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 사망 미스터리를 추적한 영화 ‘김광석’ 개봉 이후 숱한 논란과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묵언수행하는 듯했던 서해순씨가 25일 JTBC ‘뉴스룸’에 출연, 33분에 걸쳐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청자 평 가운데는 “오싹하다” “전율이 일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고 김광석 부녀, 서씨에게는 그 어떤 관계보다 가까웠을 남편과 딸의 연이은 죽음을 말하는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 없이 태연자약하게 언급했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심지어 딸 서연양이 2006년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것과 관련해서 말할 때 미소를 짓고, 사망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해 아연실색했다는 글도 상당수 있었다. 일부 네티즌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어도 저러진 않을 것”이란 글도 올렸으나 반려동물이든 딸·아들이든 자식으로 품고 키웠다면 애통함의 무게에 있어선 똑같을 터다.

왜 서연양의 사망 사실을 오랫동안 지인이나 가족에게까지 알리지 않았느냐는 손 앵커의 질문에 “경황이 없었고 미국과 한국을 오고가는 상황이었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특수한 자신의 상황 및 결정을 납득시키고 싶어였는지 “장애우가 있는 엄마라면”이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제3자처럼 “장애우”란 말을 하는 것도 놀라웠으나 장애 자녀를 둔 엄마는 자식이 숨을 거뒀을 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다시금 경악스러웠다. 개인 소유물쯤으로 여겼던 것일까. 납득하기 힘든 궤변이다. 손주를 아꼈던 친가, 외가 친인척들 그리고 고 김광석을 사랑했던 이들이 그토록 많음에도 서연양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상식, 공감능력, 모성애를 의심하게끔 만들었다.

서씨의 해명, 반박, 주장을 듣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특별한 인터뷰이를 상대했던 MBC 출신 두 언론인은 어땠을까. ‘김광석’을 제작·연출한 이상호 기자는 사망사건이 일어났던 1996년, 2002년, 2003년에 서씨를 각각 인터뷰했다. 이 내용은 영화에 담겼다. 반면 손석희 앵커는 이날 처음으로 33분간 인터뷰를 했다.

 

 

이 기자의 경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들어주다가 막판에 핵심 질문을 던져 얼떨결에 진실을 말해버리는 순간을 포착했다. 김광석의 비밀일기에 담긴 서씨와 김광석 고교동창의 뉴욕 불륜 행적을 서씨에게 직격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그의 돌발 질문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던 서씨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일기에 그게 있어요? 난 못 봤는데...증거가 있으세요?”를 반복했다.

이날 손석희 앵커는 오랜 시간 대응논리를 가다듬어왔을 서씨와 처음으로 마주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불리한 면이 많았다. ‘인터뷰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핵심을 꿰뚫는 예리한 질문과 반론에 능한 손 앵커지만 평소처럼 빛이 나진 않았다. 오히려 어떤 순간엔 서씨의 날선 반박, 엉뚱한 말을 들이미는 전술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는 지성과 상식 수준이 매우 높은 인터뷰어다. 논쟁에 익숙한 정치인, 고위관료, 학자, 논객들을 상대로 갑론을박을 벌이며 상대 논리의 허점을 파고든다. 반면 이상호 김어준과 같은 인터뷰어는 ‘스트리트 파이터’ 스타일이다. 논리도 없이, 상대의 말도 경청하는 법 없이 아무 말이나 구구절절 내뱉는 이들을 상대하고 제압하는데 탁월하다.

결론적으로 칼을 갈고 무림에 발을 디딘 서해순씨는 가장 화제성 높은 싸움판을 골랐고, 상대하기에 수월한 장수를 선택했다. 한판 승부에서 칼을 잘 휘두르고 방패로 잘 막았다고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속마음과 민낯을 어쩌지 못하고 드러냈다. 빛바랜 과거 영상이 아닌 생생한 라이브를 지켜본 숱한 관중들의 마음에 의혹의 불씨가 재점화되도록 기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진= JTBC '뉴스룸' 영상캡처, 싱글리스트 DB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