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그룹 갓세븐 멤버 진영(23)이 첫 주연작 '눈발'(감독 조재민)로 스크린 데뷔했다. 가슴 아픈 청춘들의 영화 '눈발'은 눈이 내리지 않는 마을로 온 소년이 한 시골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다.

진영은 미량의 친절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에서 감정이 얼어붙은 소녀 예주를 어루만지는 민식 역으로 열연한다. 개봉일인 1일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진영을 만났다. 어리숙하던 스크린 속 민식과 달리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는 '눈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Q. 영화 데뷔작 '눈발'을 본 소감은?

A. 완성본은 두번 봤어요. 낯간지럽기도 하고 좋기도 했어요. 영화를 볼 때 만큼은 객관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불가능하더라구요. 내가 못한 장면만 자꾸 보이고,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것 같고. 민식이란 캐릭터와 달리 너무 밝은 모습만 나와서 저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민식이가 아니라 저만 알고 있는 제 모습 같더라구요. 가령 염소를 볼 때 너무 우쭈쭈하는 게 민식이라면 안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제 연기는 10점 만점에 4.5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Q.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떤 점에 이끌렸나?

A.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 참 좋았어요. 요즘 나오는 영화들과는 다르게 신선하면서 특별해 보이기도 했구요. 민식이가 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이긴 하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가 제 경험과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낯선 마을로 이사를 가, 낯선 학교에 간다든지. 제가 초반에 연습생 들어가면서 그랬거든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모르는 사람들과 섞이고, 혼자 동 떨어져있는 섬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대본을 처음 받아봤을 때부터 민식이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읽었던 것 같아요.

 

 

Q. 자신과 전혀 다른 성격의 민식을 연기하기 위해 자기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A. 저는 오히려 제 자신을 좀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과거 아주 평범했던 학생 시절의 기억을 더듬고 싶었고, 낯선 공간에 와서 겪었던 경험을 투영하려고 했죠. 새로운 걸 가져와서 민식이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제 경험을 녹여내는 게 더욱 시너지가 클 것 같았어요. 

Q. 민식이의 치열한 내적 갈등이 인상적이다. 민식의 상황에 놓였다면 어땠을까?
A. 그런 생각 많이 했죠. 누구나 알다시피 민식이는 아주 평범한 친구잖아요. 학교에 적응하느라 감히 나서지도 못하던 약한 친구가, 만약 그런 극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누가 드라마 속 영웅처럼 나가서 싸울 수 있을까요? 만약 저였더라면 후덜덜 떨면서 돌이라도 들고 가겠죠. 하지만 제가 민식이를 연기한 입장으로 대신 말해보자면 평범하고 약한 친구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반론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Q. 여러차례 구타 장면이 나온다. 힘들지는 않았나? 
A. 구타가 좀… 맞는 사람 입장에선 되게 서럽더라구요. 집단 폭행이라는 게 간접적으로 겪는 것도 굉장히 무서운데 실제는 얼마나 더 힘들고 괴로울까요. 오히려 영화를 통해서 그런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구타 장면 보다도 더 힘들었던 건 예주가 나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을 안 보면 제가 연기를 하는 동안 감정이 안 살 것 같아서 멀리서 쳐다봤거든요.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괴롭더라구요. 그 감정을 토대로 다음 장면 연기를 할 수 있었지만 내내 힘들었어요.

Q. 촬영 중 부상을 입었다던데?
A. 예주가 공터에서 집단으로 맞는 장면이었어요. 민식이가 멋지게 등장해서 처절하게 밟히고, 친구들이 민식이를 밀치는 바람에 넘어지는 장면이었죠. 본촬영도 아니고, 리허설 때였어요. 잘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진짜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 위험한 물건이 있었고 넘어지면서 타박상을 입었죠. 부끄러웠어요. 스탭들이 모두 기다려주시다 보니까 좀 죄송하기도 했고… 만약 여기서 힘든 티를 내면 너무 창피할 것 같은 거예요.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더 컸어요. 고개를 5분 정도 못 들었던 기억이…

 

 

Q. 갓세븐 일정을 병행하면서 촬영에 임했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건강관리는 어떻게 했나?
A. 좋은 약을 먹었죠.(웃음) 공진단을 홍삼으로 만든 황진단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 것도 열심히 먹고… 근데 다른 분들은 스케줄이 하도 빡빡해 보이니까 힘들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막상 해보니까 힘들지 않더라구요. 운전은 매니저분께서 해주시고 곁에 스타일리스트 분들도 다 계시는데. 저는 그냥 연기만 하면 되고 스케줄만 소화하면 됐거든요. 오히려 매니저 형이 더 힘들어하셨죠. 5시간씩 왔다갔다 계속 운전하셨거든요.

 

Q. '기억 조작남' '첫사랑 조작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A. 팬분들이 붙여주신 건데요, 팬레터를 읽을 때마다 그런 단어가 있더라구요. 학생 때 한번씩 좋아했을 법한 친구라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래요. 정말 잘못 생각하신 거죠. 그걸 언제 한번 제가 깨트려버리려고요.(웃음) 나쁜 역할을 하거나 못된 역할을 연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근데 팬분들은 절 좋아해주시니까 그런 별명도 붙여주시고 그러는 것 같아요. 다른 아이돌도 다 그렇게 불리더라구요. 처음엔 제 고유의 별명인 줄 알고 나름 뿌듯해했는데 나중엔 흔하게 쓰이는 걸 알고 "뭐야?" 했죠.

Q. 스스로에게 별명을 붙여본다면?
노잼남, 노잼보이, 노이해… 이런 게 나쁘지 않네요. 팬분들도 그렇고 갓세븐 멤버들도 그렇고 매일 저한테 노잼이라해요. 전 재밌다고 얘기하는데 다들 안 재밌어 하더라구요. 오히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다들 웃어주는 것 같아요. 전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남들은 웃는… 제가 트렌디하지 못한가 봐요.

 

 

Q. 아역에서 어느덧 성인 배우로 성장했다. 지금껏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 있다면?
A.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하려고 하는 성격이라든지, 나쁘게 말하면 노잼이지만 좋게말하면 진중한 모습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거든요. 아버지도 워낙 노잼이세요. 저보다 노잼이신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가 구애하실 때 진실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갔대요. 우리 아버지가 재미는 없으셔도 되게 진실된 분이시거든요. 화낼 때도, 좋다고 말할 때도 늘 진심이 느껴지고 거짓이 없으세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에요, 매사에 진심으로 대하시는 모습에 감사드리고 정말 많이 배워요. 

 

Q. 그룹 생활을 하다보면 감정 표출을 제때 하지 못하는 점이 아이돌의 고충 아닐까.
A. 아이돌 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그렇지 않나요? 직장인들도 상사에겐 화를 못 내잖아요. 저희도 사회에 일찍 나왔을 뿐인 거고, 얘기하고 싶은 걸 못할 때가 많거든요. 근데 연기는 극적인 상황에 포커스를 두는 거라 마음대로 소리를 지를 수 있고, 그 상반되는 느낌이 재밌는 것 같아요. 저도 그룹생활 하면서 참기도 많이 참았는데, 어린 남자들만 모여있으면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갓세븐은 좀 더 돈독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정에 대해선 서로 솔직했거든요.

Q.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 중에서 과거 그룹활동을 부정하는 경우가 여럿 있다. 그 심리가 뭐라고 생각하나?
A. 사실 이해는 잘 안돼요. 그래도 고민을 좀 해보자면 멤버들과의 불화가 있다거나 서로 친하지 않은 경우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사람이 다 맞을 순 없잖아요. 물과 기름처럼 친해지고 싶어도 못친해지는 게 아닐까요. 저는 멤버들이랑 친하다 보니깐 그룹이란 느낌보다는 다함께 노는 것처럼 음악 활동을 하거든요. 만약 마음에 안맞는 친구들과 팀이 꾸려진다면 싫다고 말 못할 순 없는거니까요. 그런 분들이 나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상황이 그렇게 만든거죠. 

 

 

Q. 존경하는 연예계 선배를 한 명만 꼽아보자.
A. 신화의 에릭 선배님이요. 신화 선배님들도 되게 오래 팀을 유지하시면서 각자의 개인 활동도 열심히 하시잖아요. 특히 에릭 선배님은 배우와 가수 생활 두 가지를 다 하시는데 신화의 리더 역할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신것 같아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룹으로서, 배우로서도 좋은 이미지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존경심이 생겨나요.

Q. '눈발'을 볼 관객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A. 영화가 확 끝나잖아요. 이제 곧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는 물음표를 두고 끝이 나는 그 느낌이 좋더라구요.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의 상처를 지우기보다는 그 상처를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고. 젊은 분들에겐 충고 한마디 될 수 있는 영화겠지만,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께는 당신에게도 상처가 있었을텐데 어떠셨는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물어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나에게도 잊혀지고 있는 기억이 있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말 한 마디 던져주시면 좋지 않을까요.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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