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연기인생의 배우 정진영이 이번엔 직접 연출작 '사라진 시간'을 들고 관객들을 찾아온다. 수많은 영화에 참여하고 관객을 만나왔지만, 이번만큼은 마음가짐이 달랐다. 오랜시간 간직한 꿈을 마침내 세상에 펼쳐보이게 됐다. 그리고 정진영 감독은 배우로서 맞이하는 분위기와는 180도 다른 긴장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긴장감이 달라요. 배우로 인터뷰할 땐 농담도 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럴 여지도 없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려 노력해요. 무엇보다 이번엔 영화 전체를 얘기해야하니 긴장도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영화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대변해서 말해야하니까"

정진영 감독은 대학시절 졸업후엔 연출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연출부 막내로 일한 것을 끝으로 감독으로의 꿈을 접어두게 됐다. 그간 천만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를 비롯해 '즐거운 인생' '국제시장' 등 다양한 작품으로 성공적인 배우 커리어를 만들어왔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한 감독이라는 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저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거든요.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요. 사실 모든 게 힘들었어요. 촬영도 후반작업도. 근데 안해본일인데 해보는게 재밌더라고요. 전체본을 완성하고나니 좀 알겠더라고요"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한달 정도로 찍기로 하고 판을 벌였어요. 계속 수정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했고, 실수했다 싶은건 후반 작업에서 보완하기도 했죠. 근데 이미 완성이 됐고, 이젠 어쩔수 없는 일이니. 영화 한편을 하면서 뭘 알고 시작한게 아니고 하면서 배운 것 같아요"

'사라진 시간'이 공개되고 낯설고도 다소 불친절한 이야기 때문인지 당혹감을 느끼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기존의 상업영화들이 가진 형식과 문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진영 감독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인정하면서도, 이야기를 그렇게 구성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했다. 

"이 작업 전에 쓴게 있는데 영화화하기 어렵겠더라고요. 어떤 관습에 사로잡혀있기도 했고요. 내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았어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 규칙을 따라가느라 스스로 검열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만큼은 좀 자유롭게 해보자 싶었죠. 좀 황당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이걸 어떤 규칙에 얽매이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검열하지 말고 가자' '이야기 안에서의 형식만 신경쓰자'고 생각을 했죠. 그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있으니 달려가고자 했어요"

"세상에 좋은 감독님, 좋은 영화들이 많잖아요. 내가 나이 먹어서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이야긴데 왜 자유롭게 하지 않는가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많았어요. 저는 시작하는 사람이니 모험을 할 수 있잖아요. 실험도 할 수 있고. 자유롭게 가보고 싶었어요. 게다가 이야기 자체도 규칙에 사로잡히면 안되는 것이니까요"

정진영 감독은 앞서 함께 작업해온 선배 감독들, 이준익, 김유진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좋다"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큰 힘을 준건 선뜻 출연에 응해준 주연 배우 조진웅이었다. 그리고 개봉 후에는 연출부 막내로 함께했던 이창동 감독의 진심어린 멘트에 감동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일 큰 용기를 준건 조진웅 배우에요. 초고를 쓰자마자 보내줬어요. 머릿속에서 이미 조진웅을 모델로 구상했었거든요. 조진웅이 참여를 할지 큰 기대는 없었어요. 대본도 김유진, 이준익 감독 보여드리기 전이라 망설이다가 보냈어요. 안보내면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빨리 보내고 거절당하자 생각했죠"

"근데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하루만에 하겠다고 답했어요. 혹시 선배가 하라고 해서 하는 건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힘이 났죠. 아직 초고 상태였던지라 재고를 하고, 어느 부분을 고칠까 물었는데 '왜 고치느냐, 다른건 몰라도 자기 부분은 고치지 말라'고 하더더라고요. 정말 큰 힘 됐죠"

"완성 후에 몇분 감독님들 모셔서 보여드렸는데 덕담도 있고, 칭찬도 있어서 감사했어요. 가장 궁금한 건 이창동 감독님이었어요. 평가에 엄정하신데 좋은 말 해주셨더라고요. '정진영 씨가 탁월한 이야기꾼인 줄 몰랐다'면서. 원래 자기말을 믿는 관객 있을거라는 생각에 맘에 안들면 멘트 안하세요. 근데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극찬해주시더라거요. 너무 좋았죠"

②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