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사법·언론개혁이 절실한 요즘 넷플릭스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The Edge Of Democracy)’(감독 페트라 코스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구 반대편 나라 브라질의 복잡한 현대사를 몰라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 대한민국과 이란성 쌍둥이처럼 똑닮아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사건의 이면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부패의 카르텔을 형성해온 브라질 입법부, 사법부, 기업 그리고 언론이 개혁적인 노동자당이 집권하자 힘을 모아 무너뜨리는 ’정치적 참극‘을 다룬다.

브라질은 1964년부터 85년까지 암흑의 군사독재 시대였다. 룰라 다실바 전 대통령은 1975년 금속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신장을 위한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79년 노동자당을 창당하고, 2002년 대통령에 당선돼 임기를 시작했고 2007년 재선됐다.

재임기간에 진행한 ’볼사 파밀리아‘ 정책은 극빈층 가족에게 음식구입 지원, 연료비 지원, 취학을 지원해 2000만명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대학에 다니는 아프리카계 국민 숫자는 3배로 뛰었다.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 됐다. 브라질은 세계 13위에서 7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룰라는 보수세력 정치인을 부통령으로 지목했고, 우파정당과 정책 연합을 구성하는 등 반대파와의 소통에도 노력했다. 퇴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무려 87%에 이르렀다.

2011년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가 룰라의 후계자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던 지우마 대통령은 룰라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을 펼쳤고, 지지도는 최정점을 찍었다. 그는 민주운동당인사들을 정부 요직에서 해임하고 이자율을 낮춤으로써 보수세력과 은행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불행하게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하던 2013년 6월 버스요금 인상 관련 소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경찰의 폭력행위가 알려지자 큰 시위로 확산했고, 정부의 지지율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국민들이 분열하는 가운데 집권 노동자당이 타깃이 되기 시작했다.

​지우마 대통령은 반부패법안들을 발표했고, 국영 거대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조사를 받게 됐다. 수사관들이 부패의 그물망을 밝혀낸 가운데 이면에는 여러 정당이 얽혀 있었다. 이 시기 검찰에 의해 ‘세차작전’이 감행됐다.

세르지오 모루 연방검사는 페트로브라스가 대형 납품업체와 계약할 때마다 1~3%를 뇌물로 떼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런 뇌물은 오랫동안 브라질에 있어온 관행이었으므로 심각한 부패로 여기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업가들이 비자금에 대해 증언하자 노동자당을 비롯한 여러 당의 정치인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2014년 대선에서 지우마에게 패배한 아에시우 네베스는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재검표를 요구했다. 결과가 바뀌지 않자 대통령 탄핵운동을 전개했다. ​우익단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는 대중의 반부패 정서를 건드려 룰라와 지우마, 노동자당에 반대하는 폭동을 촉발시켰다. 언론은 시위를 연일 보도하면서 시위대의 공격적 행태를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자처했다.

​세계 경제가 쇠퇴하면서 지우마는 애초 약속과 달리 긴축정책을 폈다. 실업률 8%, 400만명 이상의 국민이 빈곤 상태가 됐다. 2015년 의회에서 탄핵이 결정됐다. 탄핵사유는 부실한 회계, 공공은행으로 기금을 늦게 보낸 것 등이었다. 정식 기소절차도 없었다. 노동자당도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았다. 다른 당과 똑같이 오래된 부패 관행에 발을 담근 것이다. 하지만 사법부가 다른 당과 다르게 범죄 혐의를 적용할 것이란 사실은 몰랐다.

지우마는 자신의 주변에서 회계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없는데다 국외계좌도 없다며 탄핵의 불법성을 주장했다. 격동의 상황에서 룰라가 다시금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릴 무렵 세르지오 모루 연방검사는 룰라의 구금을 전격 지시했다. 비리 스캔들에 연루된 건설사로부터 아파트를 제공받았다는 혐의였다.

대형비리의 한조각을 부풀려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던 족벌언론들은 검찰이 룰라 가족의 집을 급습해 수색하는 장면을 연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이는 그가 유죄라는 인상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줬다. 정치적 반대파들은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극 활용했다. 불만에 찬 대중은 룰라와 지우마, 노동자당을 비난했다.

탄핵 2주 후 검찰은 룰라를 부패혐의로 기소했다. 룰라의 아내 마리자도 아파트 관련 건으로 기소됐다. 4개월 후 마리자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룰라에게 모루 검사는 9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그마저도 이후 12년형으로 늘어났다. 대법원은 룰라의 상고를 기각했다.

탄핵 6개월 후 2018년 대선에서 육군 대위 출신 극우정치인 보우소나르가 승리했다. 친기업, 차별적인 성향으로 중무장한 그는 독재정권 시절 고문과 암살로 악명 높았던 사람이다. 세차작전을 주도했던 모루 검사는 법무장관으로 영전했다. 엘리트 집단 및 지배계층은 보우소나르가 시장의 이익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해줄 최적의 인물로 평가했다.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브라질의 정치사 그리고 격변의 시대를 서술한 ‘위기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특히 견고한 기득권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자 마인드로 ‘선택적 정의’를 적용하는 한국판 모루 검사와 사법부, 기레기 언론, 수구적 민주운동당이 활개 치는 우리 현실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피 흘리며, 뜨겁게 촛불을 들고 쟁취한 민주주의가 몰락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든든한 반석 위 센터에 자리한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가장자리(Edge)’에 있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만이 이를 막는 원동력임을 이 충격과 공포, 탄식의 다큐멘터리는 웅변한다.

사진=넷플릭스 영상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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