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를 보면 1998년 개봉한 ‘퇴마록’이 떠오를 수 있다. ‘퇴마록’에서 안성기는 박신부 역을 맡아 검은 옷을 입고 안경을 착용하며 포스를 뿜어냈다. 21년 뒤 ‘사자’에선 라틴어를 쏟아내는 안신부 캐릭터로 악을 물리치지만 가장 평범한 신부, 아니 사람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박서준, 우도환 등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안성기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연기를 펼쳤다.

안성기에게 ‘사자’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데뷔 62년차 배우인 그가 못해본 영화가 있을까? 오컬트 장르 속에 액션, 유머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사자’는 그에게 신선한 작품이었다. 70세를 바라보는 대배우가 ‘사자’에 홀린 건 안신부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그는 안신부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았다.

“제가 ‘사자’에서 맡은 안신부라는 캐릭터를 보시고 영화 ‘퇴마록’을 생각하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퇴마록’과 ‘사자’에 등장한 신부는 정말 다른 캐릭터죠. 이번에 안신부를 연기하면서 처음 신부 캐릭터를 맡은 기분이었어요. 특히 김주환 감독이 안신부 역에 저를 염두해두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니 정말 고마웠죠. 안신부를 보면 진지함과 부드러움, 따뜻함이 공존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다양한 모습을 연기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안신부가 가진 매력이었죠.”

“안신부는 늘 실패만 겪은 사람이에요. 구마 의식을 치를 때도 용후(박서준)가 없었으면 이미 죽었을 거예요. 마음은 굉장히 약하지만 신에 의지하고 신을 믿으면서 악령을 물리치려는 강인한 사람이죠. 어떻게 보면 아버지를 잃은 용후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죠. 하지만 일부러 안신부를 아버지처럼 보이게 만들진 않았어요. 둘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지길 바랐죠. 안신부에게서 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었어요. 안신부가 유머를 던질 때는 다 제 모습 같았거든요. 특히 용후와 짜장면 먹을 때 랩을 나무젓가락으로 벗겨내는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신이나더라고요.”

안신부는 신을 믿지 않지만 악을 물리칠 힘을 얻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를 만나 ‘검은 주교’ 지신(우도환)을 잡기 위해 나선다. 용후가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가지고 있어 안신부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안신부는 영화에서 정말 친근한 옆집 아저씨같은 이미지를 드러낸다. 특히 용후와 대화를 하며 장난을 치는 장면은 진지함으로 가득찬 ‘사자’에 분위기 환기를 시켜준다.

“박서준씨가 맡은 용후와 안신부가 맥주를 마시다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아재 개그’라고 하는 유머를 던지잖아요? 제가 즉흥적으로 내뱉은 게 많았죠. 김주환 감독이 그 장면에서 용후와 안신부가 더욱 가까워지길 바랐던 거 같아요. 제가 맥주 한두 잔 먹으면 얼굴이 빨개져요. 진짜 술먹은 것처럼 연기를 했죠.(웃음) 현장에서 저보다 선배가 없다보니 젊은 사람들의 유머코드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어요. 대화를 엿들어보기도 하고 무엇을 즐겨하는지도 알아보려고 했죠. 그렇게 해도 젊은 감각을 따라가기 어렵더라고요.”

“박서준씨는 실제 아들 같았죠. 현장에서 정말 편하게 지내서 빨리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할 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했어요. 웃음기 없으면 냉정하고 서늘한데 웃으면 그렇게 천진난만할 수 없어요. 백치미도 있고. 최우식씨는 특별출연이라 많이 마주치진 못했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려는 모습이 엿보였어요. 솔직히 최우식씨 대사 절반 이상이 라틴어였을 거예요. 그걸 제대로 소화하려고 엄청 노력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겠죠.”

실제 가톨릭 신자인 안성기는 ‘사자’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소품 하나부터 대사 하나까지 눈여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엄청난 분량의 라틴어 대사를 젊은 배우도 하기 힘들 정도로 느껴졌지만 결국 해냈다. NG도 한번 내지 않았다. 그의 노력이 ‘사자’와 안신부라는 캐릭터에 고스란히 담겼다.

“제가 생각해도 안신부 역을 위해 라틴어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시간만 나면 계속 중얼거렸으니까요. 안신부가 마귀들과 맞불을 두며 싸우니까 마냥 라틴어를 중얼거리면 안 되겠더라고요. 진짜 싸우는 것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안신부를 연기할 때 라틴어가 정말 중요했어요. 이 많은 대사를 번역하는 것도 힘들고 뜻을 알려고 하면 머리 아프죠.(웃음) 그냥 우리말로 발음대로 써서 달달 외웠어요. 촬영하다가 대사를 틀리면 중간부터 못해요. 배우 인생에서 이렇게 대사를 많이 외우긴 처음이었어요.”

“저는 무서운 영화를 잘 못 봐요. 하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영화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정말 궁금했죠. 성수가 담긴 병이 보통 플라스틱으로 돼 있거든요. 영화에서는 유리병으로 해서 납으로 된 조각을 붙였더라고요. 정성들여 아주 잘 만들었어요. 그런 포인트들이 영화의 디테일을 살렸죠. 저는 날마다 성호를 그으며 사니까 다른 배우보다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보통 기도할 때 양손바닥을 마주대는데 저는 깍지를 껴요. 영화에서도 제가 평소 하던대로 신자의 모습을 드러냈죠.”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