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최고의 인기 캐릭터이자, 휴 잭맨이 연기하는 마지막 울버린 ‘로건’(감독 제임스 맨골드)이 2017년 늦겨울 극장가에 찾아온다.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기존 시리즈의 흐름은 물론, 슈퍼히어로 무비와 다른 느낌을 발산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어 세계 영화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더 이상 돌연변이가 나타나지 않는 가까운 미래, 늙어버린 ‘울버린’ 로건(휴 잭맨)은 과거의 총기를 잃어버린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를 보살피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앞에 사이보그 용병 집단으로부터 쫓김을 당하는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나타나고, 로건과 자비에, 로라 세 사람은 돌연변이들이 모여 산다는 ‘에덴’을 향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특별한 점은 이 여행이 히어로 무비의 전형적 영웅서사를 밟지 않는다는 것. 다만 생존을 위한 불안한 동행을 이어갈 뿐이다.

‘로건’은 첫 장면에서부터 과거 듬직한 울버린과 달리 늙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돌연변이가 멸종하고서 약에 의지해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프로페서 X' 자비에의 상황까지 보게 되면 관객들의 머릿속엔 ‘도대체 왜 저렇게 됐을까?’라는 질문이 가득 찬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이 물음을 러닝타임 내내 끌고 가면서 ‘소외’ ‘연대’라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메시지를 더욱 깊고 진하게 전달할 뿐이다. 히어로 무비의 외피를 썼지만, 그 내면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울림이 가득하다.

 

독창적이고도 생경한 감흥이 가득한 ‘로건’엔 동정심, 불안함이 꽉 들어차 있다. 예전만큼의 파괴력이 없는 로건의 싸움은 눈물겹고,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자비에의 외형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약해진 주인공들에 의해 자연스레 히어로 무비 특유의 액션쾌감은 줄어든다. 그러나 비어버린 흥미는 로건-자비에-로라가 맺는 관계의 아늑함으로 채워진다.

대다수의 인류를 위해 위협이 될 수 있는 돌연변이를 통제하겠다는 사회는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논리를 따라간다. ‘로건’은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소수의 억울함에 극히 집중한다. 무차별적 폭력, 부지불식간 옆구리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날의 상처는 잘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이 상처의 고통을 덜어 주는 건 옆 자리에서 따스한 눈빛으로 걱정을 내보이는 가족 뿐이다. ‘로건’은 주인공 일행의 관계를 평면적 수준이 아니라 유사가족으로 격상 시킨다. 억지감동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섬세한 화법을 통해 당위성을 촘촘히 박아 설득력을 높인다.

 

이 관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찰스 자비에의 존재다. 기존 시리즈에서처럼 완벽한 천재의 면모가 아니라 서슴없이 욕을 내지르는 푸근한 할아버지의 인상으로 변모, 관계맺음에 서툰 로건과 로라 사이에서 끈끈한 접착제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액션영화치고는 꽤나 느릿느릿한 흐름도 단순히 표면상 도주-도달의 서사에 무게를 실은 것이 아니라, 서사 속에서 이들이 서로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며 진정한 이해를 하게 되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까닭이다.

관객들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로건의 시선을 통해 극에 집중한다. 소외받으면서도 ‘보트를 사겠다’는 소박한 개인적 꿈을 위해 지질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은 얼핏 행복을 ‘나중’으로 미룬 채 계속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 속 우리네 모습과 겹친다. 돌연변이라는 그의 타고난 특질로 인한 흥미보다도,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무거운 삶의 행보 자체가 극적 몰입을 촉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로건’은 모든 힘듦을 이고진 개인의 삶 가운데, 위로의 중요성을 밝힌다. 로라의 손길을 뿌리치던 로건이 불안한 동행 끝에 결국 그녀의 손을 맞잡는 건 영화의 메시지를 강렬히 빛내는 장면이다. 17년 간 강인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던 ‘울버린’, 그의 마지막 걸음은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의지를 발산한다. 모든 힘을 쥐어짜내 로라에게 다가가는 로건의 분투는 관객들의 가슴 속에 깊은 발자국을 새긴다.

 

러닝타임 2시간18분. 청소년 관람불가. 3월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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