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다. 핼러윈데이를 하루 앞둔 10월 30일 밤 ‘서울의 멜팅팟’ 이태원에 국가는 없었다. 그날 발생한 압사 참사로 인해 사망자 155명, 부상자 152명이 생겼다.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에 대다수의 사람은 처음엔 꿈인 줄만 알았다. 이내 악몽으로 바뀌었다. 충격과 비통함에 잠식됐다. 희생자 대부분이 20대 그리고 10대와 30대였다.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무고한 청춘들이 축제의 길거리에서 사그라들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피할 수 있었던 재난이라고 입을 모은다. 3년 만의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10만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 상황에서 관계당국의 사전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고, 질서와 안전을 유지할 경찰병력이 투입돼 동선관리만 했더라면 이같은 참극은 막았을 것이라 진단한다.

하지만 이태원 거리의 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이 사전 모임을 갖고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참사 사흘 전인 지난 26일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 이태원역 관계자와 이태원관광특구상인연합회 측은 핼러윈을 맞아 간담회를 했다.

당시 회의에 서울시는 참석하지 않았고 안전관리 대책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과 마약 등 강력범죄 대처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경찰이 참사 당일 밤 이태원 거리에 배치한 137명의 인력은 사실상 범죄 예방과 단속을 맡은 치안 인력이었던 셈이다. 당시 회의에서 일방통행로 설치와 좁은 골목길 진입 통제, 이태원역 무정차 등 적극적인 사전 안전조치가 마련됐더라면 이같은 비극은 통제할 수 있었을 터다.

사고가 발생한 뒤 대통령실, 행정안전부장관, 서울시, 용산구청, 경찰청의 발언들은 귀를 의심케 한다.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맞을까 싶다. 행사의 주최자가 있고 없고를 따진다. 없다면 혼란과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게 국가와 공권력이 할 일이다.

국가 부재를 실감한 것도 숨이 턱 막히는데 어느 누구도 사과하질 않는다. 거리를 지나는 일반인도 젊은 희생자들을 향해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하는 마당에.

책임과는 별개의 “참담”이란 단어를 약속이라도 한 듯 입에 올린다. 와중에 “영혼 없는 사과는 안하겠다”는 소신 발언부터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란 거리두기 발언이 난무한다. 이러니 국정의 실질적 책임자도 아닌 야당 대표의 “국민께 깊이 사죄드린다”는 당연한 발언이 신선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추궁이 아닌 추모의 시간” “사고수습이 우선이다” “진상규명이 아닌 애도할 때”란 말을 회유하듯 강박하듯 꺼내든다. 치유와 위로는 책임을 가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고 원인을 밝혀내야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진상을 정확히 알아야만 상실의 고통을 털어내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애도가 가능해진다는 걸 남겨진 자들은 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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