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콘텐츠 영향력지수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청춘 로맨스, 성장드라마, 음악드라마의 묘미를 두루 충족시킨 수작으로 꼽힌다. 30대를 눈앞에 둔 스물 아홉 클래식 음악학도들이 그려간 꿈과 행복의 궤적이 여전히 선명하다. 포디엄에 올라 작품을 지휘한 조영민 PD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영민 PD(가운데)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주연배우 김성철 박은빈 김민재 박지현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지난해 단막극 ‘17세의 조건’에서는 17살 고교 2학년 주인공의 성장통을 다뤘습니다. 올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29세 청년의 성장통이 키워드고요. 아이와 어른, 20대와 30대 경계에 선 인물들의 성장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저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어른으로 불리기 전 고등학생 때 그리고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가던 20대 후반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시기를 지나왔지만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금의 위로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이런 주제를 다룬 류보리 작가와 연이어 작업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게 된 건 작가님도 저처럼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과 처음 만나서 첫 작품을 함께 만들기로 한 날 저에게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작게나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잘 맞아서 작가님과 두 편의 성장드라마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은 드라마로서 접근성(대중 확장성) 면에서 떨어진다는 편견이 강했습니다. 실제 클래식 음악은 어렵고 문턱 높다는 생각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잔잔한 청춘 로맨스, 성장담과 함께한 클래식 음악드라마를 연출하는 게 녹록치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고,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연출자로서의 계획은 무엇이었나요.

▲ 저에게도 클래식이라는 소재는 어렵고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클래식 자체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은 소재일 뿐이고,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 거라서 어떤 분야에 있던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은 친숙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안에 나오는 삼각관계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라 조화를 잘 이룬다면 많은 분들께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 너무 어렵고 난해한 것으로 느끼지 않도록 가능하면 친숙하고 듣기 쉬운 음악을 쓰려고 노력했고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는 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 잔잔한 인물들, 스토리, 느릿한 템포인 것 같았는데 매회 긴장감이 대단했습니다. “로맨스야, 반전 서스펜스야?”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특히 매회 마지막 예고 영상은 ‘악마의 편집’이구나란 느낌이 들 만큼 대사와 장면을 교묘하게 편집해 예상을 깨트려버렸습니다. 연출에 있어 포인트를 준 부분, 공을 들인 부분이 무엇이었나요. 연주 장면(대규모 홀과 연습실 등)과 야외촬영 신도 많았던 드라마였고요.

▲ 공연 장면을 비롯한 연주신에 공을 들이려고 한 건 사실입니다. 좀 더 사실적이고 멋있게 보였으면 했습니다. 긴장감을 위해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6각 관계 속에서 서로 각자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얽힌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초반에 민성이를 제외한 5명이 인터미션에서 만나는 장면이나 트리오 연습을 하려고 만난 3명(준영-현호-정경)이 나오는 리허설룸 장면에서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시선과 표정으로 각자의 마음이 읽히고 그 속에서 긴장감이 나도록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 쉽지 않은 캐스팅 과정, 방송 일정의 변경 등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8월 말 방영을 시작하게 됐고요. 업계 내 우려의 시선도 있었던 걸로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전이었던 것 같아요.

▲ 한편의 드라마를 만드는 데 참 많은 고비와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게 꼭 저희 드라마에만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결과적으로 무사히 드라마를 마치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특히 코로나로 하루하루 촬영이 쉽지 않았는데 누구도 아프지 않고 끝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전적으로 모두 한마음으로 노력해 준 스태프들과 구성원들 덕분입니다. 이런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게 저에게 행운이었습니다.

-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요즘 드라마답지 않게 그 흔한 자가용이나 화려한 강남 배경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주인공들은 걷거나 버스, 택시를 타고 움직입니다. ‘덕수궁 돌담길’ 데이트를 하고, 청계천에 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궁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채송아-박준영은 연인 관계로 발전해도 늘 서로 존댓말을 쓰고요. 변함없이 오랜 시간 존재해오고 있는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답다는 생각도 드네요.

▲ 어떻게 보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나오는 이런 모습들이 오래된 드라마 같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요. 저는 급하고 자극적인 것이 가득한 세상에서 가끔 이런 느리고 오래된, 정적인 모습이 그리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맞는 답변인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요즘의 현실이 ‘쿨’한 것을 강요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할 말을 하기를 강요하고, 똑 부러진 모습을 강요하는 시대요. 근데 무슨 일이 생겨도 참고, 오래 생각해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쿨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사진=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