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천착해온 2명의 작가가 나란히 신작을 내놨다. 영화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과 소설 ‘종의 기원’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이다. 토막살인, 부친살해 등 참혹한 사건과 연쇄살인이 창궐하는 불가해한 현실에서 두 작품은 강렬한 반향을 일으킨다. 긴박한 서사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속도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서스펜스로 악의 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본 상찬 앞에 앉았다.

 

■ 나홍진 감독 ‘곡성’...11일 개봉 후 3일 만에 90만 관객

 

‘추격자’(2008년), ‘황해’(2010년) 이후 6년 만에 발표한 스릴러 영화 ‘곡성’은 폭력(악)의 근원을 파헤쳐온 전작들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다른 시점을 취한다. 앞서 두 작품이 선명한 선악구도 틀 안에서 가해자가 벌이는 폭력과 살인을 다뤘다면 ‘곡성’은 피해자가 실체 불분명한 악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11일 개봉 이후 3일 만에 89만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곡성’은 평단으로부터는 만장일치 찬사, 관객으로부터는 호불호의 극명한 엇갈림을 얻고 있다.

전남 곡성에 미스터리한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나면서부터 살인, 방화, 자살 등 의문의 연쇄사건들이 발생한다. 경찰은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은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확산한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으로 아파하자 급기야 무속인 일광(황정민)까지 불러들인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 '추격자' '황해' 스틸컷(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나홍진 감독은 최근 싱글리스트와 인터뷰에서 “인간의 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선을 터칭할 도구인 ‘악’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인간과 신으로 이야기를 확장했다. 누가복음과 스티그마타(성흔)의 기독교, 무속신앙 요소, 오컬트 장르를 가져온다. 영화 속 일광의 대사 “그놈은 낚시를 하는거여. 뭣이 딸려 나올지도 몰랐겄제”처럼 악은 우연적이며 무작위적임을, 의심과 현혹에 갇힌 인간은 악의 유혹에 맞서기엔 너무 나약한 존재임을 웅변한다.

무심하게 살인하는 연쇄살인마 영민(추격자), 이유 없이 살육이 이어지는 지옥도(황해)를 거쳐 도달한 나홍진 감독이 도달한 ‘곡성’은 악의 화신이 초대받은 살육과 광기의 공간이자,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을 헤쳐 나가고자 하는 인간들의 성스러운 공간이다.

 

■ 정유정 작가 ‘종의 기원’...14일 출간 전 예약판매 1위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과 힘 있는 문체를 특징으로 한 정유정 작가는 ‘28’ 이후 3년 만에 ‘종의 기원’(은행나무 펴냄)으로 돌아왔다. 평범했던 청년이 살인자로 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어둡고 악한 인간 본성을 탐구했다. 14일 출간된 ‘종의 기원’은 일주일간 예약 판매만으로 인터넷서점 알라딘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 '28' '7년의 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간척지의 신도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26세 청년 한유진은 발작증세로 인해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약을 16년 동안 정기 복용하며 두통과 이명, 무기력증을 겪는다. 몰래 약을 끊은 지 얼마 후 유진은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이 간질환자가 아닌 ‘포식자’라 불리는 1급 사이코패스임을 깨닫는다. 본성을 자각한 그는 살인의 질주를 벌인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을 통해 악을 관찰해온 정유정 작가는 23세 청년이 부모를 살해해 세상을 경악시킨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은 뒤 범죄심리학, 뇌과학, 진화심리학 관련 서적을 수십 권 읽고 프로파일러와 정신과 교수를 찾아가 취재함으로써 탄탄한 서사를 구축했다.

작가는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주인공의 시점에서 써야 했다”며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고 싶었다”고 밝혔다.

‘종의 기원’은 인간의 야만성과 잔인함을 냉정한 시선으로 밀어붙인 정유정표 스릴러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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