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 당인리발전소 인근 수제맥주 펍 ‘크래머리’. 12평 남짓 공간에 6개의 2인용 테이블과 창가쪽 바 테이블이 소담스럽다. 조용한 거리에 독일 수제맥주의 향을 퍼나르는 사장님은 이원기(39) 이지공(38)씨다. 이들은 경기도 안산 소재 브루어리(양조장) ‘크래머리’의 공동 대표이기도 하다.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이른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나고, 은퇴한 이들이 너도나도 몰려드는 창업시장에서 3년째 흔들림 없이 질주하고 있다. 더욱이 가족도 원수 되기 십상이라는 ‘동업’의 허들을 넘어.

 

이원기(왼쪽) 이지공 '크래머리' 공동 CEO

두 사람은 2015년 2월 안산에 브루어리를, 6월 합정동에 펍을 일사천리로 오픈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나름의 성공 법칙이 엿보였다. ‘성향과 목표의식은 비슷하나 담당 업무는 철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원기씨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코오롱 울산공장에서 화학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대학에서 재무를 공부한 이지공씨는 졸업 후 은행에서 일했다.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적을 뒀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워낙 술과 맥주를 좋아했는데 국내에선 맥주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할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맥주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대기업에 다니고 처자식을 거느린 쉽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독일 유학을 선택했죠. 6년 동안 체류하며 뮌헨공대에서 양조학을 전공, 브루마스터가 됐어요. 중간에 아내와 아이는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 기러기 아빠로 지냈고요. 하하.”(이원기)

 

 

“은행에서 예적금·투자관련 업무를 했는데 군대 같은 회사 분위기와 격무로 인해 내 삶은 없었어요. 월급은 많은 편이었지만 10년, 20년 후의 미래가 뻔히 보였어요. 그래서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인 독일에 가서 시스템을 배워보고 싶어 독일행을 결정했어요. 아무래도 나만 책임지면 되는 싱글인지라 선택은 비교적 자유로웠어요. 이후 1년2개월간 대학 부설 어학원에 적을 두고 이런저런 체험을 했죠.”(이지공)

독일에서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두 남자는 “한국에 없는 수제맥주 문화를 선도해보자”는 빅 픽처를 그리며 금세 의기투합했다. 수제맥주 주세·유통 관련법이 바뀌면 대기업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무엇보다 맥주의 달인과 재무 마스터의 결합이라는 역할분담과 시너지 효과가 이상적이었다.

합의 하에 이지공씨가 먼저 귀국, 무역회사에 다니며 무역을 배우며 물건들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노하우를 습득했다. 뒤이어 이원기씨가 귀국한 뒤 창업자금을 최소로 투자해 사업을 시작했고, 아직까지 마이너스 없이 살아가고 있다.

“보통 공장(양조장)을 오픈하는데 5억원이 소요되는제 저희는 그보다 적은 금액으로 출발했어요. 대신 저렴한 중국 장비를 사용하다보니 수리, 교체 과정이 발생했죠. 무엇보다 브랜드를 알리는 게 관건인데 적은 인원으로 하다 보니 원료 수입부터 맥주 제조, 유통, 판매·영업, 회계, 홍보마케팅을 다 해야 하니까 힘겨웠죠. 현재 공장에 4명, 펍에 4명이 근무하고 있을 만큼 많이 성장했죠.”

 

 

‘크래머리’의 시그니처 아이템은 청량감과 맥아의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라거맥주 필스너다. 이외 바이에른식 오리지널 밀맥주 바이젠, 진한 풍미와 높은 도수(7도)를 자랑하는 복비어(바이젠복·앰버복), 초콜릿과 커피맛이 특징인 스타우트, 다량의 홉을 사용한 IPA(싱글홉·크래머리)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 독일맥주 스타일에 중점을 두면서도 수제맥주의 장점이 다양성이라 여러 가지 풍미의 맥주를 만드는데 공을 들이고 있어요. 독일인은 깔금한 라거, 필스너를 좋아하고 한국인은 진한 향, 청량감, 탄산감을 좋아해요. IPA 등 미국식 맥주를 선호하죠. 크래머리에선 기본 맥주 외에 시즌별로 새로운 맥주를 만들려고 해요. 올여름엔 싱글홉 IPA를 내놨죠. 일반적으로 IPA는 여러 가지를 섞는데 저희는 홉 하나만 가지고 만들었어요. 새로운 걸 도전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좋은 맥주가 아닐까 싶어서요.”(이원기)

수제맥주 브루어리와 펍 운영은 노동집약적인 일이다보니 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사생활이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하지만 사업이 성장하는 기쁨에 이런 어려움 정도는 별반 장애물이 되지 않는단다. 무엇보다 속앓이 대상이 아닌, 신뢰하고 의지할 파트너로 인해 힘겨움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서로 하는 일이 달라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역할분담을 철저히 하고 각자 스타일이 있으니 상대의 업무엔 터치하지 않는 게 중요하죠. 각자의 역할을 믿고 맡기면 돼요. 그런 것만 지켜지면 동업에서 트러블이 생길 일은 없지 않을까요?”(이지공)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신 두 CEO는 웬만한 것들을 모두 공유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오랫동안 만나 왔기에 익숙해진 부분도 있다.

“우린 기혼자와 싱글남이지만 무엇보다 서로 바라보는 목표가 비슷해요. 사업을 하게 되면 성공이든 돈이나 명예이든 목적이 분명해야 하잖아요. 우린 수제맥주를 문화사업이라 생각하고,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적으로 성공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같죠. 방향성이 동일해 문제가 없는 듯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창업을 꿈꾸며 도전하는 이들에게 들려줄 조언을 부탁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돈에 욕심을 내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라” “무리한 설정은 금물이며 시작했으면 그 분야 최고가 되도록 항상 공부하라”는 아로마향의 수제맥주 같은 말을 건넸다.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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