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48)이 ‘충무로를 이끄는 40대 남자배우’ 대열에 당당히 입성했다. 27일 개봉하는 휴먼 드라마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에서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중 인공지능 로봇 소리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 해관 역을 맡았다. 첫 단독 주연 영화다. 영하 14도의 강추위가 몰아친 19일 오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로부터 들은 아홉 가지 휴먼 포인트.

 

① 소리

시나리오를 봤을 때 신기했고 호기심이 생겼다. 로봇이 나오는 이야기인데 굉장히 서정적이고 따뜻했기 때문이다. 해관과 로봇의 조합은 ‘이상한 기계를 만나서 서로를 인정하며 소통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였기에 연기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대신 풍성한 액션-리액션을 위해 감독님에게 현장에서 소리의 목소리를 연기할 보이스 액터를 부탁했다. 전담 배우가 있다면 뭐라도 하나 더 나오지 않겠나. 담당자에겐 “너무 기계처럼 말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액터 입장에서 캐릭터를 상상하고, 자신의 연기를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② 이희준 이하늬 전혜진

희준이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너무 고마웠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캐릭터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누가 할까 했는데 하늬가 받아들여줘 감사했다. 내 와이프로 잠깐 나온 혜진이(극단 ‘차이무’ 후배)한테도 고마웠다. 참가해준 모든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첫 주연이어서인지 이렇듯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됐다. 캐스팅이 잘 안되면 나 때문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겁이 났고...주조연, 조연이었던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긴장과 부담이 컸다.

 

 

③ 대구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마음을 흔든 건 대구가 배경이라서다. 2002년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거기서 자랐으며 연극배우 생활을 했기에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설렘을 안겨준 장소다. 특히 영화에 깊이 들어오진 않았으나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가 등장하기에 혹시라도 누를 끼칠까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촬영 전에 스태프들과 함께 대구에 가서 추모비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언론시사회 전에도 다시 한번 찾았다.

 

? 딸내미

감정 몰입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잠시 우리 애를 상상한 적이 있다. 극중 차안에서 딸 유주(채수빈)와 언쟁을 벌일 때는 내 경험을 대입했다. 딸과는 묘하게 싸우곤 한다. 야단치다가도 싸움으로 바뀐다. 영화에서처럼 딸과 크게 싸운 날, 사건이 발생했다면 해관만큼 죄책감을 가졌을 거다. 10년에 걸쳐 찾아다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딸아이는 유주처럼 음악이나 춤, 연기에 소질이 전혀 없다. 정직하고 땀 흘리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⑤ 부성애

부모 마음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다. 자식이 제대로 서서 세상 밖으로 나갈 때까지 보호해주고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다. 자식은 그런 부모 슬하에서 서서히 배우며 힘을 키워가는 거고. 아이의 성장이 부모와 헤어지는 걸 연습해가는 과정이지 싶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아주 평균적인 40~50대 중년 가장이 엉뚱한 기계를 만났을 때 어떻게 교감하고 소통할까...이 영화에서 내가 완수할 의무이자 목표였다.

 

 

⑥ 연극

재수시절 연극을 시작했다. 남 앞에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영화광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를 많이 봤던 게 동인이 됐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을 하다가 군 입대했다. 제대 후 연극하겠다며 1년 정도 아버지와 연락을 끊은 채 지내기까지 했다. 26세 무렵,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져 모든 걸 포기하고 집에 내려갔다.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어 한동안 막노동을 하다가 다시 연극계로 돌아갔다.

 

⑦ 차이무

2003년 입단한 차이무의 소속 배우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1년에 1~2편은 할 계획이었는데 물리적인 시간문제 탓에 그러질 못하고 있다. 갈수록 연극작업할 때 예민해진다. 나를 알아보고 관찰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처럼 흥행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부담은 없다. 오랜 벗들과 계속 만날 수 있어서 좋고 관객과 직접 만나는 카타르시스가 짜릿하다. 기분이 좋아져서 몸이 가뿐해지고 힐링되는 느낌이 든다.

 

 

⑧ 송강호

강호 형의 친근함, 보통사람 눈높이에 맞춘 연기와 캐릭터에 큰 영향을 받았다. 나 역시 그러려고 노력한다. ‘하울링’에서 공연했을 때 엄청 후달렸다.(웃음) 되돌아보면 ‘골든타임’의 의사 최인혁, ‘미생’의 오상식 과장은 대중 입장에서 나보다 못해 보이는,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캐릭터라 사랑을 받았던 듯하다. 본질적으로 평범한 인물이 편하다. 멋있는 역할은 되질 않는다. 강호 형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평가는 굉장히 기분 좋다. 그의 평범함 속의 비범함, 강렬함을 따라가고 싶다. 차츰 내 방식이 보여서 다행으로 여긴다.

 

⑨ 휴머니즘

소리와 연기하면서 울컥했던 적이 있다. 천문대에서 함께 별을 보던 장면에서 소리가 “난 더 이상 그 일(도청 및 감시)을 안 할 거야” 하는데 훅~ 오는 게 있었다.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돕기 위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나아가는 모습은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기계인 애도 자신의 목표를 끝까지 잊어버리거나 포기하지 않는 점이 관객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사진 전주리(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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