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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검블유’ 지승현, 13년의 무명이 발효시킨 진한 향기

삼십대의 끝자락에 선 배우 지승현이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로 인생작을 다시 썼다. KU그룹 막내아들 오진우 역을 맡아 정략 결혼한 아내 송가경(전혜진)을 향한 순애보로 ‘오진우 앓이’에 빠지게 만들었다. 선 굵은 훈훈한 마스크와 중저음의 목소리, 수트가 어울리는 신사 이미지가 삼청동 인터뷰 장소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검블유’ 세 커플 가운데 유일한 기혼자 커플이지만 가장 어색하면서도 풋풋한 로맨스 행각이 이채로웠다. 늘 적정 거리감을 유지한 채 등장한 커플이었다. 극 초반엔 비즈니스로 맺어진 쇼윈도 부부로 보였지만 불행으로 점철된 10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발효시긴 이해와 애정의 온도는 가장 뜨겁게 다가왔다. “송이사와 저, 보기보다 유대가 꽤 깊습니다. 부모가 있지만 버려졌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당신이 나를 죽인다 해도 괜찮아. 그래도 난 응원할게”란 오진우의 대사가 이를 입증한다.

영화 ‘사바하’ ‘친구2’ ‘기술자들’ ‘보통사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태양의 후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하녀들’ ‘조선총잡이’ '이판사판'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다크한 이미지를 굳혀온 그에게 ‘검블유’는 배우 지승현을 주연의 양지로 이끈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종영 다음날 마주한 얼굴엔 설렘, 자긍심, 기대감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간 어두운 역할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밝은 사람이다. 친한 감독님들은 코미디를 권유하곤 하셨다. 그래서 갈증이 심했었다. ‘태후’를 함께했던 권도은 작가님이 드라마 끝나고 만난 자리에서 나로부터 재벌 2세의 모습을 봤다고 하시더라. 결국은 오진우 캐릭터를 내게 건네주셨다. 자기감정을 내보이긴 하지만 이런 듯 저런 듯, 긴 듯 아닌듯한 특유의 말투가 있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말투도 있고. 작가님이 공들여 대사를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진=tvN '검블유' 스틸컷

대본에 이미 상황적 부분이 명료히 설정돼 있었다. KU그룹 총수인 어머니(예수정)가 가경을 필요로 해 정략 결혼시켰기에 아내에게 다가가면 어머니로부터 약점 잡힐 수 있기에 거리감을 둬야만 했다. 오랜 세월과 함께 쌓인 사랑은 중후반부터 보여지기 시작한다. 직절적인 표현이 드러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짝사랑이라도 해야겠네”란 대사로 정점을 찍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경에게 하는 대사는 괄호 속 ‘나는 널 끊임없이 사랑한다’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16회 내내 동일한 대사를 반복한 느낌도 든다. 처음으로 공연하게 된 (전)혜진 누나가 연기나 집중력이 워낙 좋으셔서 내가 준비했던 거를 100퍼센트 표현할 수 있었다. 선배한테 의지해서 연기했다. 연기라는 게 상대 배우와 대사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기운과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하니까 진심을 다하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면 절로 편해지고 베스트가 나오게 마련이다. 누나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검블유’는 국내 드라마 역사에서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다. 서사의 중심에 여성‘들’을 견고히 세운 점부터 시작해 견고했던 성 역할의 반전을 용감하게 밀어부쳤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터넷 공간 및 포털의 빛과 양지, 국가의 통제와 개인의 자유, 차별과 편견에 대한 메시지를 흩뿌렸다.

“작품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권해효 선배님의 ‘옳은 방법으로 산다고 해도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기일 수 있다’는 대사와 임수정 선배가 웹툰작가에게 모욕당한 후배 여직원에게 자신의 고가 가방을 건네주며 위로해줬던 대사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젊은 세대에게 현명하게 헤쳐나가야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는 메시지들이 빛났다. 단순히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라서 더욱 이 작품이 좋았다.”

20대와 30대, 불처럼 타올랐던 푸르른 시절을 ‘무명’의 딱지를 껴안고 살아왔던 지라 더욱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릴 때는 ‘난 잘 할 수 있는데 왜 기회가 없지?’란 좌절감, 분노에 많이 휩싸였다. 단역, 조연, 주조연으로 조금씩 몸집이 커가는 역할을 경험하면서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인간의 종착지는 누구나 다르니까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가자란 결론에 이르렀다. 지난 13년, 천천히 걸어왔던 시간들이 앞으로 살아가고 연기하는 데 도움되는 시간이었음을 감사히 여긴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그게 자양분이 됐다.”

진짜 같은 ‘현실연기’를 추구한다.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선배 이정은과 공연했을 때 바느질을 하면서 대사를 치는데 ‘웅얼웅얼’ 일상 그 자체라 경탄하며 “누나는 어떻게 연기를 그렇게 진짜같이 해?”라고 물었다. 처음부터 인기를 얻으며 스타로 군림했던 것이 아니라 알바를 전전하며 삶의 한가운데서 고생을 했던 경험이 힘을 빼고 사실적인 연기를 하는 원동력임을 절감했다.

‘검블유’를 촬영하면서 상대 배우의 기가 막힌 연기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실수를 한 경험마저도 유쾌하단다.

“실검 1위에 오른 배타미가 이를 사주한 오진우의 사무실로 찾아와 따지는 신이었는데 대사 분량도 많고 아주 감정적인 장면이었다. 임수정 선배의 연기에 눌려버렸는지 대사가 나오질 않았다. 두 번째도 안 나왔었다. 혜진 누나와 첫 촬영 때도 대사가 매끄럽게 나오질 않았었고.(웃음) 예수정 선배님과 혜진 누나, 저 셋이서 이혼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에서도 두 여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배틀에 넋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하는 선배들과 함께해서 나도 탄력을 받았던 현장이었다.”

올가을 JTBC 액션사극 ‘나의 나라’로 시청자와 만난다.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는 뛰어난 무관이자 명석한 두뇌의 전략가 박치도 역을 맡아 묵직한 카리스마를 가동한다.

“‘검블유’랑 동시에 촬영해서 잠도 못 자는 강행군이었다. 사실은 너무 행복했다. 현장에 있는 시간을 목말라했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많은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다. ‘검블유’에서 로맨스를 보여줬다면 이번엔 양세종과 브로맨스를 보여준다. 상관의 아들인 양세종을 발견한 뒤 삶의 지혜,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등을 알려주며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오랜만의 사극이라 액션스쿨에 다니고 승마와 활쏘기 연마를 했다.”

앞으로 진한 멜로를 비롯해 그동안 미처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다. 재미나는 이야기였으면 한다. 지금의 나이에 몸담을 수 있는 형사부터 나쁜 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배역을 쉼 없이 하기를 욕망한다. 20대 후반에 고교생 역할(영하 ‘바람’)으로 데뷔한 뒤 청춘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기에 더욱 강렬하다.

■ Who is 지승현

명문 양반가 종가가 많이 자리한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다. 10세에 연기를 꿈꿨으나 부모님의 반대에 가로막혀 지내다가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경희대에 진학하며 상경했다.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영어를 배워야겠단 생각에서 영문과를 선택했다.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공부했다. 영화가 하고 싶어 대학시절 연기학원에 다녔다. 학원 강사들 대부분이 연극배우들이었던 터라 연극 ‘유랑극단’, 뮤지컬 ‘정조대왕’ 등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숱한 드라마, 영화에서 단역, 조연을 전전했던 그가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 2017년 후쿠오카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저예산 독립영화 ‘퍼퓸’이다. 살인사건에 휘말린 촉망받는 청년들의 멘토이자 기러기아빠 도준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연기 안팎으로 그를 성장시켜준 작품으로 꼽는다.

사진=바를정 엔터테인먼트 제공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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