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역사상 첫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윤가은 감독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더불어 아역배우를 스크린에 살아 숨쉬게 하는 ‘3대 마스터’”라고 극찬했다. ‘우리들’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충무로를 대표할 연출가로 떠오른 윤가은 감독이 3년 만에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8월 22일 개봉하는 ‘우리집’은 관객들을 동심의 세계로 초대할 힘을 가졌다.

필자는 대학 자취 시절 혼자 살면서 윤가은 감독의 단편 ‘콩나물’을 본 적 있다. ‘콩나물’을 보면서 느낀 건 ‘어떻게 아이의 시선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였다. 한 아이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라갈 콩나물을 사러가는 여정. 그 영화는 보는 이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할 뿐 아니라 무한한 감동을 선사해 가슴 벅차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몇 년 후 유가은 감독은 ‘우리들’로 자신의 진가를 또 다시 드러냈다. ‘우리집’은 윤가은 감독의 개성을 잃지 않으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정말 긴장 많이 돼요. ‘우리들’ 개봉 때는 첫 장편영화 연출이어서 잘 몰랐는데 이번에는 떨리기도 하고 관객분들을 만난다는 것에 설레기도 해요. ‘우리들’에 이어 ‘우리집’까지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계획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데 사실 의도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엔 ‘소라’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었죠. 1~2년 동안 시나리오가 개발되면서 이야기가 많이 바뀌었고 ‘우리집’ 이야기가 탄생했어요. 주변 사람들 모두 ‘우리집’ 말고는 다른 제목이 어울리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을 딱 정해놓으니 아이들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우리들’ ‘우리집’ 모두 제 삶을 반영한 이야기예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아이로 자라면서 겪었던 다양한 것들이 영화에 알게 모르게 투영됐죠. 주인공이 여자아이가 된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죠. 어렸을 때 맺힌 게 많았나봐요.(웃음) 제가 아이들의 성장 서사나 삶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그런 개인 취향이 영화에 들어있겠죠. 누구나 어렸을 때는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낼 수 없잖아요. 그 당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영화로 통해 하나씩 꺼내보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시는 관객분들도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공감하실 거라고 믿어요.”

윤가은 감독 영화엔 여러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름 배경, 카메라의 시선이 어린이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 아이들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또한 핸드헬드 기법도 빠질 수 없다. 자신의 연출 방식을 작품마다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여기에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매번 새롭게 탄생시키는 건 더욱 어렵다. 그가 아이들의 세계를 스크린에 옮기는 데 통달했다는 걸 의미한다.

“두 작품 배경이 여름이잖아요. 제가 여름이란 계절을 정말 좋아해요. 특히 ‘우리집’에선 여름 방학 시즌인데 아이들이 문제에 몰입해서 고민, 해결할 수 있으려면 학교, 학원생활하느라 바쁜 학기 중보다는 방학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집’엔 가족의 갈등이 담겨 있어요. 솔직히 모든 가족이 불화를 겪을 수 있고 그런 일들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인생에 중요한 경험이 돼죠. 물론 저의 경험이기도 하고요.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할 때 이를 지켜보는 아이들의 감정이 어떠한지 잘 알지 못해요. 이 영화를 통해 아이들이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고 자라나가는지 확인하셨으면 좋겠어요. 집안 일을 남에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데 ‘우리집’ 아이들은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고민들을 털어놓죠. 그때 겪었을 해방감, 받았을 위로를 관객분들도 느끼시길 바라요.”

“아이들과 촬영하면서 어린이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바라봐야겠다는 원칙을 세우게 돼요.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의 키 차이가 많이 났거든요. 이들의 눈높이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그리고 리액션까지 제대로 담는 게 목표였어요. 키 차이가 좀 나서 세 아이를 풀샷 담기 힘들었죠.(웃음) 아이들의 감정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클로즈업 이상이 없더라고요. 미묘하게 번지는 아이들의 세심한 표정들을 관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었죠. 제가 특별히 디렉팅하는 건 없어요. 아이들에게 상황을 주면 스스로 이해하고 날 것의 반응을 보이죠. 어떨 때는 생각지도 못한 연기가 나와요. 그걸 제대로 담아내는 게 제 몫이었죠.”

‘우리들’에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이 있다면 ‘우리집’엔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이 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배우들. 김나연이 중심을 잡고 김시아가 다리 역할을 한다면 주예림은 두 언니들 사이에서 귀염뽀짝한 신스틸러 매력을 폭발한다. 캐스팅마저 완벽한 윤가은 감독의 선구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보석같은 아역배우들을 어디서 찾아냈을까.

“여러 번 캐스팅 작업을 시도했어요. 아역배우분들 프로필을 보고 직접 만나 영화, 가족, 학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죠. 대여섯명 그룹을 나눠 연극놀이하듯 오디션을 진행한 적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즉흥 연기를 할 때 어떤 몰입감을 보여줄지 궁금했어요. 처음엔 하나 역의 김나연, 유미 역의 김시아를 캐스팅했어요. 나연이는 제가 생각했던 캐릭터 느낌과 딱 맞았는데 키가 150cm 초반으로 크더라고요. 하지만 나연이의 연기를 보자마자 키가 보이지 않았어요. 실제로 나연이는 집안 막내였고 요리도 좋아했죠. 하나라는 캐릭터와 똑 닮았어요. 시아는 동생이 셋이나 있고 집안 이야기를 하는데 보통 아이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시아라는 배우가 정말 궁금해졌어요. 연기도 잘하고 언니로서의 모습도 있고. 나연이와 시아 모두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줬죠.”

“‘우리집’ 막내, 유진이에 맞는 배우를 찾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요즘 아이들이 정말 빠르게 커서.(웃음) 제가 원하는 배우는 미취학아동이었죠. 주예림은 키가 작고 귀여운데 촬영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높았어요. 나연, 시아도 예림이를 정말 좋아했고요. 모든 사람이 예림이한테 반핸했어요. 모두 ‘저런 애는 없다’고 동감했죠. 즉흥 연기를 할 때 예림이는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고 자기 역할까지 잘 수행했어요. 그런 집중력을 가진 아역배우는 처음봤어요. 예림이를 꼭 유진 역으로 캐스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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