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소셜포비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를 제작해온 KAFA(한국영화예술아카데미)가 올해 ‘양치기들’(1일 개봉, 감독 김진황)을 내놨다. 전직 연극배우 완주가 살인사건의 가짜 목격자 역을 의뢰 받은 후 위험한 거짓의 덫에 걸려들게 되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수상, 최근 베이징국제영화제 ‘포워드 퓨처’ 부문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주연 배우 박종환(34)을 만났다.

 

■ 완주의 혼란과 불안 생생하게 표현

‘양치기들’에서 박종환은 주인공 완주의 혼란과 불안한 심리를 날 것 그대로 표현해내 영화에 몰입하도록 한다.

“장르영화처럼 보였는데 장르적으로 풀기보다 인물 관계와 메시지 중심으로 풀어가는 게 흥미로웠어요. 완주 캐릭터를 마주했을 때는 과거의 순수함을 추억하는 남자가 와 닿았고요. 저 역시 과거엔 순수하게 연기자란 직업에 다가섰는데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놓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했던 게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하게 됐고요.”

박종환은 관객들이 ‘양치기들’을 통해 개인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살면서 겁이 나는 게 많은데 좋은 영화를 보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기잖아요.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거죠. 마찬가지로 ‘양치기들’을 보고 삶이 풍요로워지고 따뜻해졌으면 해요. 용기를 얻으며 든든해졌으면 좋겠고요.”

 

■ 평범한 외모 다양한 얼굴...캐릭터 열전

독립영화 ‘잉투기’ 교미킹 진성, 드라마 ‘더러버’ 사랑 충만한 촌스러운 학원강사, ‘프로듀사’ 무능력한 백수 고시생, ‘출출한 여자2’ 허세작렬 글쟁이, ‘베테랑’의 양실장, ‘검사외전’ 의문의 천식환자...이번엔 역할 대행업자다. 부킹·애인대행 등 의뢰인이 원하는 거짓말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남자다.

독립영화, 천만영화, 지상파·케이블TV 드라마를 섭렵했다. 평범한 외모에서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는 그를 향해 관계자들은 “현실감 있는 생활 연기 기대주”라 부른다. 어수룩함과 풋풋함이 넘치는가 하면 때로는 날카로운 눈매로 훅을 날린다.

“다양한 얼굴을 가졌다기보다는 이면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을 땐 순둥순둥한데 안 웃을 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동안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음에도 강렬한 인상을 준 적이 없어서 대중이 날 알아보지 못하시나 봐요.(웃음)”

 

■ 감독 지망생에서 배우로

서울예대 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특별했던 동기들의 상상력 그리고 재능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겼다. 경쟁력에 대한 압박 탓에 연출을 접고 연기로 선회했다. 이런 백그라운드 덕분에 연기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를 바라볼 줄 아는 ‘경쟁력’을 보유하게 됐다.

“상업영화를 계속 하다 보니 배우의 정서나 감정선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력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까지는 나만의 색깔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에 최적화된 배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려가는 단계죠.”

2009년 독립영화 ‘보통소년’으로 시작한 연기는 캐릭터에 녹아드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8년차로 접어들었다. 특히 옴니버스 영화 ‘오늘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백역사’의 찌질하고 어수룩한, 귀엽기도 한 평범한 남자는 박종환을 또렷이 기억하게 해줬다. 자신과 가장 닮았다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 임시완 최민식 강동원과 연이은 호흡

대규모 대출 사기에 뛰어든 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임시완 주연 영화 ‘원라인’에서는 순수한 건달 기태 역을 맡아 최근 촬영을 마쳤고, 곧장 최민식 곽도원 주연의 정치드라마 ‘특별시민’(감독 박인제) 촬영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상대 후보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는 인물이다.

하반기 개봉 예정인 강동원 주연의 판타지 미스터리 ‘가려진 시간’에서는 선배 형사 권해효로부터 혼나기 일쑤인 찌질하고 어리바리한 캐릭터다. ‘잉투기’에서 인연을 맺은 엄태화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라 의미가 각별하다.

“권해효 선배님과의 극중 모습 때문에 농담 삼아 ‘다크나이트의 조셉 고든 래빗 아니냐’고 말하곤 했어요. ‘잉투기’ 때 이름이 진성이라 감독님께 이번에도 극중 이름을 진성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받아주시더라고요. 격투기 하다가 경찰시험 봐서 형사가 된 거라고 개인사를 만들었어요. 하하.”

■ “설경구처럼 자의식 빠져버린 배우 되고파”

‘오아시스’에서 종도 역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와 이 작품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을 추앙한다. 설경구는 캐릭터와 배우 본인의 매치가 상상이 되질 않는 연기를 완수했고, 이 감독은 이런 결과물을 혹독하게 창조해내서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자의식이 정말 빠진 느낌이 들어서. 전 아직까지는 그만큼 몰입해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몰입해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죠. 그러려면 연출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기에 이창동 감독님의 부름을 받고 싶고요. 감독님의 현장은 혹독한 걸로 유명한데 그런 현장은 오히려 불안감을 내려놓게 할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하고 있구나’란 확신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박종환은 상업영화 뿐만 아니라 독립영화에도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기획성 스토리가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개인의 가치관이 진하게 묻어나는 자전적 이야기가 주는 흡인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조용조용, 느릿느릿 이어가는 말 속에 반골 기질이 만만치 않게 묻어난다.

 

사진 이완기(라운드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