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21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9일장을 치른 20대 큰 영애 박근혜는 두 동생 근령·지만과 쓸쓸히 청와대를 떠나야했다. 검은색 정장 차림에 흰색 상장을 꽂은 수척한 얼굴에 국민들의 가슴은 연민으로 물들어졌다.

 

 

2017년 3월12일 오후 7시20분, 헌법재판소의 파면 인용으로 인해 다시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청와대 참모, 친박 정치인들, 가로등 불빛이 그의 가는 길을 밝혔다.

33년 3개월만인 지난 2013년 2월25일, 대통령의 딸 그리고 퍼스트레이디 대행이 아닌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 명예롭게 청와대에 돌아와 본관 계단을 올라설 때 방송 카메라에 잡힌 미세한 한숨과 눈빛은 쉬 잊히질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나있던 자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안락함, 설렘, 뜨거움이었다.

11세부터 뛰놀던 청와대는 그에게 편한 집과 같았을 듯하다. 집무실과 관저의 구분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겠다. '내 집에서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40년 지기·기치료 선생·주사아줌마 등)를 데리고 오든 무슨 상관인가'란 생각은 복심이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대통령이 있는 공간이 집무를 하는 곳”이라는 황당한 발언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홈커밍한 지 4년 2개월 만에 다시 짐을 꾸려 떠나는 그의 심경은 어떨까. 38년 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원해서가 아닌 점은 똑같다. 과거의 퇴거가 자신의 의지나 잘못과 무관했다면, 이번의 이주는 스스로 자초한 점이 다를 뿐이다.

청와대는 최고 권력의 둥지이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 법치, 대의민주주의의 가치를 집행해나가는 최전선이며 컨트롤 타워다. 막중한 사명감과 부담이 하루 24시간을 지배하는 공간이다. 인기 드라마 부제처럼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하는 곳이다.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블루 하우스’가 결코 안온한 집이 아님을, 가장 안락했던 공간이 악몽의 현장으로 뒤바뀌는 하우스 호러 영화 속 집들 만큼이나 ‘무서운’ 곳임을 깨닫지 않았을까.

 

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방송화면 캡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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