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대표 신스틸러’ 오정세(40)가 신(Scean)을 훔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대한민국 영화팬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일보 전진을 시도했다. 지난 9일 개봉해 현재 박스오피스 위를 맹렬히 질주하는 ‘조작된 도시’(감독 박광현) 속에서 유약한 국선 변호사인 동시에 광기와 혼란이 가득 차 약한 사람들을 바닥끝까지 내모는 악인, 투페이스 민천상으로 분해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극 중 모습과는 정반대의 젠틀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오정세를 삼청동에서 만났다. “배우로서 부족함을 느낀다”며 수줍은 고백과 다르게 역할 하나에 극진한 애정을 뿜어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천상 배우였다.

 

Q. ‘조작된 도시’가 흥행세를 타고 있다. 관객들의 관심을 보면서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A. 굉장히 뿌듯하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많이 신기했다. 시나리오로만 봤을 때 ‘어떻게 구현될까?’라는 궁금증이 짙었다. 촬영할 때는 혼자 바닥에 앉아 긁고만 있었는데, 이게 작품 속에서 화려한 영상으로 표현돼 기분이 좋았다.(웃음)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니 박광현 감독의 줏대와 생각을 오롯이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원래 시나리오는 좀 더 만화적인 느낌이 강했었다. 표현이 덜 돼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Q. 표현이 덜 됐다고 하지만, 지금의 결과물도 사실 굉장히 판타지스럽다. 일각에선 과하다는 의견도 흘러나오고 있다.

A. 처음 생각했을 때는 나도 굉장히 영화적으로 많이 꾸며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지나가는 차를 해킹해서 조작하고 사고를 낸다는 게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근데 시나리오를 받고 얼마 지나서 자동차를 해킹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기사를 봤다. 굉장히 놀랐다. ‘조작된 도시’가 마냥 판타지가 아니고, 현실에 발을 붙인 상태에서 한두 단계 위의 이야기를 그린 것 같다. 특히 요즘 누군가에 의해 ‘조작’ 돼 왔던 것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지 않나.(웃음) 이 작품도 좀 과장됐지만 꽤 현실적이다.

  

Q. ‘조작된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민천상이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으면서도 철저한 악역이다.

A. 민천상이란 인물과 교집합은 별로 없다. 고민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내적이든 외적이든 결핍을 갖고 삐뚤어진 친구”라고 던져주셨다. 사실 꽤 오랫동안 스스로 생각해온 악한 캐릭터의 모습이 있어서 하나씩 끄집어내 제안을 건넸다. 초반엔 연민이 느껴지는 국선 변호사였다가 어느 순간 악의 중심이 되다보니 비주얼적 효과를 주고 싶었다. 10일 동안 쫄쫄 굶어서 8kg이나 감량했다. 더불어서 왜소증이나 구부정한 자세를 제안했다가 제작비나 체력 문제로 포기하고(웃음), 허벅지에 있는 오타반점을 얼굴로 가져오기로 합의를 봤다. 작은 것부터 계속 나누고 맞춰가면서 해결했다.

 

Q. 그런 고민이 쌓여서인지, 민천상은 기존 악당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참고하거나 영향을 받은 캐릭터가 있을까?

A. 일상생활을 하다가 마주치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뭔가 특이한 게 있으면 저장해 놓는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 캐릭터의 이중적 면모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 일본 배우 키타노 타케시처럼 눈을 깜빡이는 것도 고려했는데, 막상하려니 잘 안돼서 포기했다.(웃음) 무언가를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촬영에 임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설정에 집착하면 관객들도 인위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Q. 그 동안 상당히 여러 캐릭터를 맡았다. 한류 스타, 섹드립의 황제, 도박꾼 등등 그런데 이번 민천상 역은 유독 눈에 띈다. 왠지 연기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A. 그렇게 생각해서 더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고 그려낸 한 인물을 투영시킬 수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영화엔 전혀 맞지 않는 캐릭터긴 하다. 처음 딱 만났을 때 떠올랐던 이 민천상이란 인물의 이미지가 '조작된 도시' 안에서 라면 보다 잘 구현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로서 욕심을 내고 싶었다. 언제나 조금씩 새로운 것, 새로운 인물에 노크를 하고 싶다. 익숙함과 단조로움이 생기기도 하고, 고민을 하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 같다.

 

Q. 촬영을 하면서 갈비뼈에 금도 갔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이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던데?(웃음)

A. 영화에서 지창욱에게 한창 맞다가 “뼈 부러진 것 같아”라고 하는 장면이다. 애드리브라면 애드리브인데, 진짜 아프니까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웃음) 0.5초 정도 리얼이었다. 그 찰나가 굉장한 의미가 있다. 그래도 80%정도는 촬영을 하고서 다친 거라 다행이었다. 당시에 머리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영화 분장을 한 채로 병원에 갔다. 얼핏 보면 심각하게 다친 사람이었다.(웃음) 의사선생님들이 “괜찮으세요?” “말 하실 수 있으세요?”라고 진지하게 물어볼 정도였다.

  

Q. 인터뷰를 하다 보니 굉장히 치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베테랑 배우로서 조금은 여유를 가질 법도 한데.

A. 연기를 할 때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려고 한다. 밑바탕이 있으면 행동에 이유가 생기고, 감정이 광범위해 진다. 진짜 순간의 감정으로만 하기엔 겁이 난다. 나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잘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무대공포증, 카메라 공포증, 대인공포증까지 가지고 있어서 연기하는 데 여러 부딪힘이 있다. 어쩌면 개인의 성격과 잘 맞지 않는 직업일수도 있지만, 연기를 하면서는 늘 즐겁고 작품 안에서 놀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즐겁다. 그러니까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Q. 마지막으로 ‘조작된 도시’가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다가가면 좋을지 바람이 있을까?

A. 지금 반응을 살펴보면 많은 분들이 신난다고 해주시지만, 몇 분들은 개연성이 없다고 하시기도 한다. 그냥 신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표현 방식이 유쾌하지만 사실 많은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작품이다. 출연진들의 인터뷰, 코멘트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시면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일상에서 2시간 동안이나마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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