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아는 형님’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민경훈이 꼭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배종옥이다. “그 누구보다 엄마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는 민경훈의 말이 6월 10일 개봉한 ‘결백’에서도 통한다. 배종옥은 생애 처음으로 노역 분장을 하고 치매에 걸린 엄마로 변했다. 무죄 입증 추적극의 긴박함 속에 배종옥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결백’은 어린 시절 집을 떠나 서울에서 변호사가 된 딸이 엄마의 살인 사건 혐의를 풀어주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은 신혜선이 이끌어가지만 배종옥은 자신의 역할을 지키며 존재감을 뿜어낸다. 그에겐 ‘결백’의 화자라는 역할이 배우로서 큰 도전이었다. 

“‘결백’의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서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어떻게 스크린에서 재해석될지 궁금했죠. 시나리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읽었어요. 이 정도로 탄탄한 이야기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죠. 나이가 들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배역들이 한정되고, 영화 쪽에서는 더더욱 맡을 역할이 적어지고 있어요. 배우는 연기, 역할에 대한 갈증이 늘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갈증이 풀리지 않았어요. 갈증은 제가 연기하는 동기가 돼죠. ‘결백’에서 화자 역은 저한테 새로운 캐릭터라 도전할 이유가 분명했어요.”

“저는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여자라는 선입견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촌부 역할이 들어왔잖아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왜 저한테 ‘결백’ 시나리오를 줬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어떤 분들은 허준호 배우가 나온다면 악역일 거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잖아요. 저한테도 있는 그런 선입견을 타파하고 싶었죠. 어쩌면 화자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적당한 나이대의 배우를 찾다가 저한테 온 거인지도 몰라요.(웃음)”

‘결백’에서 화자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준다. 치매에 걸리기 전과 후가 너무 다르고, 과거와 현재의 화자 이미지도 극과 극을 이룬다. 배종옥은 이런 화자의 다양한 면을 스크린에 보여주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배종옥의 연기 투혼도 막지 못했다.

“화자는 급성 치매에 걸린 노인이에요. ‘결백’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화자가 치매 걸리기 전, 후로 이야기가 뒤섞여 진행돼요. 그러다보니 화자의 감정을 완급조절하기 어려웠어요. 평소에는 현장에서 모니터를 잘 안 보는데 이번에는 봐야겠더라고요. 치매라는 게 무서워요. 제 정신이었다가 기억을 잃다가를 반복하잖아요. 감정 기복이 심하니 제 연기를 계속 체크해갔죠. 처음 경험해보는 연기였어요.”

“‘결백’을 찍으면서 화자라는 캐릭터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정말 안쓰러운 사람이었죠. 저희 어머니가 저를 늦둥이로 낳으셨어요. 그 시대에는 60세면 할머니였거든요. 이모들이 어머니보다 연세가 더 많으셨죠. 어린 시절 그런 기억들을 되짚어보고 화자에 투영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노역 분장이 중요했죠. 제 연기로 노역 분장이 티가 안났으면 했거든요.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이었어요.”

배종옥은 인터뷰를 하면서 신혜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 스크린 주연에 자신과 허준호라는 선배를 상대해야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연기를 가감없이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배종옥과 신혜선은 tvN ‘철인왕후’를 통해 다시 만난다. 이들의 호흡이 ‘결백’에 이어 드라마에서도 터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노역 분장을 하는데 신혜선씨가 구경하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보지 말라고 말렸어요. 배우는 이미 현장에 오기 전에 해당 신의 감정을 다 연구하거든요. 그런데 노역 분장을 보면 그 감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혜선씨가 저의 변한 모습을 안 보길 원했죠. 촬영에 들어가니 혜선씨도 바뀐 제 모습에 충격받더라고요. 저는 그 감정을 원했고,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 것 같았어요.”

“혜선씨와 ‘결백’ 이후 tvN 드라마 ‘철인왕후’로 다시 만나게 됐어요. 호흡을 한번 맞춰봤지만 캐릭터 관계, 장르적 느낌이 다르니 새롭겠죠? ‘결백’에서는 모녀 사이로 나오지만 거리두기를 했어요. 영화 속 설정상 딸 정인(신혜선)과 엄마 화자는 서로 다정하지 않거든요. 현실에서 친하다가 극에서 거리를 두는 건 어려워요. 미리 감정적인 거리두기가 필요했죠. 혜선씨는 배우로서 좋은 덕목을 가지고 있어요. 선배들이 이야기해주는 감정을 빨리 캐치해요. 그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흡인력, 집중도가 좋아요.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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