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타일의 범죄액션영화가 탄생했다. '조작된 도시'(9일 개봉)는 단 3분16초 만에 잔혹한 살인 용의자로 몰린 백수 청년 권유(지창욱)가 컴퓨터게임 속에서 동지애를 나웠던 대원들과 힘을 모아 진실을 밝혀내고 악을 응징하는 이야기다. '웰컴 투 동막골'(2005)을 통해 판타지 월드와 현실을 정교하게 접목시키며 웃음과 감동을 흐드러지게 안겨줬던 박광현(48) 감독을 만났다. "청춘을 응원하고 싶었다"는 청청패션의 그로부터 싱그러운 청춘의 향이 훅 전해졌다.

 

 

Q. 지겹도록 들은 질문이겠다. 12년 만의 개봉 심경은?

A. 광고 등 작은 현장에는 계속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흥분되고 초조하다. 흥행 결과가 중요한 시대이므로 관객에게 잘 받아들여질까 조심스럽다. 영화는 계속 하고 싶은데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보니 복잡한 심경이다.

 

Q. ‘웰컴투 동막골’의 박광현이라 일단 믿고 볼 태세인 이들도, 기존 박광현의 결과 너무 다른 영화라 여기는 관객도 있는 것 같다.

A. 재탕하는 느낌보다 새로움, 서프라이즈를 시도하는 게 감독이 갖는 희열 중 하나다. 첫 작품을 많이 사랑해준 관객은 비슷한 걸 원하더라. 많이 다르면 섭섭해 하고 낯설어하고. 예전에 찍은 단편을 좋아했던 분들은 ‘웰컴투 동막골’을 싫어하셨다. ‘조작된 도시’가 익숙해지면 미덕을 발견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쉴 새 없이 뭐가 지나가네, 여유가 없네, 사건이 깊이 있게 전개된 거야란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선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었기에 반응을 짐작할 수 있었다.

 

Q. 최근 범죄오락액션영화는 차고도 넘치지 않았나. 빅 히트작도 많았다. 그런 장르에 도전한다는 게 양날의 검일 수 있지 않았을까.

A. 어느 순간부터 충무로가 중년 이야기들로 꽉 차버렸다. 영화 자체의 즐거움보다 현실의 비루함과 잔혹함을 드러내는 메시지, 독한 이야기로 점철되고 있다. 이런 영화와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더 경쟁하고 잔혹해지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다. 편식하는 사회가 건강해질 수 없다. 문화를 담당하는 감독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어린 친구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해줄 이야기를 찾아주는 게 필요하지 싶었다. 그래서 누명을 벗고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경쾌한 모험, 범죄 어드벤처로 그리려 했다. 아이디어 충만하고 새로운 영화를 보며 입맛을 확대시켜 가다보면 다양한 문화가 창출되지 않을까.

 

 

Q. 영화에는 백수, 은둔형 외톨이, 빈틈 많은 덕후 등 ‘일그러진’ 청춘의 얼굴들이 등장해 조작된 현실과 맞서 싸워나간다.

A. ‘웰컴투 동막골’ 때는 휴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 이후엔 우리의 미래에 천착했다. 그 나라가 에너지 넘치려면 젊은 세대의 에너지가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청춘이 무기력해졌을 때 나라도 흐느적댄다. 우리 시대에 탐닉했던 ‘고교얄개’ ‘청춘스케치’ 그리고 스필버그 영화들처럼 신나는 청춘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권유와 팀원들처럼 나 혼자는 힘들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각각의 재능이 의기투합하면 꽤 근사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앞길 막막한 젊은 친구들이 그런 이유로 끊임없이 협업하고 상상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삭막한 세상을 만들어놓은 선배 세대로서의 책임이기도 하다.

 

Q. '누명 쓴 자의 복수극'이란 뻔할 법한 얘기를 얼마나 새롭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었을 것 같다.

A. 새로운 볼거리와 직관적인 이야기, 어떤 걸 상징화한다든지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든지 등 이전 영화들 화법과는 다르게 나만의 목소리를 내보려 했다. 이를 위해 많은 R&D 기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이해하는 스태프도 많지는 않았다.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의 어려움은 설득해내는 과정이 지난하다는 거다. 맷집이 약하면 떨어져나간다. 다행히 난 거북이 근성 같은 게 있어서 계속 이야기하고 그러다보면 스태프들이 해내더라. 감독이 확고한 의지가 있고 유의만 한다면 누군가는 만들어주는 듯하다.

 

 

Q. ‘웰컴투 동막골’에서 팝콘비 잔상이 강렬했다면 ‘조작된 도시’에는 일명 쌀알액션이 등장한다.

A. 난 ‘어둠의 액션’이라고 말한다.(웃음) 적들과 대치한 위기 상황에서 동료 해커인 여울(심은경)의 아지트에 있는 쌀독의 쌀을 던지는 소리를 오감이 열려 각성된 상태의 권유가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청각의 시각화라는 분명한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했다. 자신을 도와줬던 친구들이 모두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간 쌓였던 서러움과 울분이 폭발하는 심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콘티부터 사전 시뮬레이션 그러고도 1년 넘게 CG작업에 매달려 완성했다.

 

Q. 홍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당신을 두고 ‘상상력 뛰어난 비주얼리스트’ 평가를 하곤 한다. 상상력이란 게 나이가 들며 무뎌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A. 상상력 발휘를 편해하는 사람도 내면에 제한수량이 있어서 많이 꺼내놓으면 없을 텐데 난 두 번째라 남아 있다. 앞으로 몇 편까지는 해낼 수 있을 듯하다. ‘동막골’ 때는 한 번도 내놓은 적이 없어서 마음껏 꺼냈음에도 못 쓴 게 많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새롭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탈출할 때 어떤 게 가장 효과적일까, 이 사람의 감정이 이런데 이 감정을 최적화해서 표현하는 걸 뭘까 등을 고민할 때 주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아직까지는 그런 거에 대한 어려움은 없다.

 

Q. 연출, 연기, 오락적 재미를 두루 갖췄지만 순제작비 85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영화에 어울리는 스타캐스팅 면에서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A.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배는 절대로 떠나지 못한다. 언제 우리가 안전했던 시절이 있었나? 또 스타를 쓰면 무조건 안전하나? 성공의 예를 만들어놓으면 누군가는 또 용기를 내지 않을까. 12년 전에도 그렇게 시작했다. “영화의 힘으로 가면 안돼?”. 내게도, 투자자에게도 그리고 배우들에게도 최면을 걸고 갔다.

 

 

Q. 출연 배우들 가운데 연기파 오정세 김상호 활용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그들은 특화된 캐릭터, 연기톤에서 벗어나 있더라.

A. 없는 걸 요구하면 배우들은 겁내한다. 그러면 가짜 연기가 나와 버린다. 그 배우의 다른 면이 보일 때가 있다. 연산작용이 내가 빠른 편이다. 어떤 사람이 빨리빨리 머릿속에서 데이터화된다. 내재된 성향을 연기해보라고 하면 배우들은 매우 신나 한다. 이번에 오정세 김상호 배우가 그런 케이스였다. 심지어 오정세씨는 자기가 적극적으로 민천상 역을 해보겠다고 PT까지 했다. 김상호 배우의 경우 그런 면이 있으나 공개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부각시키면 재밌지 않을까 해서 시도했다.

 

Q. 주연 지창욱은 첫 영화에서 극을 주도하는 중책을 맡았다. 액션에서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느낌이다. 캐스팅 스토리를 들려달라.

A.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가 있어 리얼한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들을 대입해보니 잘 맞질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드라마 ‘힐러’에 지창욱이란 탤런트가 있는데 눈빛이 좋다고 추천해줬다. 팬들이 만들어놓은 클립을 보고 내가 찾던 눈빛의 배우가 딱 있어서 깜짝 놀랐다. 눈빛이 촉촉하고 호소력이 있는데다 묘한 판타지가 느껴졌다. 여린 소년의 연민과 상남자의 강인함이 공존하는 연기자의 발견이었다. 그런데 그 역시 자기도 모르는 세계에 빠져드는 청년의 이야기가 다소 이상하다고 해 설득하는데 어려웠다.

 

Q. 긴 시간 끝에 대중에게 돌아왔으니 앞으로 열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A. 또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해오는 중이 조선시대 배경 범죄 판타지 사극이 있다. 지금까지 못 봤던 새로운 표현을 구상하는 상태다. 그동안 무척 목말랐기에 앞으로 2년 반에서 3년 주기로 한편씩은 만들려고 한다. 영화팬들에게 조금 더 다양한 볼거리의 영역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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