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선이 내일로 다가온 가운데 특별한 감회에 젖는 남자가 있다. 배우 곽도원(44). 5월 황금연휴 극장가에 우뚝 선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에서 3선 서울시장에 출마한 변종구(최민식) 캠프를 이끄는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역을 맡아 혼탁한 선거전을 주도한다.

 

 

“최민식 선배님이 적극 추천해주셔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선거에 초점을 맞춘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신선하면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죠. ‘사’자가 들어가는 전문직을 많이 연기해왔는데 검사 출신 국회의원, 핵심 브레인이자 권모술수에 능한 선거대책본부장 역할에 대한 생경함, 관객에게 배우로서 변화를 어떻게 어필할지 고민이 들었고요.”

곽도원은 정치드라마 그것도 선거 소재 영화에 몸을 담았기에 이번 대선전 기간 동안 유력 후보들의 TV토론을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 실망도 하고, 희망을 보기도 했다.

“한 번은 후보들간 토론을 보면서 말은 끊임없이 하는데 내용이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실망이었죠. 정치인이 말을 잘해야 한다는 건 지식을 논리정연하게 펼칠 줄 알아야 하는 건데 말만 하는 느낌이라 답답했죠. 날카로운 질문이 나오기 위해선 특정 사안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하지만 이후 토론을 보면서 이런 공약 의지를 지닌 후보라면 유권자로서, 특별시민으로서 기대를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희망을 본 거죠.”

아무래도 정치인을 연기하다보니 아직까진 국민들에게 불신의 대상이자 욕받이 아이콘인 정치인에 대한 생각을 다각도로 하게 됐다.

 

 

“정치에 관심이 있지 않았고 뭔가 바뀌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뽑았지만, 이상한 사람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반복해서 목도하며 세뇌당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 힘은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성역 같았죠. 그런데 ‘무한도전’에 출연한 박주민 의원의 ‘의원 사무실로 아무 때나 찾아오시라. 당신들이 뽑은 사람 사무실 아니냐’란 말을 듣고는 ‘맞네...맞는 말이네’라고 중얼거렸어요. ‘특별시민’ 촬영을 하면서 정말 좋은 분들도 만났고, ‘내가 생각한 게 맞구나’란 생각이 들 만큼 그들의 실체를 봤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극중 심혁수는 출세와 성공, 권력을 향해 불도저처럼 질주한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탈법과 불법 따윈 개의치 않는다. 비열한 악취가 코를 찌르는가 하면 동시에 “선거는 진흙탕에서 진주를 캐내는 거야” “과정이 어떻든 프로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약점 잡힌 놈이 복종하는 거야” 등 프로페셔널한 말의 성찬을 제조한다.

“정치를 생물이라고 하잖아요. 어제의 적이 오늘은 아군이 되는 상황에서 누구를 믿겠어요.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란 최민식 선배님의 대사처럼 존재하는 이들이죠. 세상 누구도 믿지 못하는 심혁수에게 구두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부적 같은 것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집착하잖아요. 외로워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외로움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부적?”

제작진뿐만 아니라 곽도원도 ‘특별시민’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이후 현실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데 정치영화, 정치적 소재를 다룬 작품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관객들이 ‘정말 세상도 이런데 또 이런 영화를 봐야하나?’란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거라 봐요. 하지만 좀 더 파고들어가 뿌리까지 느껴본다면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최순실 국정농단 비선실세 사건을 거치며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 갖게 됐잖아요. 최선을 다해 만들었고 그만큼 메시지도 강렬하니 이 영화를 보시고 9일 투표의 필요성을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스크린에서 ‘특별시민’이 먼저 뚜껑을 열었지만 현실에선 9일 투표함이 열린다. 대한민국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권력을 추종한 심혁수를 연기한 배우로서, 유권자인 특별시민으로서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치라는 게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움직이잖아요. 정치인들은 한 석, 한 표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노력하는 거라 이해하고요.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잘해서 정치의 대의를 세워준다면 가난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고립된 채 돌아가시는 일은 없을 거라고 봐요. 생계에 허덕이는 연극인들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분이 대통령이 되셨으면 해요.”

 

■ 곽도원의 막판 토크 셋

01. “민식이 형, 강호 형은 죽어도 못이겨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후 다시 만난 최민식과는 믿음과 배신을 오가며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많았다.

“선배님과 있으면 평정심을 잃어버려요. 기에서 눌려 일단 떨려요. 신들린 것 같이 하시니까. 리액션이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속도감으로 들어오니까 총에 맞는 느낌? 민식이 형이나 (송)강호형은 죽어도 못 이겨요. 대신 핑퐁 치듯 해서 짜릿함, 희열이 있죠. 그래서 공연을 또 하고 싶고...중독성이 있어요. 나도 집중력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아무래도 민식이 형이 다니는 연기학원을 다녀야할 거 같아요.(웃음)”

 

 

02. “나 만의 메소드가 있어요”

스무 살부터 연극무대에서 연기력을 벼린 곽도원은 연극배우 시절 연기와 연출을 섭렵했다. ‘변호사’에서 등장만으로 관객을 살 떨리게 하는 위압감을 자랑한다.

“나만의 메소드 연기법이 따로 있어요. 관객에게 내가 하는 연기의 정답을 얘기해줘야 하니까 배우는 여러 메소드들 중 내게 맞는, 내가 추구하는 메소드를 조합해내는 게 중요해요. 제3의 눈으로 내가 연기할 때 사용하는 것들. 그걸 계속 대입시키고 끄집어내죠. 총알로 갖고 있던 것들을 현장에서 쏘는 거예요. 무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냐, 비슷한 캐릭터에 매몰되는 배우냐를 가늠하는 척도가 돼요.”

 

03. “깡패 역할 해보고파”

배우의 꿈은 다양한 캐릭터를 해보는 거다. 다른 삶을 경험하고 고민하며 인간적으로, 연기자로서 한 뼘은 더 성장하게 된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깡패 역할을 한 번도 해보질 않아서 해보고 싶어요. 꿈꿨던 캐릭터를 ‘신세계’에서 정민이 형(정청 역)이 해서 깜놀 했어요. 정민이 형이 항상 앞서요. 나이는 서너살 차이인데 열 걸음은 앞서 가요. 깡패 전에 일단은 외교안보수석 먼저 끝내야 해요. 오는 25일 촬영이 끝나는 영화 ‘강철비’에선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정부 관료로 나와요. 외국인과 영어로 토킹 한답니다. 하하.”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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