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와 사운드에 있어 바이올린과 첼로 중간에 자리한 비올라는 목가적인 따뜻한 음색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에서 내성을 담당하고 있는 악기인 만큼 오롯이 비올라의 소리에만 집중할 기회는 흔치 않다.

비올리스트 김규현(노부스 콰르텟, 왼쪽)과 문서현(아벨 콰르텟)

9월이 오면, 국제무대에서 젊은 한국인 현악사중주단으로서 이례적 행보를 걷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과 ’아벨 콰르텟’의 전∙현직 비올리스트 4명이 한 무대에 오른다. 실내악 장인들은 총 7곡의 비올라 사중주와 이중주로 프로그램을 짰다. 4대의 비올라만으로 화려한 고음 멜로디 라인부터 중후한 최저음까지 다양한 파트를 수행한다.

오는 9월 1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포 비올라(For Violas)’로 청중과 만나는 노부스 콰르텟의 김규현(32), 아벨콰르텟의 문서현(24)을 차례로 인터뷰했다.

공교롭게 공연날이 생일인 김규현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풍부한 감성으로 정평이 난 연주자다. 1부를 여는 바흐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를 나머지 세 동료와 함께 연주한다.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곡 중 하나로, 비올라 4대 버전으로 편곡돼 색다른 묘미를 안겨줄 전망이다. 이어 노부스 콰르텟의 전 멤버 이승원과 녹스의 ‘9개의 손가락’을 연주하고, 바인치엘, 퍼셀, 녹스, 보웬의 곡을 동료들과 네 대의 비올라로 도전한다.

김규현은 이번 공연의 실질적 기획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상반기 베를린필 비올리스트 멤버들이 ‘포 비올라’란 획기적인 공연을 유튜브로 접했다. 한국의 비올라 연주자들은 이런 무대가 없음에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공연기획사 대표와 전주에서 막걸라에 육전을 먹다가 제안했다.

”노부스 콰르텟과 아벨 콰르텟이 같은 소속사에 있는 데다 전현직 비올라 멤버 4명이 모두 독일 유학파 출신이라 친한 사이였거든요. 모여서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한 거죠. 1년이 흘러 성사가 돼 기분이 좋아요. 코로나19 등 변수가 많았던 데다 흔하지 않은 조합이라 현실화될 줄 몰랐어요. 공연장에 오시는 분들도 새로운 경험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부산 태생인 김규현은 부산예고에 입학,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한 영재다. 바이올린으로 김남윤을 사사하며 한예종을 졸업했다. 2005년 스트라드 현악콩쿠르 2위를 시작으로 이듬해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를 수상했고, 2010년 올재팬 인터내셔날 컴피티션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군입대 했을 때 공교롭게 비올라를 전공하는 학교 선배가 후임으로 왔다. 대화를 나누던 중 ”비올라를 하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을 들었다. 연주 인생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였다.

"그때 사실 음악을 접으려던 참이었는데 그 선배가 선생님도 소개시켜 줬고. 배우다 보니 잘할 거 같았고, 선생님이 ‘외국 유학을 가면 어떻겠느냐’ 해서 스물여섯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어요. 유명 비올리스트이자 교수인 앙투안 타메스티를 사사하기 위해 파리국립고등음악원으로 미리 정해놨기 때문이었어요.“

꿈에도 그리던 스승에게 한 한기 동안 가르침을 받으며 파리 생활과 프랑스어에도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타메스티가 연주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독일로 넘어가게 됐다. 베를린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에 선발됐고,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베를린필 수석 출신 빌프리드 슈트렐레를 사사하며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독일 막데부르크 필하모닉 객원 수석을 역임에 이어 2018년부터 노부스 콰르텟에 합류했다. 베를린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평소에도 녹스, 마랭 마레의 곡을 좋아해요. 전통적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이 잘 드러나거든요. 아마도 마레가 비올라 연주자여서 이번에 연주할 녹스 ‘마랭 마레의 스페인풍 나폴리아’가 우리와 잘 맞을 거라 여겨요. 비올라 사운드를 충분히 들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확신하고요.“

이달 중순 벨기에에서 노부스 콰르텟 공연(2회)에 이어 15일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무대, 9월 독일, 헝가리, 벨기에에 이어 12월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노부스 콰르텟 연주회 일정이 빼곡하다.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한 지 4년째예요. 곡에 대한 감정을 청중들도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구나란 순간이 있어요. 나의 음악이 청중과 교감하는 순간이죠. 나 스스로 우리 음악에 만족하고, 청중까지 만족하는 순간이 딱 생기면 폭발적 희열이 느껴지죠. 그래서 무대에 계속 도전하는 듯해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긴 하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이나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곡을 몇 만번씩 부르거나 연주하면 너무 잘 안다고 여겨 질리기도 할 터. 김규현은 “그런 모먼텀이 오더라도 나태해지지 않고 끝가지 노력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방점을 찍는다.

코로나19 이후 독일생활을 정리하고 서울 서초구에 거주 중인 그는 취미부자다. 낚시, 캠핑, 서핑 등 활동적인 액티비티를 즐겨한다. 요즘은 캠핑에 빠져 각종 장비 구입에 혈안이다. 혼캠을 주로 가는데 유독 추웠던 올해 1월 난로가 꺼져서 입이 돌아갈 뻔했다고 고백한다. 싱글라이프 파트너인 반려견은 영국 셔틀랜드 쉽독이다.

사진=최은희 기자 Oso0@slist.kr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