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아픈 현실을 극적으로 풀어낸 영화 ‘양치기들’(6월2일 개봉)이 시네필 사이에서 큰 화제를 낳고 있다. 특히 우리 시대의 단면을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한 신인 감독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개봉도, 칭찬도 모든 게 처음이라 낯설 테지만 홍대 산울림소극장 인근에 자리한 KAFA(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만난 김진황 감독의 표정은 설렘이 가득했다.

  

영화감독 지망생의 꿈, 장편영화.

서른 셋의 나이, 결코 이르지 않은 데뷔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감독이란 꿈이 커서인지 힘이 든다고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왠지 이 순간만큼은 어느 영화보다도 감동적이다. 눈물이 날 것도 같다.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그냥 자연스레 영화감독이란 꿈을 꿨어요. ‘나도 이들처럼 울림을 주는 영화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쪼그만 학생이 이젠 장편영화 개봉까지 하네요(웃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좋아요. 좋다는 말로도 부족한데... 잘 표현이 안 되네요.”

 

잔인한 현실에 방기하는 카메라

‘양치기들’은 군대 폭력, 무너져가는 꿈, 금수저와 흙수저 등 2016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아픈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생생한 현실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감하고 생경하게 표현했다. 최근 여러 영화 흐름과는 꽤 다른 부분이다.

“제가 좀 조용조용한 성격이어서인지, 과한 감정이나 표현이 좀 싫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하고 생각해봤죠. 과한 것보단 담담하게 그려나가는 게 현실적인 것 같았어요. 이 부분이 기존 영화들과 좀 달라서 관객분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이 영화만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메시지? 내 이야기!

단편 ‘갑과 을’에 이어 이번 ‘양치기들’까지 유독 아픈 청년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건 아니다. 각본 작업을 하면서 시선을 보냈던 건, 스스로 경험했던 이야기와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친구들의 아픔이다.

“영화가 ‘거짓말’을 심하게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외에도 외면, 방관 같은 인간의 비겁함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특히 ‘갑과 을’과 ‘양치기들’에 나오는 군대폭력은 사실 누구나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데, 본인들은 비겁하게도 가해자였음을 자각하지 못하죠. 물론 저도 그랬고요. ‘그게 과연 옳은 걸까?’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영화는 그 고민의 연장선입니다.”

 

미진의 사연

영화는 완주(박종환)가 진실을 좇는 중에 미진(김예은)과의 사연은 스리슬쩍 걸쳐놓는다. 어떻게 보면 굳이 필요한 이야기였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면 이 사연이 영화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미진이 에피소드는 완주가 ‘원래대로 모든 걸 되돌려야겠다’고 다짐하는 원동력이죠.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주기도하고요. 어렵게 말하면 ‘내적 명분’을 주는 캐릭터예요. 꼭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면서 저한테도 그런 동력이 되는 여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없네요.(웃음)”

  

교차하는 설렘과 아쉬움

오랫동안 준비해온 데뷔작. 결과물에 충분히 만족하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 아쉽다.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로 다시 한 번 돌아간다면 조금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조금씩 나아지는 감독이 되고 싶다.

“많이 노력했고, 거기다 장편 데뷔니 이 영화엔 참 마음이 가요. 하지만 다 마음에 든다면 거짓말이겠죠? 막상 결과물을 보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한 꺼풀 더 깊게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계속 들어요. 이번을 계기로 여러 선배 감독님들의 대단함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조금이나마 따라가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요.”

 

영화감독으로 살아가기

대한민국에서 영화감독, 그것도 독립영화 감독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러 예비 영화감독들이 장편영화를 찍고 싶어 한다. ‘나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되뇌며 거만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제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는데, 솔직히 아직 힘들지는 않아요. 제가 힘들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예비 영화감독들에게 실례인 거죠. 저는 늘 감사하다고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애초에 좋아했던 일이고, 앞으로 더 갈 길이 머니까요. 근데... 우리 가족들은 좀 힘들겠죠?(웃음) 그나마 제가 느끼는 어려움은 아직 영화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 뿐 입니다.”

  

내 삶에 힘을 주는 기아 타이거즈

‘양치기들’을 찍으며 열심히 달려왔다. 가끔 삐끗하고 쉬고 싶을 때도 물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위로해줬던 건 다름 아닌 ‘야구’였다. 그 중에서도 ‘기아 타이거즈’! 요즘도 인터넷으로 야구를 보며 꾸준히 응원한다.

“한 가지 비밀을 말씀드리자면 ‘양치기들’ 주인공인 완주의 이름은 기아 타이거즈 윤완주 선수의 이름을 땄어요. 굉장히 잘생긴 선수죠. 제가 어렸을 때 야구선수를 꿈꿔서인지 지금도 야구를 굉장히 좋아해요. 인터넷으로 야구를 보면서 응원하죠.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 받았을 땐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을 보면서 풀곤 해요(웃음). 기아 화이팅!!!”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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