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 비욘세' 정선아에게 새로운 인생 캐릭터 레이첼 마론이 더해졌다. 

새해 공연가를 휩쓸고 있는 뮤지컬 '보디가드'(3월5일까지 LG아트센터)는 화려한 무대 뒤에 드리운 톱스타의 사랑과 인생을 그린다. 지난해 12월 개막한 이 작품에서 정선아는 영화 속 휘트니 휴스턴이 맡았던 슈퍼스타 레이첼 마론 역을 맡았다. 원작의 주인공 못지 않은 카리스마와 성량으로 관객을 압도한 그녀를 2월의 첫날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Q. 여태껏 공연 한 무대 중에 가장 정신없는 뮤지컬이라고 들었다.

A. 매 장면 나올 때마다 의상을 바꾼다. 분장실에 못들어가고 무대 뒤에서 주로 해결했다. '위키드' 때도 그랬지만 이 작품은 의상, 음향, 헤어 크루들이 두 명씩 붙는다. 머리를 하면서 옷도 갈아 입는데 사람이 많다보니까 더 정신이 없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한 곡만으로도 벅찰 것 같아서 처음에는 이 모든 걸 못할 줄 알았는데, 사람이 막상 그 순간이 오면 다 하게 되더라. 이번에는 내가 생각했던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다. 이런 작품을 이런 때에 만나게 됐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감사하다.

Q. 영화 '보디가드' 속 휘트니 휴스턴의 연기 중 어떤 부분을 참고했는지?

A. 디바의 삶에 대해서 많이 고찰을 했던 것 같다. 레이첼 마론이라는 여자는 당대 최고의 디바지만 대중이 모르는 자신만의 삶이 존재한다. 그 중 레이첼이 아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Greatest love of all'을 탄생시키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정말 우리가 그저 듣기만 하는 노래가 아니라, 그 가사 하나하나를 아들과 나에게 포커스를 둔 그 감정을 노래하려 했다.

Q.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로서 디바 레이첼에게 느껴지는 동질감도 있을 수 있겠다.

A. 남들에겐 부러움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지만 무대 아래에선 그저 싱글맘이고 스토킹을 당해서 무서워하고, 어떤 남자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하는 가녀린 여자의 마음이 우리 배우들에게도 있지 않나 싶다. 무대 위에선 박수 받으면서 내려오는데 무대 아래에선 그저 일상이다. 우리도 밥 많이 먹고, 화장 안할때는 집에서 TV 보고 그런 모습들이 다 똑같다. 레이첼의 화려한 삶 이면들이 나와도 상당히 비슷해서 이런걸 표현하기는 쉽겠다 생각을 했다.

 

Q. 아직 미혼인데도 모성애 연기가 잘 우러나온 것 같다.

A. 이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돼서…(웃음). 우리 뮤지컬에도 아이들이 세 명이나 되는데 다 너무 귀엽고 예쁘다. 이 뮤지컬을 하면서, 내 가정이 있다고 생각할 때 엄마가 될 준비가 됐을지 생각을 많이 해봤다. 이전에는 모성애를 연기할 때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느끼려고 했다면 이젠 그런걸 떠나서 아이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최정원 선배님도 그 부분에서 감동을 받아 우셨다고 말슴 하시더라. 까마득한 후배지만, 선배님의 그런 말씀을 들으니까 감동이었다. 

Q. 레이첼과 언니 니키의 관계가 좀 더 풀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A. 공연이 끝나고 레이첼이 아닌 니키의 삶은 어떨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자매애를 표현한 부분이 좀 더 있었으면 했지만, 주고받는 대사가 없어도 나름의 해석을 한 후에 자매가 만나는 장면을 꽤 두었다. 관객 분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실 수도 있는데, 니키가 "이런거 어때?"하고 제안할 때면 레이첼이 기분 나빠하는 모습 등… 그런 작은 디테일에서 둘의 관계성을 좀 드러내려고 했다. 레이첼은 본래 생각도 하기 전에 솔직하고 화통하게 말하지만 니키는 오히려 상처받는다든지, 니키가 레이첼에 대해 얘기할 때에도 그런 소스들을 구체화시키려고 했다.

 

Q. 보디가드를 앞두고 참고한 공연은?

A. 레이첼이 가만히 서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뮤지컬 배우이다 보니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춤을 추면서 일반 사람으로서 연기를 하지, 가수 역이 아닌 이상 핸드마이크를 잡고 하는 신은 많이 없지 않나. '보디가드'를 준비하면서 휘트니 휴스턴의 라이브 무대를 많이 참고했고, 비욘세를 비롯한 댄스 가수들의 애티튜드를 습득하려 많이 보고 들었다. 

Q. 보디가드인 프랭크 파머 역 박성웅과 이종혁과의 호흡은 어땠나?

A. 성웅 오빠는 무대에서 같이 연기를 하고 있으면 떨린다. 무대 위에서 대사를 한마디 한마디 하셔도 그게 가슴에 팍팍 박힌다. 뮤지컬은 처음이라 화술이 좀 다를 수도 있을텐데 계속 무대를 해온 분처럼 또렷한 발성을 자랑한다. 또 가사랑 대사가 너무 많다보니 내가 가사를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근데 오빠는 당황하지 않고 베테랑처럼 나를 에스코트를 해주시더라. 종혁오빠는 워낙에 뮤지컬 많이 하셨고 능수능란 하셔서 내가 척하면 오빠가 척하는게 있다.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고. 둘 다 누구 하나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보디가드 같아서 심쿵하게 만든다.

Q. 명절 연휴에도 3일 연속 공연했다던데, 가족 단위 관객이 많아서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다.

A. 공연 나레이터 분이 즐겁게 해주셔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첫 장면인 'Queen of the night'로 등장할 때 관객석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내가 등장하자 관객 분들이 "우와~" 소리를 질러주시고, 어떤 분들은 두 손을 모은 채 보고 계시더라. 명절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그런 분들이 전원 기립해서 신나게 박수치시니까 나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내가 잘했구나 라는 만족감 보다는, 내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관객분들이 마음을 열고 행복하게 즐기는 걸 보고 있노라면 거기서 에너지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Q. '보디가드'는 본래 영국 뮤지컬로 국내에선 초연이다. 장단점이 있다면?

A. 외국 스태프와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그들과의 작업이 잘 맞는 배우가 있고 맞지 않는 배우가 있는데, 나는 너무 좋았다. 성격상으로도 잘 맞고 배울게 많더라. 근데 아무래도 외국 작품이다보니 우리 정서와는 좀 다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단점 같아 보일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단점은 아니다. 공연을 보다 한국적으로 풀다 보면 극이 좀 더 쫀쫀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노래 같은 경우에도 우리말로 가사를 바꿀 때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데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Q. 관객은 3명의 레이첼 양파 손승연 정선아와 마주한다. 트리플 캐스팅 중 유일한 뮤지컬 배우로서 느껴지는 책임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A. 아무래도 그랬다. 트리플은 나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승연씨랑 양파 언니 모두 너무 잘해주시더라. 승연씨는 평소에도 노래를 너무 잘하길래 뮤지컬 해도 잘하겠구나 싶었는데, 공연을 하는 걸 보니 뮤지컬 배우로서 앞으로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 그리고 양파 언니는 워낙 당대 최고의 가수이지 않았나. 노래 잘하고 끼 넘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다 같이 모여있다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됐고, 여러 면에서 나를 좀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해준 것 같다.

Q. 공연이 끝나면 늘 여행을 간다던데, 계획 중인 여행이나 공연이 있나?

A.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다. 이 겨울에 참 힘들었다. 좋은 컨디션으로 공연을 해도 부담감이 컸는데 감기로도 고생을 많이 했다. 앞으로 한달 간 많은 공연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까지 체력 관리를 해서 3월에 성공적으로 끝내면, 좀 더운 나라로 가서 이 모든 짐들을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추후의 공연 계획을 잡진 않았다. 한 달 남은 공연에만 집중을 하려고 한다. 

 

Q. '보디가드' 관람을 앞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관객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즐거운 뮤지컬이다. 원래 뮤지컬을 즐겨보시는 분들은 이 작품 보다 즐기실 수 있으실 것 같고,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러워 뮤지컬을 보지 않으셨던 분들에게도 '보디가드'는 꼭 추천해드리고 싶다. 이 작품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악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뮤지컬이 저 멀리에나 있는 장르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 커튼콜이 너무 즐겁워서 꼭 경험해보셨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추운 겨울에 오셔서 따뜻한 사랑을 받아가셨으면 좋겠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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