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관한 한 무림 고수급인 최민식의 ‘정치 9단 서울시장’은 어떤 질감일까. 제19대 대선을 앞둔 시기에 개봉하는 ‘특별시민’(26일 개봉)은 선거전이란 소재와 메시지도 인상적이나 배우들의 액팅 향연이 짜릿하다. 그 중심에는 최민식이 자리하고 있다. 20일 오후 삼청동 카페에서 헝클어진 머리에 편안한 니트 스웨터, 질박한 미소를 걸친 그와 마주했다.

 

 

01. 논란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변종구(최민식)와 강력한 여성후보 양진주(라미란)의 선거전은 “똥물에서 진주를 찾는” 과정이다. 흑색선전과 이미지 조작, 협박, 단일화를 둘러싼 검은돈 거래 등 불법과 비리가 난무한다.

“이런 시국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논란의 여지가 있으리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창작물이 천편일률적이어선 안되지 않나. 문화상품이므로 이런 내용도 필요하다고 본다. 대중이 취향껏 선택하는 거고, 양면적 반응에 자유로워져야 제대로 작업할 수 있다고 본다. 혹평은 혹평대로 받아들인다.”

 

02. 흥행

배우 역시 흥행성적에서 자유롭진 않다. 특히 영화의 축 역할을 맡는 베테랑에겐 더더욱 어깨가 무거워진다. ‘특별시민’의 영어제목(The Mayor)마냥 최민식은 이 작품의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는가 하면 리드미컬하게 끌고 간다. 

“흥행 여부는 가급적 생각 안하려고 한다. 생각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내가 주판알 튕겨봤자 돌아오는 건 공허와 상처뿐이다. 오로지 영화의 만듦새, 관객과 소통 지점에만 집중할 뿐이다. 소비자들로부터 의외의 반응이 나올 때 굉장히 재밌다. 관객의 지적과 칭찬이 나름의 데이터가 돼 다음에 다른 장르, 캐릭터를 할 때 도움이 된다. 대중의 취향을 좇는 게 아니라 ‘이렇게 연기했을 때 소통이 안됐구나’를 확인할 수 있다. 내 나름의 레포트를 쓰는 거다.”

 

 

03. 아쉬움

진실과 거짓, 믿음과 배신, 음모와 죽음이 종횡하느라 2시간10분이 후딱 지나간다. 후반부에 다소 늘어지는 점, 최적의 러닝타임을 웃돈 점 등이 아쉬웠기에 물었다.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해야 하지 않았을까. 오락영화처럼 빠른 템포를 요구하는 영화가 아닌데 마의 2시간대 눈치를 봤다. 본격 정치드라마를 시도하니 만큼 조금 긴 호흡으로 느긋하게 보는 영화도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란 주장을 투자·제작사에 한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지루해 할 수도, 호흡이 짧다고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중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볼 영화도 필요하다고 여긴다.”

 

04. 변종구

변종구는 변절한 386세대 정치인이다. 학생운동 출신 공장 노동자에서 사법고시 패스,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산전수전 겪으며 재선에 성공했을 만큼 노회하다. 대권을 꿈꿀 정도로 권력욕이 대단하다.

“유권자를 만날 때, 참모들과 회의할 때, 가족과 함께할 때, 사업가를 만날 때 말의 톤과 빠르기, 행위, 때깔에서 이 사람의 굳은살이 보여야 한다가 숙제였다. 이 사람이 짬밥 있는, 관록의 정치인임을 보여주려 했다. 시장 유세를 마치고 빠져나올 때 손을 습관적으로 닦는 디테일은 그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내가 놓치고 간 부분도 있겠지만 관계에서의 가변성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다음으론 상대 배우들과 연기 면에서 잘 어우러져야 했다.”

 

 

05. DJ

1995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젊은 날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기한 적이 있다. 국내 정치사에서 ‘정치 9단’의 대명사로 여겨져온 인물이다.

“해보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뻔했다.(웃음) 그땐 내가 너무 어렸고, 실존 인물, 현존하는 정치인이라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관훈토론회 영상을 보며 공부하고, 동교동계 김옥두 한화갑 의원과 전화통화도 하고 그랬다. ‘다리를 너무 절지 말아라’ ‘가택연금 때도 항상 정장을 입으셨다’ 등의 조언을 들으며 바로 바로 수정했다. 반면 이번엔 자유롭게 연기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방편이기도 했다.”

 

06. 메시지

최민식은 정치인을 욕하는 게 일상이 된 사회에서 누군가를 욕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님을 강변했다. 잘못된 정치풍토, 정치인의 자세에 대해 비판의식을 곧추 세우기 위해 만들었음을 강조했다.

“느닷없이 대선을 치르게 된 상황에서 분명 이 영화의 건강성이 있다. 되돌아보면 체육관 선거를 하다가 직접 투표를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권한을 가진 사람인지를 망각하고 살았다. 나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 한 표가 결코 사표가 돼서는 안됨을 다시금 느꼈다. 누구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좌우되는 것이니 만큼 거대 권력자보다 더 막강한 사람들이 시민들이구나, 그들이 특별한 시민임을 절감했다.”

 

 

07. 힙합

입길에 오르내린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청춘토크쇼’에서 최민식은 스냅백과 선글라스, 짖어진 청바지를 착용한 채 무대에 올라 다이나믹 듀오와 힙합송을 열창한다. 랩까지 능숙하게 구사한다.

“유망한 광고전문가 박경(심은경)이 처음으로 등장해 변종구를 향해 ‘이거 다 쇼 아니에요?’란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어울리려면 진짜 쇼를 하는 게 필요했다. 어느 날 ‘쇼미더머니’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진짜 좋았다. 흥분이 되더라. 리듬도 그렇지만 가사가 직설적이고 팍팍 꽂혔다. 그래서 힙합공연을 제안했던 힙합이 유행이니 잘 나가는 힙합그룹 리스트를 만들어 조율에 들어갔다. 다이나믹 듀오가 흔쾌히 오케이 해서 바로 만나 소주 한 잔을 마신 뒤 연습실로 직행했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바로 후회했다...하하. 변종구가 너무 매끄럽게 랩을 해도 재수 없으니 막판에 트로트로 살짝 비틀었다.”

 

08. 폐공장 연설

랩이 웃음을 선사했다면 폐공장 연설은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변종구가 청년시절을 보낸 문래동 폐공장에서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하는 장면은 정의롭지 않은 그의 본질을 알고 봄에도 절로 마음이 움직인다.

“굉장히 중요한 신이었다. 원래는 15분이 넘었다. 기존 대본이 입에 맞아야해 촬영 전날까지 내가 계속 첨가, 수정했다. 그러다보니 너무 길어져 암기를 다 못했다. 연설이라 대본을 보면서 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모니터를 보니 못 외운 티가 났다. 너무 미안하고 못견딜 것 같아 재촬영을 요구했다. 연설문을 밀도 있게 축약한 뒤 이번엔 달달 외워 촬영에 들어갔다. 한 인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컷이 드물기에 책임져야 한다. 시간을 줬으면 말아먹으면 안되므로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만족한다.”

 

 

09. 정치인 그리고 배우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점에서,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인이나 배우의 직업적 속성은 일면 동일하지 않을까.

“비록 가상의 현실에서 정치를 해봤지만 죽었다 깨나도 정치인은 못할 거 같다.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정치인은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 대중이 인정해줘야 생존이 가능하다. 반면 배우는 공익을 위해 일하는 직업군은 아니다. 연기는 태생적인 공익성은 없지 않나. 그들의 창작물을 대중이 보고 싶으면 보고, 아니면 마는 거다. 다만 상상에 기초한 여러 감정을 대중과 공유하는 거다. 정치인과 달리 누군가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존재는 아니다.”

 

10. 투표

대선이 코앞이다. ‘특별시민’ 관련 공식석상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소신 발언을 몇 차례에 걸쳐 했고, JTBC 대선홍보영상에도 출연할 만큼 깨어있는 유권자의 모습을 보여오고 있다.

“후보를 선택할 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 직업적 속성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후보자의 언행, 정치적 궤적, 소속 정당 등등을 고려하는데 난 특히 말에 집중한다. 그리고 눈을 본다. 배우는 관찰력이 학습돼 있기에 TV에서 연설하거나 자기 의견을 말할 때 눈을 보면 외워서 하는 건지, 진짜 정책 및 사안에 대한 소신이 있는 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달변과 눌변의 차이가 날 지라도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지가 보이고, 보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한테 이번에 투표할 거다.”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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