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재현(51)이 나쁜 남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말 종영한 KBS2 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 김길도의 잔상이 옅어지기도 전에 영화 ‘봉이 김선달’(6일 개봉)에선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 성대련으로 스크린을 지배한다. 5일 오후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옥상 카페에서 악역 마스터를 만났다. 특유의 직설화법이 여름비와 함께 시원하게 쏟아졌다.

 

 

■ “악역 당분간 No!...담백한 표현이 노하우”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부터 시작해 지난해 드라마 ‘펀치’의 이태준 지검장 등 사악하고 비열한 조재현표 악역은 어느새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이태준이 신분상승을 위해 발버둥치고, 김길도가 잔인한 사이코패스 느낌이었다면 성대련은 사이즈가 틀리다. 목표를 향해 갈 뿐이다. 스스로 힘을 키워야한다는 신념에 청나라와 직접 딜을 하며, 이를 애국이라 합리화한다. 현재 정치인이나 재벌 가운데서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애국이라, 국부를 창출했다고 강변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성대련은 그런 비뚤어진 재벌, 정치가의 모습이 담긴 캐릭터다. 악역으로 도배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악역을 하지 않아야겠다.(웃음)”

악역은 배우의 도전 욕구를 한껏 자극하지만 설득력 있는 표현 면에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악역의 화신’ 칭호를 듣는다는 건 그만큼 역량이 출중하다는 방증이다.

“배우 입장에선 다 공감하면서 연기한다. 일상에서 내면의 악을 표현하면서 살기 쉽지 않은데 연기하면서 토해내니 시원하다. 전형적인 악역 연기는 피해야 하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강박도 불필요하다. 상황에 집중하다보면 뭔가가 나온다. 대본 속 ‘비열한 눈빛으로 쳐다본다’란 지문대로 표현하면 관객이 힘들어서 못 봐준다. 비열한 눈빛이지만 표현은 담백한 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상대역 후배에게 '나쁜 놈' '죽여버리고 싶은 XX'가 돼야한다. 선배나 선생님이 돼버리면 그런 눈빛이 안나온다. 만만하게, 편하게 보여야 한다.”

 

 

■ 바로 시우민 유승호...20대 젊은피와 콜라보

‘국수의 신’에선 B1A4 바로가 성대련의 아역을 맡았고, ‘봉이 김선달’에선 엑소 시우민과 20대 청춘스타 유승호가 출연했다. 

“아이돌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자연스럽다. 예전엔 준비가 안된 채 진출해 문제였는데, 지금은 대형 기획사에서 충분히 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문제될 바가 없다. 바로한테도 ‘계속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준비돼 있고 열정 있는 애들이 도전하는구나, 깨달았다. 시우민도 주말에 해외 일정이 빡빡한데도 촬영장에선 일반 조단역처럼 행동했다. 폼 잡는 법 없이. 기특했다.”

‘봉이 김선달’에서 젊고 유쾌한 인물로 재탄생한 김선달 역을 맡은 청춘스타 유승호에 대한 애정은 특별했다. 특히 유승호는 조재현의 딸인 조혜정과 웹드라마 ‘상상고양이’에서 커플 연기를 한 인연이 있다.

“웹드라마, 코믹사극 등 승호의 선택이 파격적이었다. 군 제대 후 자유롭게 활동하는 듯 보인다. 요즘 후배들 중에 ‘저건 아닌데’ 싶은 친구들도 있다. 스타 위주 시스템, 커지는 중국시장으로 인해 제작현장이 그 친구들 중심으로 휩쓸려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굉장히 속상하고 자괴감마저 생긴다. 그런데 승호는 그러지 않는다. 승호 같은 친구만 있으면 영화판이 정말 아름다워질 거 같다. 밝고 건강한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 대중문화계 전방위 활약 ‘에너자이저’

배우뿐만 아니라 ‘연극열전’ 기획자로,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 대표로 연극 대중화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과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4년부터 모교인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후학을 양성 중이다.

“배우를 선택한 건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영화와 연극, 짜릿한 초치기 현장의 드라마까지 하고 있으니 행운이다. 영화제와 극장(수현재씨어터) 운영도 틈날 때 같이 하는 거니까 재밌다. 매주 한 번씩 강의 차 부산에 내려가는데 KTX를 타는 순간부터 힐링의 시간이다.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도 신명나는데다 부산에서 푹 쉬다 돌아오는 게 금쪽같다. 이 모든 게 내 성향과 맞는다. 하지만 제1순위는 촬영이다. 촬영에 들어가면 다른 건 올 스톱이다.”

말을 이어가던 중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나갔다. 지난 1일 개막한 창작연극 ‘민들레 바람되어’가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초연 당시 개발부터 극작과 연출, 출연 등에 참여했던 그가 완전히 빠진 상태에서 올렸는데 기대 이상의 호평을 받는 중이다.

“어쩌면 나한테 맞춰진 연극이었는데 내가 빠지고 나서 더 좋아졌다. 이 작품 이후 ‘황금연못’ ‘그와 그녀의 목요일’ 등이 성공하며 중년세대를 대학로로 다시 불러들였다. 브로드웨이처럼 다양한 연령대가 공감하고 즐기는 연극을 만들어내는 게 내 바람이다. 단순히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유익한 상업연극이 필요하다. 연극제작을 해서 경제적으로 선순환 되기가 쉽지 않는데 운이 좋아서 잘 버티는 중이다.”

 

 

조재현은 자신의 역할을 ‘상업연극’으로 선뜻 규정했다. 대중에 바투 다가서며 돈 되는 웰메이드 상업연극을 제작해 순수 연극을 하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대학로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 ‘코미디가 창궐하는 공간’이란 편견을 깨트리고 싶다.

 

■ “봉이 김선달, 긴장과 유쾌한 드라마 공존”

‘봉이 김선달’ 홍보차 인터뷰에 나섰는데 #시우민 #아이돌 #천정명 #수지 디스와 같은 키워드 기사들이 폭주했다며 본분(?)에 충실하겠다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동안 작가주의 독립영화 위주로 출연해서 상업영화도 해보려던 차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작품 분위기는 아니나 역할은 익숙해서 괜찮겠다 싶었다. 반면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인데 너무 다른 색깔의 연기가 되면 전체와 잘 묻지 않을까봐 걱정되더라. 시사를 보고나서야 안심이 됐다. 온 가족이 여름에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젊고 귀여운 김선달이 사기 치는 오락영화이면서 내가 합류해 극에 긴장감을 살려낸다. 긴장도 있고 드라마도 있다.”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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