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합병증으로 ‘한국영화계 이단아’라 불렸던 김기덕 감독이 향년 60세의 일기로 지난 11일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그이지만 많은 영화계, 대중들은 그의 사망에 추모 동참하기 보다는 조용히 지나가려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러시아 외신, 라트비아 매체 델피 등은 “한국의 유명한 영화 감독 김기덕이 이날 오후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가족들과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도 고인의 사망을 확인했고 김기덕필름 측도 가족들이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기덕의 유족이 라트비아에 직접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며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에 장례 절차를 맡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고인의 시신은 현지 대사관에서 화장한 다음 국내로 송환될 예정이다.

故 김기덕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수상하며 해외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은곰상을 수상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2004년 ‘빈 집’으로 은사자상, 2012년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11년 칸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그는 항상 예술과 외설 경계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사진=김기덕필름

호불호가 확실한 작품들을 만들어왔기에 사생활 논란은 그에게 그 경계를 넘는 결정타가 됐다. 김기덕 감독은 2017년 여배우 A씨로부터 폭행, 강요 혐의로 고소당했다. 재판부는 김기덕 감독의 폭력 건에 대해서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고, 강제추행치상에서는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18년에는 미투 가해자로 지목돼 소송전을 벌였다.

2018년 MBC ‘PD수첩’은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이라는 제목으로 김기덕의 미투 의혹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김기덕 측은 A씨와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마저 김 감독이 부담토록 판결했다. 논란 후 김기덕 감독은 국내에선 자취를 감췄다. 한국영화계도 그를 점점 잊어갔다.

김기덕 감독의 부고 소식에도 영화계는 추모하기 보다는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계 큰 손실”이라고 애도하는 글을 올렸고 ‘신과 함께’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도 “기덕이 형 잘가요”라고 추모했다. 누리꾼들은 “도대체 왜?” “업적이 잘못된 것보다 더 중요한가” “죄 지은 사람들도 다 추모하자”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일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추모하는 건 괜찮지 않나”라는 반응도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영화감독조합과 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김기덕 감독 사망에 대한 특별한 논평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생충’ 번역을 담당한 영화평론가 달시 피켓은 SNS에 과거 김 감독의 성폭행 의혹을 언급하며 “그런 끔찍한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 말했고, 영국 출신 평론가 피어스 콘란도 “고인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는 글을 올렸다.

외신도 반응이 엇갈렸다. 영국 가디언은 “논란이 된 감독”이라며 “김 감독의 미투 논란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미국 데드라인은 “세계 3대 영화제 석권” 등 명성을 비중있게 다뤘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김 감독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다.

해외 감독으로 따지면 성추문으로 얼룩진 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우디 앨런, 로만 폴란스키 등이 김 감독과 비교될 수 있다. 이들 역시 업적은 대단했지만 현재 영화계에서는 이보다 인격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 수많은 배우들이 폭로를 하기 시작했고 수상이라도 하면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올해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는 로만 폴란스키 규탄 시위가 열렸고 로만 폴란스키가 상을 받자 아델 에넬 등 배우들이 자리를 떠났다.  

“그의 공로도 절대 잊혀선 안되겠지만 그가 행한 성폭력의 피해자 또한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한 피어스 콘란의 말처럼 김 감독을 추모하는 것도, 추모하지 않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그의 반박할 수 없는 업적과 함께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논란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은 이미 대단한 명성만 강조하는 시대가 아니다. 실력을 뛰어넘어 인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다. 한 누리꾼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잘못을 하고 사망한 유명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명성만으로 미화되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면 그동안 공을 세웠지만 잘못한 행동을 한 이들을 모두 추모해줘야 하는가. 결국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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