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는 풍산개 마루와 지순이를 키우는 개 아빠이자 길고양이었던 찡찡이와 뭉치를 애지중지하는 집사다. 대선 후보 시절 문 당선자는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한 움큼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5대 공약 가운데 하나가 목에 가시처럼 콕콕 찌른다. 바로 ‘길고양이 급식소 및 중성화(TNR) 사업 확대’다.

 

 

예전에 집 고양이, 도둑 고양이라고 불리던 코숏(코리안 쇼트 헤어)들은 이제는 머리 크고 덩치 큰 외래종들과 더불어 길냥이, 실내 고양이로 처지가 갈린다. 어찌됐든 두 부류 모두 중성화 수술을 당할 수 있다. 실내에서 사람과 사는 개들 역시 같은 처지다. 자칭 집사, 엄마, 아빠가 제일 먼저 선물하는 신세계다. 그들은 말한다. “미안. 그렇지만 같이 살려면 할 수 없어, 뛰쳐나가면 더 위험해”.

길에서 사는 애들도 중성화가 더 안전한 관리라며 길고양이를 잡아서 전신 마취를 시키고, 뱃속의 이런 저런 기관을 떼어내고, 귀 끝을 잘라 관리 당했다는 표시까지 해서 풀어주는 게 동물복지일까. 인간보다 약하고, 사람에게 의지하는 생명을 우리 편하자고 억지로 몸에 칼을 대는 게 진정한 복지일지 의문이 든다.

가출 위험성 탓에 중성화 수술을 감행하거나 애기 울음소리를 내고, 여기 저기 오줌을 싸고, 음식 쓰레기를 헤집고 다닌다는 이유로 닥치는 대로 잡아 단종 수술을 한 뒤 풀어주는 게 온당한 일인지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유명 수입 종자 개들만 눈에 보이는 판국에 고양이까지 토종씨가 말라버려 일찌감치 길들여 상품화된 수입 고양이 종만 남는다면 참 싫을 것만 같다.

 

 

개·고양이 ‘중성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말이다. 약한 동물을 억지로 기절시켜 수술을 시킨들 타고난 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개·고양이의 짝 짓기 전후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일들을 우리가 부담스러워서 미리 막는 것일 뿐이다. 어른이 된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보는 건 ‘동물의 왕국’으로 충분하고, 내 공간에서는 부담이라는 ‘암묵적 동의’에서 나온 용어란 느낌 탓에 미안하다.

‘중성화’란 용어는 ‘neuter’라는 영어 단어를 그대로 빌려다 쓴 모양이다. 그 수술을 중성적 혹은 중립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고, 더 이상을 상상하는 것을 중단하게 만드는 용어다. 명칭 자체가 수술의 본질을 중화시킨다. 중성화? 뭘 해도 개·고양이의 고유한 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 없이 떠도는 작은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삶까지 한순간에 수도자의 삶으로 만드는 건 아닌가 싶다. 실내에서 함께 살려고 반려동물의 중성화를 택한 경우에도 주인의 결혼, 임신, 이사 등 상황 변화로 책임 못 지는 허다한 경우까지 생각하면, 우리 손으로 길고양이 개체 수를 수술로 관리해 보려는 결심은 무모하고도 위험하다.

사진출처= 문재인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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