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Live)’는 노희경 작가의 스물 한번째 드라마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1년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드라마 스페셜 ‘빨강사탕’으로 돌아와 JTBC의 첫 월화드라마로 기록된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를 집필한 이후 거의 매년 새 작품을 선보였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단한 재벌도 아니고, 대단한 미남미녀도 아니고, 대단히 신화적인 서사를 가지지도 않는다. 오늘이라도 당장 집앞 슈퍼에서 마주칠 법한 인물들, 그리고 언제나 우리곁에 있지만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왔다.

한국 드라마가 다양성에 있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음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대세’를 따르는 시류는 어쩔 수 없다. 장르물이 한창일 때는 약속이라도 한듯 추리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노희경은 묵묵히 한 길을 걷고 있다. 그 모습은 다 달라도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다. 

 

♦ 시대를 관통하는 담백하지만 울림있는 대사

이번 드라마는 경찰이라는 직업군을 다뤘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곁을 지나쳐가는 순찰차 안의 지구대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거대한 비리 혹은 부조리와 맞서며 정의구현을 외치는 경찰도 아니었고, 현란한 액션을 선보이지도 않았지만 ‘라이브(Live)’ 속 지구대원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강렬하게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명태포 속에 숨은 가시처럼’(공선옥 소설 ‘내 생의 알리바이’) 폐부를 찌르는 대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오늘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아무 짓도 하지 말라는 뜻은 쳐맞아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시위대가 밀어도 절대 밀리지 않으며, 동료가 맞아도 구하지 않으며, 오로지 대열만 지키며 전진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힘은 노희경 드라마 곳곳에 녹아 있었다. 시위 현장에 첫 투입되는 중앙경찰학교의 학생들에게 상관이 전하는 당부의 말은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한정오(정유미 분)와 염상수(이광수 분), 나아가 이 시대의 청춘을 어루만졌다.
 

“경찰로서의 사명감이 뭔지는 몰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양심은 갖자. 그런건 나 아니라 너도 있잖아.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네가 살릴 수 있으면 살릴 거잖아. 나쁜 놈 보면 분노하고, 잡을 수 있으면 잡을 거잖아. 비리 안 저지르고 뒷돈 안 받고 도움줄 수 있으면 주고, 네가 어디서든 그렇게 할 거잖아”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지난 몇년간  공권력을 둘러싼 논란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아가 한국 사회가 공권력이라는 단어에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는 그들의 고충을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편견에서 한발 나아가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 이광수 배성우, 연기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대본
 

이광수가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출연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틱을 겪고 있는 박수광, ‘디어 마이 프렌즈’는 효심 지극한 아들 유민호를 연기했다. 모델로 데뷔해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광수는 노희경을 만나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정유미와의 러브라인만큼이나 배성우와의 브로맨스가 시청자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혈기 넘치지만 사명감은 없는 염상수(이광수 분)가 소신있는 경찰 오양촌(배성우 분)를 만나 성장하는 과정은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오양촌은 매회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마지막회에서는  자신을 구하려다 피혐의자에게 총기를 사용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염상수를 위한 최후변론이 눈길을 끌었다. 오양촌은 징계위원회 자리에서 주눅든 염상수의 등뒤에서 “현장은 사선이니 모두 편한 일자리로 도망가라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걸 후회하고 후회합니다”라며 오열했다.

배성우는 이번 드라마에서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저열한 밑바닥을 드러내는 악역, 혹은 웃음기 섞인 조연으로 기억되던 이미지를 단번에 반전시켰다. 이제 배성우하면 불의 앞에 분노하고, 염상수의 무기를 직접 점검해주는 오양촌 경위가 먼저 연상된다.

노희경 작가가 배우들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조인성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로 잘 생긴 배우 타이틀을 벗어나 배우로서의 눈부신 성장을 보여줬다. 안장미 역의 배종옥이 가장 기대될 때도 노희경의 대본을 만났을 때다.

캐릭터를 바라보는 노희경의 애정어린 시선이, 이를 연기하는 배우를 얼마나 아름답게 변신 시키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 차기작에는 어떤 배우가 노희경의 필력이라는 날개를 달게 될지 기대한다.

사진=tvN '라이브(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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