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이 주로 시청하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이 아닌 이상 드라마(미니시리즈, 특별기획드라마란 이름을 단)의 공식이란 게 있습니다. 특히 여주인공의 조건은 가혹하리만치(?) 명확합니다. 20대 많아도 30대 초중반이라는 나이대, 미모, 톱스타여야 할 것 등이죠. 이는 채널 고정, 시청률 보증을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종편ㆍ케이블TV의 장르물을 비롯해 신선한 소재와 캐스팅의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젊은 세대의 시청 플랫폼이 TV수상기에서 모바일ㆍPC 등으로 급격하게 바뀌면서 이런 법칙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양상이었습니다. 10회까지 방영된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그런 변화와 가치충돌의 시대에 쐐기를 박는 작품으로 기록될 듯싶네요.

‘미스티’는 야망 가득한 방송사 앵커우먼 고혜란(김남주)과 남편인 국선변호사 강태욱(지진희), 혜란의 과거 연인이었으며 살해당한 이재영(고준)과 아내이자 혜란의 여고동창인 서은주(전혜진)를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초반에는 불륜·살인 등 치정 멜로 분위기를 이어가던 극은 점차 대기업·검찰·정치권 비리를 파헤치는 사회성을 채워가는 중입니다. 그 안에 사랑과 질투, 복수와 연민이라는 질퍽한 감정을 ‘성인 취향’으로 녹여내고 있습니다.

 

 

‘미스티’가 단박에 시청자를 사로잡은 요인은 여러 가지겠으나 ‘투톱’ 김남주(47)와 전혜진(42)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후 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김남주는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냉철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연기합니다. 남성 캐릭터들이 전유하다시피 했던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는가 하면 기득권 세력과 벌이는 공격과 수비, 반격을 실감나게 해나갑니다. 긴급체포 당시 검사와의 날선 기싸움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명료한 딕션으로 인해 앵커 브리핑도 자연스러우며 남편·전 애인·친구를 향한 복합적인 심리표현도 인상적입니다. 세간엔 도대체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화려한 미모와 스타일링이 화제가 되고 있죠.

 

 

전혜진은 아직 시청자들에겐 낯선 존재입니다. 대학로 스타로 군림했고, 충무로에선 여성 신스틸러로 주목받다가 지난해 당당히 여주인공(시인의 사랑) 자리까지 꿰찼으나 드라마 출연은 별반 없어서죠. 2007년 ‘로맨스 헌터’ 이후 11년 만의 출연이라네요. ‘미스티’에서 그는 순박한 남편바라기부터 남편의 불륜과 사망, 유산을 겪으며 복수심으로 이성을 잃은 얼굴까지 스펙트럼 넓은 감정을 단단하게 소화합니다. 선 굵고 에너지 넘치는 액팅, 디테일을 살리는 섬세한 연기 어느 한 대목에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아직은 설익은 20대, 30대가 아닌 농익은 40대의 감정을 드라마에 박아내는 두 여배우로 인해, 대사를 입이 아닌 가슴으로 요리하는 두 여주로 인해 ‘미스티’는 성찬이 됐습니다. 앞서 거론했던 ‘드라마 여주인공 캐스팅 법칙’ 따윈 훅 꺼져버립니다. 그녀들로 인해 발도 못 붙이게 되길 바래봅니다.

 

사진= JTBC '미스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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