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 진구를 지난 28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전성기를 맞이한 진구가 이번에는 능구렁이 같은 미소로 사람을 꿰뚫어 보는 사기꾼으로 돌아왔다. 범죄 오락 영화 '원라인'은 평범했던 대학생이 베테랑 사기꾼을 만나 업계의 샛별로 거듭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태양의 후예'의 서대영이 그야말로 '상남자'였다면 '원라인'에서 진구가 맡은 장과장 역할은 그보다는 부드럽고 능글맞은 인물이다. 주인공 이민재를 사기꾼으로 거듭나게 한 장과장은 어떤 인물일까.

"장과장은 은행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회의를 느꼈을 거다. 돈을 '쓰려고' 버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돈을 종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좋은 차나 좋은 집을 갖기 위해 사기꾼이 된 게 아니라 자신이 돈이라는 종이뭉치를 어디까지 모을 수 있느냐가 목표였을 거다. 거기 나온 모든 사기꾼들이 욕심 있는 인물이지만, 장과장은 단순한 종이 욕심이었다. 돈 욕심이 아니라"

능글맞은 장과장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모습은 원래 그의 성격이 장과장과 같았던 건 아닐까 지레짐작하게 만든다.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만큼 촬영장이 편하고 즐거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그러나 '원라인'을 흔쾌히 수락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진구는 시나리오를 한차례 고사했었다고 고백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태양의 후예' 때문에 그리스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힘들었다. 지친 상태에서 대본을 받으니까 잘 넘어가지 않더라.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얼마나 빨리 읽느냐가 원래 내 작품 선정 기준이다. 그런데 '원라인'은 참 안 넘어갔다. 관객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 줄 자신이 없었다. 감독님을 찾아가서 '원라인'이라는 작품의과 장과장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나한테 설득해 달라고 했다."

의외의 답변에, 양경모 감독이 캐스팅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난 시사회에서 한 명 한 명 배우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애정을 표현한 양 감독의 모습이 그려졌다.

"감독님이 실제 인터뷰했던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나를 좀 감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 사람들이 진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또 마침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라 가볍게 참여할 수 있겠더라. 감독님도 나한테 가볍고 편안한 연기를 요구했다. 실제로 내가 술자리에서는 너스레도 잘 떨고 까불까불하고 부드럽다. 감독님이 지금 딱 그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양경모 감독을 언급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유독 깊은 신뢰가 느껴졌다. 작품을 하는 동안 감독과의 호흡이 '역대급'으로 좋았다며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

"대본을 참 잘 이해시켜 주셨다. 좋은 스승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촬영 내내 감독님한테 다음 작품 하자고 조를 정도였다. 나는 지금 그분을 무한신뢰하고 있다. 너 알아서 하는 게 제일 잘하는 거야, 라고 묵묵히 믿어주시더라. 가끔 내가 샛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이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잡아주셨다"

 

 

진구는 이번 '원라인'의 기대 스코어를 500만으로 잡으며 넉살 좋게 웃기도 했다. '태양의 후예'로 글로벌 스타가 되기 전 '올인'으로 데뷔해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뚜렷한 활동이 없어 '반짝스타'로 잊히는 듯했다.

"2003년 1월 '올인'을 하면서 엄청난 인기와 이슈를 즐기다가 보름 만에 거품이 다 빠지고 큰 상처를 받았다. 독기에 찬 채로 주인공만 하겠다고 오디션을 봤다. 너무 건방졌었다. 2년 반 동안 오디션에서 다 떨어졌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비열한 거리' 오디션을 봤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열심히 했다. 첫 조연이었는데, 주인공이 아니어도 큰 사랑을 받더라. 주연 조연 상관없이 연기자는 연기자라는 걸 그때 배웠다. 욕심은 버릴수록 좋은 거라는 것도 그때 배웠고. 이제는 작품이 잘 안 돼도 상처를 안 받는다. 잘 됐을 때는 세 배로 기뻐한다"

무명에서 혜성 같은 신인으로, 다시 원점으로, 그리고 또다시 스타로. 그가 연기를 대할 때 드러내는 진지한 태도는 그런 인생의 굴곡이 없었다면 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고를 때는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이 작품으로 관객이나 시청자를 재밌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그분들의 영화 푯값이나 시청 시간을 책임질 수 있는가를. 다른 기준은 없다. 조연이든 주연이든 자기 자신이 주연이라 생각하면 마음먹기 나름이다. 항상 마음을 비워놓고 있다. 매 작품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한테 출연료도 주고, 즐거운 경험도 시켜주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해 주니까. 즐기면서 한다."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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