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장혜진(35)이 2016 모다페(국제현대무용제) 무대에 선다. 그녀가 이끄는 혜진장댄스의 ‘이주하는 자아, 문의 속도’(25일 오후 8시 아르코 소극장)는 물리적 시간과 인식의 시간 간극 안의 자아 혼란을 그린 문제작이다. 땀방울 뚝뚝 떨구는 현장,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 시간과 이주에 대한 진단적 작품 ‘...문의 속도’

2011년 버지니아 홀린스대 무용과 교수직을 마무리하고 이주할 무렵, 한 여학생이 “자신을 사용해서 솔로작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마치 떠나기 전의 의식 같았다. ‘그녀’라는 재료를 통해 자신의 심리적 지형도를 투영했고, 그녀는 기꺼이 받아 들였다. 이듬해 뉴욕으로 돌아와 몸의 자리에 자신을 바뀌어 끼워 넣음으로써 구체화한 작품이 ‘이주하는 자아, 문의 속도’다.

“작품이 하나의 장치가 돼 그 순간 혹은 그 해의 심리적 지형도가 어떤지 진단하게 되기에 ‘진단적 작품’으로 불리곤 해요. 셔츠를 샀는데 그게 엄마가 태어나던 해였다 식으로 시간이 뒤집어 지며 미궁에 빠지는 기이한 느낌을 서사적으로, 전기적으로 풀어내는 점에 미국 관객들은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고요. 안무가이자 무용수로서 저는 스스로를 진단함과 동시에 내가 응시당하고 있음을 인식하려 노력하고요.”

버클리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공연했는데 관객이 함께하고 있음을 강렬하게 체감했다. 발을 떼고, 독백할 때마다 탄성이 흘렀다. 2013년 7월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 당시 대극장에 올려졌을 땐 실험적 움직임에 대한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즉흥 춤이 많아요. 내면에 순간순간 일어나고 소진하는 것들을 반영하다보니 일반 무용수의 퍼포먼스와 많이 다르죠. 고요. 무대 위 돌아다님을 통해서 시간에 의해 멍이 든다는 경험을 체화할 때 응시자가 자신의 몸으로도 느끼는 부분이 있는 듯해요. 도착하거나 떠날 때 맞닥뜨리는 문, 자아가 통과하는 심리적 공간으로서 ‘문’의 속도라는 게 인지가 불가능한 게 아닐까요. 컨템포러리하고 추상적인 작품이나 스스로 체감하는 심리적 속도로 인해 공감하는 부분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 13년째 미국 체류...방랑자의 삶

서울대 체육교육과(현대무용 전공) 4학년 시절, 교환교수였던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건 대학에서 무용 수업을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졸업한 뒤 다시 미시건 대학에서 나머지 수업을 마치고, 홀린스대에서 안무 프로그램으로 무용 석사를 취득했다. 그러고 나서부터 뉴욕에 체류하며 유럽을 오가며 공연, 무용단원 생활, 교수활동을 이어갔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어요. 지난 13년을 되돌아보면 표류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 흘러가는 대로 맡겨놨어요. 아티스트로서 주어지는 기회에 몸을 맡기다 보니 이 구석, 저 구석에 가 있었던 거죠. 공연, 리서치, 티칭 등의 이유로 1년에 25~30회를 돌아다니는데 ‘예술한다’는 동사 안에는 ‘다닌다’란 의미가 포함돼 있나 봐요.”

 

 

장혜진이 최근 읽은 책 중에 ‘줄기에서 놔버린 움직이는 뿌리’란 표현이 있다. 그란 사람에게 뿌리는 단단히 고정해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점이 작품 활동의 원동력 역할을 해왔다. ‘이주’ ‘표류’가 현대무용가 장혜진의 테마이자 예술시민으로서 파고들어야 할 세계관이 됐다.

 

■ 지난해 이후 한국활동...사회의 운동성 안무적 해석

지난해부터 한국 활동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당인리발전소 리빙랩, 네팔 지진피해 성금 모금 퍼포먼트 ‘MOOOVED; 동하다’ 공동 기획, 춘천아트페스티벌 공연을 했다. CEPA(문화예술 국제교류 융합연구소) 운영 및 국립현대무용단 안무랩 코디네이터, 국민대 공연예술학부 실용무용과 강의 그리고 2009년 창단한 댄스컴퍼니 ‘혜진장댄스’ 대표 등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 기획자로 맹렬히 활동 중이다.

“미국을 방문한 부모님을 따라서 한국에 왔다가 자연스럽게 뉴욕의 짐을 하나둘씩 부치게 됐어요. 국내 활동을 해보니 너무 재밌었어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모국의 작가들과 춤 담론을 나누는 게 정말 좋고요. 향후 10년은 한국에서 보낼까,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춤이란 테두리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안에서 중요하게 관찰해야할 것들에 관심이 많다.

“무엇이 포인트 A에서 B로 움직여졌다고 했을 때 물리학이나 위치에너지가 아닌 안무적인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진행 중인 프로젝트 가운데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운동성을 안무적으로 관찰하고 안무가로서 간섭하는 게 있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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