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한국영화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코로나19 여파로 설명할 수 있다. 명과 암이 뚜렷했던 2020년 한국영화계를 돌아보며 다가올 2021년의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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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기생충’, 오스카 장벽을 뛰어넘다…’미나리’에겐 기회로

2020년 한국영화계 시작은 찬란했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 외국영화상, 미국배우조합상 앙상블상 등 새 기록을 써내려가던 ‘기생충’이 오스카 92년 역사의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다. 지난 2월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총 4관왕에 올랐다.

오스카 직전까지 온라인, SNS에선 ‘기생충’ 대세론이 떠올랐고 최근 들어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던 오스카도 이를 외면하지 못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구나”라는 ‘기생충’ 대사처럼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인종 차별, 이민자, 사회적 약자 등 수많은 갈등을 낳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 현 상황과 맞물려 시의적절했다.  

특히 오스카 92년 역사상 첫 비영어권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것도 의미가 컸다. 아카데미는 여성, 다인종 등 다양한 회원들을 모으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라이트’ ‘셰이프 오브 워터’ ‘그린 북’ 등 사회적 약자들을 그린 영화에 손을 내밀었다. 그중 오스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담긴 영화들도 있었지만 기존과 다른 선택이었음은 틀림없었다.

‘기생충’은 구글 ‘올해의 영화’ 검색어 1위에 오르며 2020년 가장 사랑받은 영화임을 입증했다. 이는 내년 오스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에 힘을 실어주게 됐다. 현재 ‘미나리’의 윤여정은 보스턴비평가협회상 등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미나리’ 역시 수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수상 후 국내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가지며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이런 성과를 기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냉정하게 보면, 지금 젊은 감독들이 ’플란다스의 개‘ 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제가 데뷔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젊은 감독들의 이상한 작품, 모험적인 시도가 많았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엔 어려워진 거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 당시엔 독립영화와 주류의 상호침투, 좋은 의미의 충돌이 있었다. 그런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젠 젊은 감독들이 주류에 흡수되기 보다는 독립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어느 순간 독립영화와 주류산업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그런 부분이 안타깝다“고 말하며 한국영화의 다양성 측면을 언급했다. 그 앞길을 코로나19가 막기 전까진 한국영화계의 2020년은 밝아보였다.

사진='사냥의 시간' '승리호' '콜' 포스터

# 코로나19 창궐, 개봉 연기→OTT로 돌파구 모색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과 동시에 코로나19가 전세계에 창궐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은 2, 3월 개봉작들에 영향을 줘 개봉 잠정 연기로 이어졌다. 이후 수많은 개봉작들이 극장에 걸리지 못했고 극장뿐만 아니라 제작사, 홍보사, 배급사 등 영화업계가 전반으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보게 됐다.

연초에 ‘사냥의 시간’은 개봉을 연기했다가 넷플릭스 공개를 선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배급사와 헤외 세일즈사가 법적 공방까지 펼치게 됐고 어렵게 합의를 이뤄내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공개됐다. 이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들이 쉽게 개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OTT 공개는 또 하나의 수익 창출 방법이 됐다. ‘사냥의 시간’ 이후 ‘#살아있다’ ‘콜’ 등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고 추석 대작으로 기대했던 ‘승리호’는 연말로 개봉을 미뤘다가 넷플릭스 공개로 노선을 갈아탔다.

유정훈 메리크리스마스 대표는 현재 전세계에서 대규모 유행인 코로나19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콘텐츠 유통에 대한 기존 환경 및 디지털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 동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리즈 영화 및 스핀오프 영상 콘텐츠는 물론 웹툰,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의 IP확장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높은 성공 가능성 기반조성을 위해 더 이상 개봉을 연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넷플릭스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한국영화는 건재하다는 걸 여름 영화들이 보여줬다. ‘반도’ ‘강철비: 정상회담’ 그리고 400만 돌파에 성공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영화계에 숨통을 틔웠다. 하지만 이제 조금 숨을 쉬려고 하니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더욱 강화됐다. 2차 대유행으로 당시 ‘비상선언’ 등은 촬영을 중단했고 전주국제영화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도 언택트 영화제가 될 위기에 처했었다. 연말이 되어도 코로나는 지속됐고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영화계 위기, 경제적 타격에 산업 전반 침체

영화 개봉 연기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본 곳이 극장이었다. 멀티플렉스 3사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관람 금액을 인상했고 일부 지점의 문을 닫기도 했다. 내부에서는 구조조정이 일어났으며 관객들로 붐비던 극장 안은 한산했다.

지난 14일 영화진흥위원회는 2020년 극장 총매출액이 전년 대비 1조4037억원 감소한 5103억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TV VOD 매출액은 3635억원으로 추산됐다. 1, 2월은 전년도보다 상승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신작 개봉이 사라지기 시작한 3월부터 10월까지 꾸준히 전년보다 감소했다. 또한 한국영화 해외 매출 추산액은 한화 394억원으로 2019년과 비교해 50% 이하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2020년 한국 영화산업 주요 부문인 극장 매출, 디지털 온라인 시장 매출, 해외 매출을 합산한 추산액은 약 9132억원으로 1조원을 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 영화시장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던 2019년 2조5093억원에 비해 63.6%(1조5961억원) 감소한 수치다.

영화 관계자들은 올해를 돌아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느 해보다 위축되고 힘들었던 해였다. 영화를 알리고 관람을 유입하는 게 홍보마케팅의 일인데 극장으로 오라고 말하는 자체가 조심스러웠기에 어려움이 컸다” “개봉될지 안 될지도 늘 걱정이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를 거리두기 단계에 매달려야했다” “극장 개봉을 위한 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생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코로나가 빠르게 종식되어 다시 극장이 활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한 관계자의 말처럼 언젠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되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한국영화도 ‘기생충’처럼 다시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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