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1987년, 뜨거웠던 그날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6일 밤 10시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는 6월 민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1987년 6월 9일, 스물두 살의 청년, 이한열은 군부 독재정권에 항거하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6월 10일로 예정된 대규모 시위 전날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결의대회에 참여했던 이한열은 전경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된다. 이한열의 피격 소식에 많은 시민은 분노했고 거리로 나와 군부 독재정권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6월 항쟁을 가득 메운 외침이자 이한열이 쓰러지기 전 내뱉었던 마지막 구호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는 내용, 즉 호헌을 선언하며 장기집권의 야욕을 드러낸다. 시민들에게는 군부독재의 연장 선언과 다름없었다.

피격된 이한열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나 전두환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한열이 피격된 다음 날인 6월 10일 오전, 민정당 전당대회가 열렸고 노태우 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같은 날, 동아일보에 피격된 이한열의 사진이 실리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움츠렸던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항쟁이 시작되었다.

6.10 국민대회는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전경들의 강경 진압이 시작되자 시위대는 명동성당 안으로 피신했다. 수천 명의 전경들이 성당을 포위해 시위대를 압박했지만, 시위대는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6일간 농성을 이어갔다. 우연을 역사로 바꾼 명동성당 농성투쟁의 순간들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재조명해보았다.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그날들, 그 정점에 있었던 1987년 6월 항쟁을 4월 6일 밤 10시, 현대사의 마지막 시간,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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