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개봉해 100만 관객을 모은 심리스릴러 ‘해빙’(감독 이수연)은 퍼즐을 맞춰가듯 단서를 찾아가는 두뇌플레이와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가운데 주인공 승훈(조진웅)의 건물주인 정육식당 주인 성근 역 김대명(37)의 광채는 특출나다. 그간 독특한 목소리로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독특한 컬러는 ‘해빙’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극중 색색으로 변하는 모습이 너무 극적이어도 안 되고, 선악의 격차가 커서도 안됐기에 고민이 컸어요. 범인을 찾고 복수하는 게 아니라 칠판을 긁는 것처럼 신경을 건드려야 하는 작품이라 데시빌을 맞추고 예민함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죠. 격차가 크면 연기적으로 웃다가 화내면 되는데 주변의 평범한 사람을 모티프 삼아야 해서 쉽질 않았죠.”

성근은 강남에서의 화려했던 삶을 접고 신도시로 흘러들어온 내과의사 성훈에게 도를 넘을 정도의 친절을 베푼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듯한 모습에 숨통이 조여오기까지 한다. 또한 치매에 걸려 돌발 행동을 일삼는 아버지를 살뜰히 챙겨가며 비밀을 공유한 듯한 면모를 보인다.

“제가 보는 성근은 평범한 사람이에요. 주어진 사건이나 받아들이는 것들에 예민할 뿐이죠.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가장의 입장으로 해결하려는 모습도 있었고요. 결과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봤어요. 받아들이는 그의 마음도 슬프고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고요.”

김대명은 캐릭터와 마주할 때 선한 역, 악역 구분을 하지 않는다. 선인, 사이코패스, 악당으로 정해버리면 머릿속에 선이 그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인물의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캐릭터를 구성해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이수연 감독이 그리는 큰 그림을 따라가려 노력했다. 그가 변주한 것은 호흡의 빠르기, 대사의 속도 정로로 국한했다.

 

 

촬영 기간 내내 배우로서 행복했다. 선배 조진웅과 2인극 무대처럼 긴장 팽배한 장면을 소화했을 때 물 흐르듯 술술 풀려갔는가 하면 대선배 신구와는 부자 관계로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둘이 딱 마주치는 건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심리적인 롱 샷(shot)을 오래 연기해서 행복했죠. 특히 진웅이 형 작품은 거의 다 봤을 만큼 좋아했던 배우라 둘이 대화하는 장면이 너무 즐거웠어요. 칼만 안 들었지 계속 줄다리기하며 극을 쌓아가는 관계라 더욱 흥미로웠고요. 제가 준비해온 연기와 형의 연기가 부딪혔을 때의 시너지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신구 선생님과의 공연도 감동이었고요. 연륜이 밴 연기를 경험하면서 많이 배웠다는 걸로 갈음할게요.”

영화 후반부에 승훈과 성훈의 격투장면은 정육식당 냉동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며 스릴을 더한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결코 아니지만 두 배우로부터 절박함이 잔뜩 묻어난다.

“평범한 의사와 정육점 주인의 싸움이라 막싸움이었죠. 사전에 합을 맞추지 않아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골프채로 내려쳐야 해서 형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됐어요. 의외로 액션신이 자주 있었는데 성근은 싸움을 잘하는 인물은 아니고 폭력성 짙은, 막 사는 사람이라 표현이 쉽지는 않았죠.”

 

 

이수연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이유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사건의 키를 쥔 범인 목소리를 연기한 것을 인상 깊게 봐서였다. 실제 인물이 누군지 궁금해 했다고 한다. 감독뿐만 아니라 조진웅 역시 김대명의 목소리에 대해 특별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정작 본인은 “특이하다고 생각진 않으며 승부를 보려고도 안했다”고 손사래를 친다.

캐릭터를 구축할 때 습관처럼 그래프를 그린다. 가로 세로로 나눠서 상황, 시간대별로 인물 전체에 대한 그림을 그려간다. 감정상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큰 그림을 그리고 난 뒤 디테일한 부분에 들어간다.

“인물을 만들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방식이에요. 굉장히 투박하게 감정선이 흘러가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성근은 0.1 차이로 좌우됐어요. 너무 미묘한 캐릭터라 아주 예민해졌어요. 이런저런 캐릭터를 오가다 보면 힘이 들죠. 배우가 제정신으로 사는 게 쉽지 않구나,를 절감하고요. 어두운 작품을 할 때는 평소에도 그런 감정을 유지하려 해요. 코믹한 캐릭터 할 때는 평상 시 나쁜 일에 자극받지 않도록 관리를 하죠. 제가 화난 상태면 남들 웃기기가 힘들잖아요.”

‘미생’ 이후 다작 배우로 불릴 만큼 작품 활동이 활발하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 ‘특종: 량첸살인기’ ‘내부자들’ ‘덕혜옹주’ ‘판도라’, 시트콤 ‘마음의 소리’ 등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강동원 한효주 윤계상과 함께 영화 ‘골든 슬럼버’ 촬영에 한창이다.

 

 

“‘판도라’ ‘마음의 소리’ ‘해빙’이 한 달 간격으로 선보여 그럴 거예요. 여유롭게 했던 작품들이었는데 배우란 직업이 언제 개봉할지 모르니까...의도적으로 다작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 쉬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감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돼서요. 다시 가는 현장이 어색하면 연기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배우 김대명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각양각색이다. 악하게 보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 바보 같이도 본다. 무척 웃기는 사람으로도 여긴다. 그가 천연덕스레 해낸 역할들 때문이다.

“배우로선 감사한 일이죠.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히질 않았으니까. 제가 했던 캐릭터들은 다 달라서 기억에 남아요. 동네 바보도 했다가 악당도 했다가...미국 CIA가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또라이인 줄 알 거예요.(웃음) 이게 다 배우 김대명의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과정이 될테니 소중하죠. 앞으로 또 어떤 역할을 주실지 궁금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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