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봄날에 달콤함을 더해줄 영화축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오늘(27일) 개막한다. 유독 번뜩이는 작품들이 많이 상영을 예고해 눈길을 끄는 가운데,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봄바람을 타고 시네필들을 찾아온 열한 작품을 살펴봤다.

 

1. B급 며느리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들이 다수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 중 ‘B급 며느리’(감독 선호빈)는 결혼 3년차 감독이 어머니 때문에 부인과 부부싸움을 하는 실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고부 갈등과 결혼에 얽힌 문제를 전달한다.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유산에 맞선 젊은 여성의 반항을 경쾌한 리듬의 관찰 카메라로 따라 대중의 공감을 톡톡 자극한다. 그 사이에 있는 감독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현실적 시각을 드러낸다.

 

2. 금속활자의 비밀들

‘금속활자의 비밀들’(감독 우광훈)은 캐나다인 데이빗이 프랑스 유학 시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인 직지에 대해 알게 되고 13세기 세계 최고의 문자 문화를 이룩한 고려 활자기술의 유럽 전파 가능성을 찾아 유럽 5개국을 떠나는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낯선 문화에 접촉하는 이방인의 호기심이라는 지점을 조명한다.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를 재미난 감각으로 다룬다.

 

3. 노마드

‘노마드’(감독 이완수)는 재개발을 앞둔 도시에서 불안한 미래 때문에 괴로워하는 독립영화감독 동구(백수장)가 혼자 살고 있는 아이 석영의 집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연을 다룬다. 이완수 감독의 데뷔작 ‘노마드’는 최근 대중영화에서 보기 힘든 느릿한 호흡으로 진행된다. 현실에 상처 입은 주인공 동구가 관객들의 공감을 자극하면서 결핍, 처절함을 전달한다. 인디영화계의 스타 백수장의 연기가 메시지에 방점을 찍는다.

 

4. 버블 패밀리

‘버블 패밀리’(감독 마민지)는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천민자본주의를 직시한다. 1980년대 소규모 건설업으로 중산층 대열에 합류한 감독의 부모가 IMF 이후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습을 집중하는 다큐멘터리다. 마 감독의 솔직한 문법은 한 가족의 사연을 우리 세대의 보편적 색채로 그려낸다.

 

5. 샘

‘샘’(감독 황규일)은 독특한 로맨스코미디 영화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두상(최준용)이 첫사랑 샘을 찾아 상경하는데, 그 앞에 나타난 세 명의 여자가 모두 샘으로 보이며 그려지는 사연을 다룬다. 첫사랑과 같은 외모의 다른 사람이라는 아이러니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어 독특한 ‘낭만’을 실천한다. 지난 해 ‘연애담’으로 주목받았던 배우 류선영이 또 다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6. 수성못

대구토박이 오희정(이세영)은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편입시험을 준비한다. 학비 마련을 위해 수성못 오리배 매표소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희정은 잠깐 잠든 사이에 사고가 일어난다. ‘수성못’(감독 유지영)은 자살을 소재로 20대 청년들의 삶을 깊게 바라본다. 심각한 주제와는 다르게 영화는 산뜻한 톤으로 진행, 비관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7. 여수 밤바다

서울에서 공연 예술가로 활동 중인 지석(정형석)은 작품이 망하자 빚쟁이를 피해 즉흥 여행으로 여수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미희(이지연)를 만나고, 그녀와 가까워지려 시도한다. ‘여수 밤바다’(감독 정형석)는 처량한 상황의 남자가 타지에서 연애감정을 느끼고, 또 다른 남자와 경쟁하는 이야기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낙관성이 영화의 톤을 반짝반짝 빛낸다. 힘든 일상에 빠져있는 관객들에게 따뜻함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8. 파란나비효과

최근까지도 큰 논란을 낳고 있는 사드(THAAD) 배치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눈길을 잡아끈다. ‘파란나비효과’(감독 박문칠)는 경상도 성주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젊은 엄마들을 만난다. “전자파로 아이들이 입을 피해가 걱정된다”는 엄마의 모성애부터 점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가는 성숙까지 다각적으로 살펴보며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 폭력의 씨앗

군 복무 중인 주용(이가섭)은 선임병에게 폭행당해 온 사실을 간부에게 폭로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분대원 일행 단체로 외박을 나오게 된다. 선임병은 자신들을 고발하려 했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폭력의 씨앗’(감독 임태규)은 우리 사회 폭력에 관한 심도 깊은 메시지를 남기는 영화다. 폭력이 개인적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역설하며, 상황을 급박하게 쫓아가는 카메라로 현실감을 배가한다.

 

10. 해피뻐스데이

‘괴물’인 큰 아들의 집에 모이는 가족들. 드디어 마지막 생일잔치가 시작된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괴물의 방에 들어가 10분씩 마지막 시간을 가지라고 하고 가족들은 그 앞에서 자신의 상처와 비밀, 진솔함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해피 버스데이’는 이승원 감독의 데뷔작이다. 당황스런 소재에 문뜩 드러나는 슬픈 웃음이 관객을 다양한 감상에 빠뜨린다.

 

11. 홀로그램 유니버스

‘홀로그램 유니버스’(감독 김지혜)는 1991년 데뷔한 포크듀오 그룹 ‘16년 차이’를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다. 특유의 서정 넘치는 음률과 솔직담백한 가사로 데뷔 당시 큰 호응을 얻었으나 1990년대 중반 포크 뮤지션들의 활약이 줄어드는 흐름 속에 이들 듀오 역시 잊혀졌다. 하지만 여전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홀로그램 유니버스’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한다. 영화는 세월이 흘러도 변화하지 않는 뮤지션의 자부심을 노래한다. 대중과 관계 없이 진정한 예술가의 자세를 드러내며 남모를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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