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도 받았다. 그렇지만 개봉은 사뭇 다른 기분이라고 말했다. 15일 개봉한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의 유은정 감독은 “정말 처음으로 대중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라 반응이 궁금하다”고 전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유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지난 2012년부터 단편 ‘낮과 밤’, ‘싫어’ 등을 꾸준히 선보여온 유 감독은 미스터리 장르 영화로 장편 극장가의 문을 막 열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에는 유령이 등장한다. 하루아침에 유령이 된 혜정(한해인)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효연(전소니), 수양(감소현)을 만나고 변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막연히 유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추리소설 장르에서 사건이 일어난 후 주변을 탐문하며 배경을 찾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되곤 하는데 제가 전부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했고 미스터리 장르를 해보고 싶었어요. 또, 김희천 작가의 작품 ‘바벨’에서 “요즘은 다들 죽지 않으려고만 하지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대사를 들었어요. 당시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할 때라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정서라고 느꼈어요.

영화 속 주인공 혜정은 공장에서 일하는 인물. 공장과 서울 외곽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혜정은 의욕 없고 무미건조하게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고 유령이 된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건 물론이고 도리어 상호작용을 꺼리는 혜정에겐 더욱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리뷰를 받을 때도 ‘혜정이 뭘 잘못해서 죽어야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누구든 죽어도 돼서 죽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죽는 사람 입장에선 모두 갑작스러운 죽음이고 천재지변을 당한 것처럼 죽어요. 혜정은 유령의 시간을 살면서 나 혼자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면 그게 아니었고, 마지막에 이르러선 삶이 후회로만 점철된 건 아니었고 삶의 긍정적인 면을 깨닫게 되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혜정은 죽음을 계기로 일전 꺼려오던 인간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바꿔보려 노력하게 된다. 이는 유 감독이 살면서 경험해온 것과도 관련이 깊다.

“강하게 느꼈던 감정, 정서에서 영화를 출발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번 영화 역시 혼자만의 세계에서 나 혼자 괴롭다고 느꼈다가 누군가 어른스럽게 품어줬을 때 따뜻했던 경험,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던 경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컨대, 고시원에 살다가 월세가 밀려서 고시원 주인이 밤에 절 쫓아냈던 적이 있어요. 길거리에 내팽개쳐져 친구에게 연락했는데 친구는 선뜻 고민 없이 들어오라고 해줬고 정말 고마웠어요.

또, 단편영화를 찍을 때 스태프를 비롯해 선의를 받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많은 사람의 도움 속에 살고 있다고 느끼곤 해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게 대다수지만 회복 또한 대다수 사람으로부터 이뤄지잖아요. 사람은 혼자 살 순 없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셋은 모두 여자다. 혜정과 수양, 수양과 효연, 효연과 혜연은 전혀 관계없는 사이였지만 혜정이 삶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서로 깊이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전소니가 연기한 효연은 사채를 지고 인생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인물로 자신의 욕망에 가장 충실해 인상적이다.

“첫 장편에서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하고 싶고 잘하는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 여러 남성 캐릭터들이 표현됐기 때문에 내 작품에서까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었어요. 전소니 배우를 효연 역에 캐스팅할 땐, 배우의 에너지가 분출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연기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캐릭터의 중간을 잘 잡으셔서 소니 배우가 효연을 연기하면 마냥 저 인물을 악인이라 치부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밤의 문이 열린다’는 뒤이어 22일, 29일 개봉하는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김보라 감독의 ‘벌새’와 함께 여성감독의 작품으로 묶여 주목받기도 했다.

“여성감독들이 만든 장편영화가 수적으로 적기 때문에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지만, 경쟁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서로 잘될 때 시너지가 일어나는 거 같아요. ‘우리집’ ‘벌새’, 9월 개봉하는 ‘아워바디’ 모두요. 영화라는 업계도 연결돼 있어서 어떤 것 하나가 안 된다고 내가 잘되는 게 아니라, 토양이 황폐해질 수 있거든요. 첫 장편을 준비하면서 배급사를 만나는 등 실무적인 데서 앞선 여성감독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취업할 때 선배에게 도움받는 것처럼요. 저 역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유 감독은 차기작을 구상 중이다. 기획계발단계의 ‘미망’ 역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호러 장르의 영화라고 귀띔했다. ‘밤의 문이 열린다’로 장편영화의 문을 연 유은정 감독의 영화 세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