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임선혜의 크리스틴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5년 뮤지컬 '팬텀'의 크리스틴 다에 역 초연 멤버로 참여해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는 2018년에 이어 이번 2021년 마지막 시즌으로 참여하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성악가가 한국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건 흔치 않다. 임선혜 역시 처음 제의를 받고는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성악가로서 충분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와중에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그는 로버트 요한슨 연출의 2시간에 걸친 진심 어린 설득에 확신이 들었고 "욕심이면 하지 말고 도전이라면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잘할 줄 알고 하면 욕심, 잘 몰라도 배워보면 의미있겠다 싶으면 도전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고 첫 도전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도전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처음에 주변에서 많이 걱정하셨어요. 성악가의 자존심 같은걸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 또 이것도 저것도 안될까봐 하는 걱정이 있었던거죠. 근데 막상 하는걸 보고는 재밌겠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에 성악하는 친구들도 제의가 오면 하고싶다고 해요. 춤, 연기, 노래가 들어간 무대예술이라는 점에서는 오페라와 같아요. 뮤지컬은 거기에 대중성이 좀 더 더해진거죠. 그게 다른점 같아요"

그런 그의 뮤지컬 도전은 잠정적으로 올해가 마지막이다.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크지만 임선혜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악가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것. 그러나 그는 "앞으로도 클래식한 작품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너무 신날 것 같다"며 뮤지컬로 돌아올 여지도 조금은 열어뒀다.

"'팬텀'과 크리스틴은 뮤지컬 중에도 예외적으로 클래식이 필요한 작품이에요. 성악가들로 하여금 뮤지컬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안전한 다리 같은 작품이고요. 근데 크리스틴은 해맑고 앳된 느낌이 중요해요. 이제는 그런 마음을 가진 후배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전 좋은 선례를 남긴거라고 생각해요. 전향이 아닌 성악가가 크로스오버로 뮤지컬에 참여한 것. 그 길을 건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저로 인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뮤지컬과 클래식이) 상호협력 돼서 퀄리티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봐요. 실제로 배우들간에 서로 자극받기도 해요. 시너지가 같이 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죠. 서로간에 작용이 관객층을 서로 넓게 확보하고 기회를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은 무대예술이라고 해도 뮤지컬과 오페라는 엄연히 다른 무대다. 보는 관객도, 무대에 서는 배우도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면 몰입도가 깨질 수 있다. 임선혜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꾸준히 그 차이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소프라노의 장기를 살리면서도 뮤지컬에 어울리는 임선혜만의 크리스틴을 만들어냈다.

"제일 큰 차이는 마이크의 유무죠. 스피커로 나오는 목소리를 지금도 잘 구분 못해요. 클래식처럼 소리를 멀리 내는 작업을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오히려 속삭이듯 하는게 더 큰 효과를 주겠다 느끼고 있어요"

'팬텀' 속 크리스틴은 시골에서 파리로 막 올라온 오페라 가수 지망생이다. 극장에서 의상팀으로 일을 시작하고 마침내 최고의 프리마돈나가 된다. 임선혜 역시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고난을 겪으며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그리고 끝내 정상에 올라섰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크리스틴에 더욱 공감가고 애정이 가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극 중에 '내가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라는 대사가 있어요. 제가 그랬던 적이 떠올라요. 실제로 거기서 공연할 때도 그랬어요. 그런 부분에서 접점이 많죠. 대사를 하면서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했던 생각들이 무대에서도 많이 떠올라요"

"실제로 저도 처음 오페라 극장 갔을때 너무 신기했어요. 모든걸 만들 수 있는 공장 같았거든요. 바닥도 만들고 조명, 가발, 신발까지. 너무 신기했어요. 크리스틴도 거기서 의상 담당이지만 그런걸 볼 수 있는것 자체로 신기했을 거예요"

②에서 계속됩니다.

사진=EMK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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