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차인표가 붕괴사고에 놓이고 황정민이 납치를 당한다. 최근 국내 영화 중에는 이처럼 배우들이 실제 자신의 이름으로 역할을 맡아 출연하는 경우들이 많다. 처음 있는 시도는 아니지만 국내 영화에서는 흔치 않았던 만큼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난 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차인표'는 제목부터 오롯이 배우 차인표만을 떠올리게 한다. 내용 역시 대스타였던 배우 차인표가 전성기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차인표는 실제 자신이 가질법한 고민을, 자신의 이름과 캐릭터로 표현하며 다큐와 픽션 사이를 넘나들었다. 코미디에서는 호평받지 못했지만 '배우' 차인표의 진정성 만큼은 여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인질'은 영화배우 황정민이 납치를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황정민은 역시나 배우 황정민이 연기했다. 영화 속에는 우리가 아는 황정민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이 많다. "드루와" "부라더" 등 명대사들로 리얼리티를 높이고자 했다. 배우 황정민과 극중 인물 황정민 사이 어디까지가 진짜일지 추리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9월 1일 개봉하는 '습도 다소 높음'은 조금 결이 다르다. 영화는 극한의 습도가 엄습해온 어느 여름날, 에어컨을 꺼버린 극장에서 벌어지는 현실공감 땀샘개방 코미디다. 배우 이희준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우리가 아는 배우는 아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C급 독립영화 감독으로 변신, 코믹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할 경우 이는 현실과 픽션 사이를 잇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것 중 하나는 리얼함이다.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상황이 허구임을 알더라도 보는 중에는 실제처럼 느껴져야 몰입감이 높아지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관객들이 아는 배우가 그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한다.
다만 역으로 위험성도 있다. '차인표'와 '인질'의 경우 두 배우가 극단적인 사고에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일이 그려진다. 관객 입장에서는 실제 배우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극중 인물이 위기를 극복하도록 응원하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위험성을 극복하는 건 철저히 감독의 연출 능력에 달렸다. 개봉을 앞둔 '인질'과 '습도 다소 높음'에서는 이를 어떤 식으로 해소할지 기대하며 보는 재미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