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이끈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어제(31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강봉균 전 장관은 3년 전부터 췌장암 투병을 하며 지난해 11월 30일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보고회에서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최근 췌장암이 급속히 악화돼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으로는 부인 서혜원(71)씨와 아들 문선(43)씨, 딸 보영(42)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로, 장지는 전북 군산 옥구읍에 위치한 가족묘다.

그럼 강 전 장관이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췌장암 투병중 별세한 강봉균 전 장관. /페이스북

◆ DJ정부 시절 경제 브레인 역할

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그는 서울대 상대에 늦깎이로 입학하고서 행정고시 합격을 통해 관가에 발을 디뎠다.

노동부 차관과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거쳤고 김대중(DJ)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 재경부 장관 등 요직에 중용된 ‘경제 브레인’으로 통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 경제가 몸살을 앓던 1999년 재경부 장관을 지내면서 재벌 개혁,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을 이끌었다.

 

◆ 16·17·18대 국회의원 활동

2002년 8월 8일 재보선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금배지를 달았다. 같은 해 대선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의 경제 분야 공약을 주도했다. 이후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다. 16대 재보선 당선에 이어 17∼18대 내리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대한 대안을 전파하기 위한 모임인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으며 경제 원로로서 활동해왔다.

 

강봉균 전 장관과 부인 서혜원 여사. /페이스북

◆ 작년 총선때 새누리당 입당 ‘변절자’ 비난도

지난해 4·13 총선 당시 새누리당에 입당해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내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 산업은행 채권을 직접 인수하는 내용의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내던지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경제 원로로서 언론 등을 통해 내수·수출 동반 둔화, 저성장 고착화 등 경기 난국을 헤쳐나갈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지난해 9월에는 2년 임기의 대한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 마지막 ‘코리안 미러클 4’ 집필 

그의 마지막 대외 활동은 지난해 11월 30일 열린 ‘코리안 미러클 4’ 발간보고회 행사다. 당시 그는 “정치적 안정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 정치적 불확실성만 제거하면 예전의 잠재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코리안 미러클 4’는 1997년 외환위기 전후의 어려움과 극복과정을 당시 경제수장들의 증언을 통해 전한 육성 기록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금융기관은 타율적 준관치체제에서 자율적 경쟁체제로 하루빨리 전환돼야 한다. 노동개혁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과보호 장벽을 낮춰야 한다” 등 조언을 내놨다.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한 사령탑으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작은 지혜라도 후배에게 전하기 위해 이 책의 편찬위원장을 맡으며 집필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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