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혜빈(33)이 11년만에 영화 '우리 연애의 이력(감독 조성은)'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또 오해영'의 아쉬움이 가시지 않은 시기에, 고군분투하며 재기를 꿈꾸는 여배우를 연기하며 관객들과 만남을 가졌다. 영화가 개봉한 지난달 29일, 삼청동 카페거리에 내려앉은 햇빛보다 눈부신 미소를 소유한 전혜빈을 만났다.

 

◆ 평범하고 따스한 영화, 그리고 지휘자의 '마음'

'우리 연애의 이력'은 한 커플의 달콤한 첫만남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가는 감정 속에 사랑과 이별을 고민하는 현실적인 로맨스까지, 우리네 평범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공감을 느낄 이야기의 끝에 희망이 서려있어 이 영화가 따스히 와닿았다.

"판타지 같은 영화는 아니예요. 충분히 내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죠. 아픔을 간직한 여자가 성장하고 치료받는 시나리오에 이끌렸어요. 영화 제작진 모두가 한 여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감정으로 만들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들의 따뜻한 감성이 살아날 거예요"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찍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조성은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름다운 조성은 감독의 프레임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런 감독이 만드는 영화의 색감은 어떨지 궁금했다.

"저랑은 좀 다르세요. 굉장히 여리시고, 말을 할 때도 단어 하나하나 예쁜 것만 골라 쓰는 섬세함 등이. 사람의 장점을 잘 파악하시는 분인 것 같아요. 내심 알아줬으면 했던 내 장점이나 노력들을 캐치해주시더라고요. 이런 분과 작업을 하면 어떨까, 기대가 많이 됐어요. 일본 영화 같은 감성의 소소하고 따뜻한 영화를 만드시지 않으실까 싶었죠"


◆ 이혼은 했는데, 헤어지지 않았다

영화는 이별은 했지만 헤어지지 못하는 두 남녀의 웃픈 로맨스를 그린다. 이혼 후에도 여전히 한 집에서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여배우 우연이(전혜빈)와 영화감독 오선재(신민철)의 알쏭달쏭한 관계가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묘하게 공감이 갔다.

"누구든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하는 시기가 찾아오잖아요. 마음이 끝이 나 이별하는 커플들도 있고, 아직 그 마음이 끝나지 않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별하는 커플들도 있죠. 개인적으로 미련이 깃든 이별은 헤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현실이 주는 압박이라든지, 놓치기 싫은 자존심이 만들어낸 상황일 뿐이죠"

애매모호한 사랑을 이어나가는 연이와 선재와는 다르게, 일단은 헤어지기 전에 백번천번 참고보는 편이다. 뚜렷한 연애관은 없다. 굉장히 상대적이다.

"남들이 쉽게 헤어질만한 상황이 오더라도 저는 무조건 참고 봐요. 마음이 약한 편이라 냉정하게 끊어내지도 못했고, 항상 시간을 두는 편이었죠. 그러다가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헤어졌어요. 사실 이별하는 모습은 사람에 따라 상대적인것 같아요. 그날에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있고,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이별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생각하면 애틋한 사람도 있어요"


◆ '오해영'이 준 아쉬움, 힐링은 '우리 연애'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역할을 가리지 않고 도전했지만, 그렇게나 기다리던 '대박' 작품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데뷔 15년차에 '또 오해영'을 만났다. 덕분에 상승주가를 타고 있지만, 롤타이틀 '그냥 오해영'이 아닌 동명이인 '예쁜 오해영'을 연기했기 때문에 따라붙는 어려움도 있었다.

"연이 못지 않게 오해영 캐릭터에도 애정이 많이 갔어요. 오해영이 사랑받는 역할은 아니여서 저까지 우울해지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애정 결핍이 크게 느껴졌어요. 공허하고 외로워질 때가 많았고,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내 편이 없다는 생각도 들게 되더라구요. 이 우울함이 정신적인 걸 넘어 몸 건강까지 위협하는 것도 실감했죠"

'또 오해영'에서 사랑받지 못해 굶주렸던 마음은 '우리 연애의 이력' 속 우연이를 통해 치료받았다. 두 캐릭터가 다른듯 비슷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연이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증을 연기로 해소하려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오해영과 우연이는 서로 상반된 캐릭터지만 '애정결핍'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오해영'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우리 연애'에서 실컷 사랑받으며 충족시키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힐링 역할을 톡톡히 해준 비타민 같은 영화예요"


◆ 알을 깨고 나온 아프락사스처럼 훨훨~

과거 온갖 예능을 오가며 '이사돈'으로 흥하던 전혜빈은 어느날 자취를 감췄다. 대중들이 모르는 사이, 안 좋은 일이 어깨동무를 하고 오듯 한꺼번에 다가왔다.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던 중요한 시기였다. 회사를 나와 혼자 일한 그 1년 반은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 사기란 사기는 다 당해본 것 같아요. 저는 저처럼 꿈이 있고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사람한텐 사기를 못칠 것 같은데, 정작 당해보니 현실이라는 게 녹록치 않더라구요. 그 와중에 집안에도 문제가 생기고 빚이 생겨났어요. 마치 연이처럼 무기력하고 술에 취해있던 상태로 1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입은 상처가 반항심을 불러일으켜 성격도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연애의 이력'의 마지막은 우연이가 다시 용기를 내며 오디션을 보는 장면으로 장식됐다. 전혜빈에게도 배우의 길을 밟으며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과거를 극복하고 재기하기 위해 항상 하고팠던 연기를 선택했다.

"가수로 데뷔하긴 했지만, 원래 연기자가 꿈이라서 학교도 연기과를 나왔어요. 연기를 시작하고 눈총도 많이 받았죠. 드라마 '인수대비'를 찍을 때 어떤 스텝분은 절 반대했었다며 대놓고 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잘못 생각해서 미안했고, 본인도 제게서 배운 점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대중의 인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나를 비판했던 사람의 마음을 돌린 게…"


◆ 직업란에 당당히 '배우'라고 적게 될 날까지

어릴 땐 비행기를 탈 때마다 탑승자 직업란에 스튜던트(학생)라고 썼다. 배우라고 칭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졌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젠 슬슬 액트리스(여배우)라고 쓰고 있다. 가수 겸 배우라고 소개됐던 지난 날들과 달리 이젠 한국의 배우라고 소개된다. 그때마다 참 오묘하다.

"어느날 직업란에 액트리스라고 당당히 쓰고, 배우 전혜빈입니다 라고 하는 게 어색해지지 않겠지.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겠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설레고 행복해져요. 예전엔 배우가 되고 싶어 이사돈이란 수식어도 싫었는데, 막상 그게 떨어지려고 하니까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들어요. 하지만 배우 전혜빈이란 이름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도록 일을 촘촘하게 많이 할래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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