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 관한 편견과 침묵을 깨고 통쾌한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연극 ‘프라이드(The Pride)’(이하 ‘프라이드’)가 네 번째로 한국 무대에 올랐다 .

사진=프라이드 공연 모습. 연극열전 제공.

연극 '프라이드(연출 김동연/제작 연극열전)'는 런던을 배경으로 1958년과 2008년의 두 시점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먼저 1958년, 필립(김주헌, 김경수)과 실비아(손지윤, 신정원) 부부의 집에 초대받은 작가 올리버(이정혁, 이현욱)는 필립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필립 역시 마찬가지지만 감정에 솔직한 올리버와 달리 필립은 동성애가 금기였던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비아는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고뇌한다.

반면, 현대의 세 사람은 사뭇 다른 관계다. 필립과 올리버는 연인 사이지만 다른 남성들과 육체적 관계를 탐하는 올리버의 자유분방함 때문에 이별에 이른다. 둘의 '베프' 실비아는 둘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성소수자 축제인 ‘프라이드 퍼레이드’로 이들을 이끈다. 세 사람은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지난한 싸움으로 목소리를 쟁취한 선구자들을 기억하며 자긍심을 느낀다.

사진=프라이드 공연 모습. 연극열전 제공.

'프라이드'는 두 시대를 교차하며 필립-올리버의 사랑을 다각도로 표현한다. 연극은 비단 성소수자 박해의 역사와 저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필립과 올리버의 사랑과 배신,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결단하는 실비아의 용기를 이야기함으로써 이 극이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1958년의 필립은 올리버에게 "묻어두자"며 동성에 사랑을 느끼는 감정을 부인하고 병원을 찾는다. 의사가 필립에게 던지는 질문은 온통 육체에 관한 것들이다. 그가 느끼는 끌림의 감정에 대해선 관심 없다는 듯, 그런 게 가능하지 않다는 듯 성적 충동을 캐묻다 '교정 치료'를 제안한다.

반면, 2008년의 필립은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어 올리버를 향한 복잡한 마음을 표현한다. 사랑하는 올리버의 외도로 말미암은 증오와 분노, 괴로움과 아픔 등 연인 관계에서 느끼는 자연스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마음을 부정하지 않고 의사에게 고해성사하며 치료법을 찾을 필요도 없다.

사진=프라이드 공연 모습. 연극열전 제공.

분명 전 시대에 비하면 현대가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진일보했다. 그렇지만 한계 역시 지적된다. 현대 시점에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 향한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실비아는 잔뜩 술에 취해 이제 성소수자를 부정하는 건 "후지니까" 그러지 않되 '우리'와 '그들'이라고 선을 긋는 태도를 지적한다. 소수자는 또다른 편견으로 타자화되는 대상에 머무는 것. 이것이 2014, 2015, 2017년을 이어 2019년에도 '프라이드'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이유다.

연극 '프라이드'는 모두가 더 행복해질 방법을 실비아의 입을 빌려 전한다. 실비아는 올리버에게 "네가 행복하길 원해. 나도 행복해지고 싶고. 그렇지만 너보다 내가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의 행복에 귀 기울이고 도움을 주는 데도 거리낌 없다. 넓은 마음으로 필립과 올리버의 가교가 되어주는 실비아에게서 성소수자-비성소수자를 통합하고 "의미 있는 생" "진실한 삶"을 살아갈 방법이 엿보인다.

사진=프라이드 공연 모습. 연극열전 제공.

모든 사람은 생을 통해 스스로의 역사를 써나간다. 연극 '프라이드'는 보다 진솔한 역사를 쓰기 위해 삶을 찾아나가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더 나다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래서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고,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를 찾는 모든 이들을 위한 찬사다.

필립 역은 김주헌과 김경수가 연기하고 올리버는 이정혁, 이현욱이 맡는다. 실비아는 손지윤과 신정원이, 1인 3역의 남자 역할은 이강우, 우찬이 연기한다. 만 17세 이상 관람가이며 오는 25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2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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