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마음이 있는데 같이 살 수 없다는 것 자체가 피해 아닐까요. ‘외롭지 않을 권리’라는 책 제목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건 제도 때문에 외롭게 사는 데 대한 피해였어요. 누구나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주장하려고 한 거죠”

누군가는 생활가족법을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결혼에 대한 부담 등 현실적인 문제들로 혼인률은 계속해 떨어지고 있다. 이와 연계해 출산율 역시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본단위인 ‘가족’의 붕괴가 일어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황두영 작가는 이 부담스러운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덜어내는 대안을 생각했다.

“프랑스 팍스(PACS, 시민연대계약제) 때문에 출산율이 올랐다는 평가도 있어요. 가족을 만드는데 대한 장벽을 낮추니까 장기적인 계획도 꾸리게 되잖아요. 현실적으로 있는 가족도 챙기기 어려운데, 누군가 책임지는 관계를 또 늘려야 한다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잖아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갈 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데 초점을 맞춰서 포인트를 새롭게 만들어보자 했어요”

결혼의 제도를 벗어났지만, 생활동반자법은 대안주의 가족으로서 구성원 간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거라는 포괄적인 관계가 아닌 보다 단단한 결속과 조건으로 제도권 안의 안정을 제공하자는 것. 그리고 현실적인 동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도 완화해줄 수 있었다.

“위기 상황에 법은 그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가령 공동으로 이룬 재산에 대한 분할이나, 의료적인 상황에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우요. 서로가 서로를 부양하고 있다는 책임을 인정해서 등록한 관계가 돼야 생활동반자법 안에서 국가가 지원할 근거가 발생할 수 있죠. 물론 생활동반자를 선택하지 않고 동거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둘 사이의 차이가 크다고 봐요”

하지만 생활동반자법도 분명 허점은 있을 수 있다. 사람들 선입견에 ‘호적에 빨간줄’이라고 불리는 이혼과 달리 생활동반자법을 이용해 제도가 주는 혜택만 취하려는 편법 사례까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파트 분양 받으려고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법에 그런 문제가 전혀 없을 수는 없어요. 생활동반자 관계라는건 내 재산에 대한 권리도 일정 부분 상대에게 묶이고, 생활비나 폭력 문제를 일으켰을때 손해배상의 책임도 갖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에요. 이 법은 같이 살기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1인 가구가 날로 늘고 있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조사에 따르면 가족과 같이 사는게 좋다는 답변이 1/3 정도에요. 혼자사는 것들이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려운 나이가 되면 더더욱 누군가 옆에 있는게 중요해지잖아요”

법제정은 국회에서 절차를 밟지만, 사실 사회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생활동반자법 역시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우리의 현실로 들어올 수 있다.

“여성주의 단체에서 이런 대안주의 가족을 위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대중적인 운동 사례까지는 없어요. 결혼을 하지 않고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상상력 자체가 부족했던 거 같아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이 많이 팔리기도 했고, KBS에서도 중년 배우들이 함께 지내는 ‘같이 삽시다’라는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같이 살고 싶다’라는 욕구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느껴요. 그것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아이디어까지 넘어가지 못하고 있지만, 곧 대중적인 운동도 점점 나타날 거 같아요”

사진=라운드테이블(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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