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 데뷔작 ‘부산행’(2016)으로 화려하게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했던 연상호 감독이 화제작 ‘염력’(1월 31일 개봉)으로 극장가에 돌아왔다.

영화 ‘염력’은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아빠 석현(류승룡)과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진 딸 루미(심은경)가 세상에 맞서 상상초월 능력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연 감독의 전작인 ‘부산행’보다 더 특별한 소재, 묵직한 주제를 담은 작품은 2018년 개봉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할 만큼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인 5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연상호 감독(40)을 만났다. 흥행, 도시개발, 애니메이션, 호러 등 다양한 키워드가 이날의 대화에 범람했다.

 

Q. ‘염력’은 평범한 남자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을 때의 상상으로 빚어진 결과물이다. 감독은 평소에 갈망했던 특별한 능력이 있는지?

“영화를 하면서 느꼈던 시스템의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힘을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염력’의 각본을 썼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갖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보편적 대중의 취향을 한명의 인간으로 보는 능력이다. 이 세상엔 너무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상과 인물은 어떤 모습일지, 그런 것들을 좀 보고싶다.”

Q. ‘염력’을 만들게 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옛날부터 되게 다루고 싶었던 소재였다. 제가 굉장히 좋아했던 작품 중 1991년 작인 ‘노인제트’가 있는데, 마니아들만 아는 덜 유명한 작품이다. 코미디와 SF가 섞인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비슷한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강제적인 도시철거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계속 돼왔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다. 그중 가장 도드라졌던 게 용산 참사였다. 상업영화들을 볼 때마다 가장 안타까웠던 건 영화가 내포한 주제를 공감하는 관객들 위주로 소비된다는 것이었다. ‘염력’은 더 나아가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께 보여주고자 만들었다.”

Q. 시기가 맞물렸는데, 최근에 개봉한 ‘공동정범’이라는 영화도 용산참사를 다루고 있다.

“제가 홍보 영상도 찍었다. 정말 좋은 영화다. 그런데 잘 되고 있지 않아서 안타깝다. 이런 작품들이 주목 받아야 하는데…”

 

Q. 초능력, 도시철거, 코미디. 이 세가지의 조합이 오묘한데 조율하는 과정은 어땠나.

“‘염력’은 체제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말 그대로 ‘웃픈’ 일들이다. 사실 코미디를 녹여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요즘 코미디는 휘발성이 높지만, 원래 코미디라는 장르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시작되지 않았나. 옛날에 ‘유머 1번지’만 봐도 사회성이 짙었다. 만화책도 코믹이면서 어두운 내용을 다룬 작품들이 은근히 인기가 많은데, 극장 시스템 내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Q. ‘염력’을 만들기 전 리스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염력’은 리스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큰 것 같았다. 소재가 재밌긴 하지만, 아직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제야 시작되고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초능력을 비롯한 특수한 소재들이 주목받은 국내 작품으로는 ‘부산행’이나 ‘신과함께’ 등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장르는 태동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초능력도 여러가지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도 일단은 시도는 해보는 게 의미 있지 않겠나.”

Q. 배우들이 입을 모아 연 감독의 연기 지도와 애드리브에 친화적인 점을 최고로 꼽았다. 특히 연기 지도는 큰 영감을 준 모양이던데, 카메오로 다른 작품에 한번 출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일단은 저를 불러주실 감독님들이 안 계시다(웃음). 현장에 애드리브가 좀 많은 편이었다. 현장에서의 시나리오와 기존의 시나리오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좀 더 맞는 대사를 만들어냈고, 액션 중심의 영화가 아니어서 그런 게 많이 필요했다. 이번 영화는 대사가 많은 편이었다. 대사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아 애드리브도 저절로 많이 가미됐다.

 

Q. 천만관객을 달성했던 ‘부산행’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부산행’ 이후엔 소위 ‘가오 잡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고도 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부산행’ 이후에 칸도 가고 싶고, 욕심이 생겨나더라.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전부 이뤄지는 거라면 얼마나 좋겠나. ‘부산행’은 그냥, 되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천만 관객을 넘어서가 아니라, 그 영화를 통해서 얻게 된 기회가 많았다. 이제 그런 기회들을 귀하게 써야겠더라. 또 천만을 바라거나 영화 산업의 선두에 서고 싶은 욕심은 없다. 오히려 좀 다른 걸, 또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염력’을 탄생시켰다.”

Q. 특색 있는 색깔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시절을 지나 ‘부산행’으로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를 치렀다. 그간 해왔던 애니메이션과 상업 영화의 색깔에 간극이 느껴진다.

“단편 ‘지옥’은 판타지 호러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충격적이라며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셨다. 블랙코미디 ‘사랑은 단백질’, 지옥에 가까운 ‘대지의 왕’, 사이비 종교를 다룬 ‘사이비’ 등 이전의 작품을 보고 좋아해주셨던 분들 중에 투자자분들도 계셨고 ‘부산행’을 제안 받게 됐다. 어찌 됐든, 상업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둘 다 제 취향에 가깝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계속 비슷한 류의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도 없지 않나.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아마 대부분의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일테다.”

Q. 류승룡, 심은경, 정유미 등 ‘염력’의 주역들과는 이전에도 합을 맞춘 적 있다. 여러차례 부르게 되는 배우들의 기준이 있다면?

“인물 됨됨이다. 아무래도 촬영을 같이 하다보면, 그 배우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게 되다 보니 나중에 또 부르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영화를 통해 본 배우들보다 좀 더 긴밀하게 알고 있는 배우들에게서 가능성을 더 엿본다. 이 배우는 이런 걸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가 보이더라. 이번에도 모두 다 잘 소화해주신 것 같다.”

 

Q. 최근 ‘사이비’와 비슷한 분위기의 만화책 ‘얼굴’을 출판했다. 영화에 이어 만화책까지, 이제 연 감독의 또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대해 봐도 될까.

“할 생각은 있다. 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고, 생각은 늘 갖고 있다. 최근에 만화책을 냈던 이유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분들이 재밌게 보실 수 있을만한 콘텐츠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얼굴’은 장님 아버지를 둔 아들이, 갓난쟁이 때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가 굉장한 추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최근에 영화 때문에 바빠서 신경을 못 썼는데, 웹툰 플랫폼으로도 선보이고 싶다.”

Q. 차기작으로는 호러를 만들고 싶다던데, 연상호 표 호러의 색깔을 살짝 예상해본다면?

“요즘은 그냥 호러는 매력이 없는 것 같다. 멜로와 호러를 결합시켜보고 싶은데, 모르겠다. 언젠가는 하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은 못하겠다.”

Q. ‘염력’ 개봉 이후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예비 관객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흥행과 상관없이,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선 한참동안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 이상을 봐야 그 영화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제 작품은 ‘염력’이다. 너무 재밌게 작업했고, 꼭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한테 남는 것보다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남느냐가 더 중요하다. 약간은 기괴한 모양새일 수도 있지만 재미 요소가 충분한 영화다.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이면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으니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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