기에 지금의 아이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별할 것 같다.
“저는 그룹이 망해서 군제대 후 공연계에 진입했고, 이 친구들은 현역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거니 틀리죠.(웃음) 하지만 내가 뮤지컬을 처음 할 때 저런 모습이었겠구나란 생각을 해요. 지금 아이돌들은 활동을 많이 해서인지 습득력이나 센스가 좋아요. 때가 묻어있지를 않아서 연기를 처음 해도 오히려 생동감 있게 보이고요. 매력적인 부분이 충분히 있어요. 그들로부터 배울 게 또 있더라고요.”
김지휘는 2000년대 활동했던 남성그룹 출신 배우 오종혁, 라이언과 친하게 지낸다. 비슷한 궤적을 밟아온 선배들이기 때문이다.
“저보다 두 살 위인 종혁이 형과는 공연해본 적은 없지만 저보다 훨씬 잘 하고 계셔서 많이 보고 배울 수 있어요. 형도 요즘엔 뮤지컬보다 연극에 치중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저랑 한 살 터울인 라이언 형과는 뮤지컬 ‘비스티 보이즈’를 같이 해서 친해졌고요. 파란과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했기에 코드가 잘 맞아요. 형도 연기에 욕심이 생기다보니 정극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고요.”
■ 2011년 '페임' 이후 5년간 스무 작품 출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다. 중학생 시절엔 브레이크 댄스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았다. 진로 고민을 하던 고3때 아현직업학교를 지망하려던 찰라 동기인 김명훈(울랄라세션 보컬)으로부터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말에 미용학원에 등록, 자격증을 따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회의가 들어 자퇴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2004년 Mnet ‘아이믹 오디션 대작전’ 2기 최종 2인에 들어 아이즈란 4인조 팀을 만들어 싱글을 냈고 이듬해 더 스토리로 이름을 바꿔 5~6개월간 활동하다 SS501이 나오는 통해 활동을 접었다.
군 입대해서는 다행히 군악대에 배치돼 계속 노래를 하고 악기도 배우며 행복하게 지냈다. 제대 후인 2011년 겨울. 연기가 하고 싶어졌다. 개인교습을 받으며 뮤지컬 ‘페임’ 오디션에 도전했다가 군악대 당시 연마한 실력을 인정받아 트럼페터 역할에 캐스팅이 되며 공연계로 발을 내디뎠다. 당시 주인공은 ‘팬텀싱어’ 고은성을 비롯해 최주리 리나였다.
“전혀 모르던 세계라 목도 많이 쉬고, 연기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그런데 음악감독님이 추천해줘 뮤지컬 ‘커피프린스 1호점’ 오디션에 합격하고 꼬리를 물면서 작품 수를 늘려가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대학로에 이렇게 와있게 됐고요. 지난해 말 ‘톡톡’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니 팬이 데뷔 5주년이라고 꽃다발을 주시더라고요. 세어봤더니 무려 스무 작품이나 했어요.”
‘총각네 야채가게’ ‘햄릿 더플레이’ ‘마이 버킷리스트’ ‘모범생들’ ‘아가사’ ‘비스티 보이즈’ ‘헤이, 자나’ ‘락 오브 에이지’ ‘미남이시네요’ ‘커피프린스 1호점’...연극과 뮤지컬, 대극장과 소극장을 누빈 그의 소중한 흔적들이다.
■ 원츄 '모범생들' '헤드윅' '빨래'
2015년과 지난해 소처럼 열일 했던 배우라 새해의 넓은 그라운드는 채우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허허벌판이다. 위시리스트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올해가 ‘모범생들’ 10주년이에요. 기념 무대가 올려진다면 넉살 좋으면서 겁 많고 말 많은 박수환 역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연극으로는 ‘프라이드’의 게이 청년 올리버, 뮤지컬로는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록 뮤지션 헤드윅과 ‘빨래’의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이 탐나고요. ‘빨래’는 작품이 너무 따뜻해서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라 공감을 많이 하시며 재미나게 감상하실 테니까요.”
“지금은 연기하는 게 너무 좋다”는 그는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훨씬 행복하다”며 대학로에서의 초저녁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그리곤 '꽃보다 남자' 연습실로 쌩~줄달음질쳤다.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