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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봉투산책> 여유와 상상으로 나와 너를 알아가는 성북동 산책 ②

Part 3 : 느낌가게

산책은 햇볕 뜨거운 일요일 오후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했다. 첫 장소인 성북동 ‘느낌가게’로 가기 위해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동 성당 앞에서 내린다. 그리고 성당 건너편 경사진 골목으로 올라간다. 2년 전에 왔을 때도 이런 길이었나? 또렷하지 않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곧 골목 안의 작은 고성 같은 느낌가게가 나타난다. 간판이 크거나 하지 않아 눈에 확 띄진 않지만 골목을 한참 헤맬 정도로 찾기 어렵지는 않다.

느낌가게는 기본적으로 카페라고 볼 수 있지만 특별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느낌가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날의 느낌이나 기분, 감정 등을 보관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작은 종이에 그날의 느낌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느낌을 종류별로 담아놓는, 느낌상자라는 작은 나무상자 안에 그 느낌을 보관할 수 있다. 언젠가 그날의 느낌이 궁금해지면 다시 열어볼 수 있다.

2년 전 이맘때쯤 이곳에 와서 느낌을 보관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내가 기록하고 보관했던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날의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기쁨? 설렘? 혹시 사랑? 이 상자들 중 아직 어딘가에 보관되어있을 그 날의 느낌과 기록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아 굳이 찾지 않는다.

다섯 명은 시원한 테라스(?) 그늘에 앉는다. 본격적인 산책을 하기 전 워밍업 같은 시간을 보낸다. 각자 하나씩 받은 비닐가방에서 준비된 종이를 꺼낸다. 나와 너를 알아가는 과정의 첫 단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산책이 끝날 때까지 각자 한 명씩 관찰해야 할 사람 정하기. 정해진 사람을 관찰하며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들을 골라주기 위해서였다.

번호 제비 뽑기로 정한다. 그리고 산책을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오늘 산책의 키워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산책의 키워드는 ‘여유’와 ‘상상’. 평소에 나름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여유롭게, 그리고 평소보다 풍부한 상상과 함께 산책을 하는 거다.

 

 

Part 4 : 성북동 골목

느낌가게를 나와 본격적으로 성북동 골목을 탐험한다. 저 멀리엔 산이 보인다. 이 골목도 산자락이다.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다.

오래된 나무전봇대와 작은 텃밭, 휴식공간이라고 써있는 긴 나무의자 등 낯익으면서도 낯선 것들 주변으로 작고 소박한 집들이 이어진다. 그러다가도 굉장히 감각적으로 만들어진 테라스나 고급스러운 대문을 가진 집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성벽같이 우뚝 솟은 높은 담벼락을 가진 저택들도 공존하고 있는 동네. 그 저택들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3층 창문에까지 눈에 띄게 철저한 보안장치가 되어있었다.

집 안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삼엄하게 성벽을 세워놓고 살고 있을까? 반면에 작은 집들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그 안을 몰래 슬쩍 들여다보니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이상한 골목이다.

여유와 상상력을 가지고 이 이상한 골목을 천천히 걷는다. 같은 공간을 걷고 있어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은 각자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것을 바라봐도 느끼는 것이 서로 다르기도 하다. 각자의 그런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며 남들과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와 다른 남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진에 관심이 많다던 남자분은 쉼 없이 사진을 찍으며 가장 뒤쳐져 걷는다. 그의 프레임 안에 종종 내 뒷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나는 그의 사진을 위해 여러 동작들을 취해가며 적극적으로 모델 역할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미적으로 훌륭한 외모는 아니지만 자신감 있게 자세를 취한다. 이상하게도 사진 촬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 재미 있다.

기억에 남는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나름대로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다. 사진을 찍어가며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씩 더 풀려갔다.

그런데 나 말고도 좋은 모델이 또 있었다. 이 동네의 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모델처럼 도도하게 걷고 있었다. 그런 고양이를 보며 오늘의 내 이름을 드디어 찾았다. 저 고양이처럼 나도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진 모델이 되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고양이 모델’이라고 이름을 정한다. 평소에 나를 규정짓던 다른 간판을 달지 않고 고양이 모델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어느 집 담장 너머로 저물고 있는 해가 눈에 들어온다. 이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해질녘 성북동 골목여행? 산책? 화보촬영? 짧은 거리를 오랜 시간 동안 정말 천천히 걸었다.

 

 

출처= http://magazinewoom.com/?p=1718

 

신형섭  chacks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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