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전업주부 차정숙(엄정화)의 레지던트 도전기인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5회 만에 시청률 12%(닐슨코리아 유료가구)를 돌파하는가 하면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이 발표한 4월 3주차(17~23일) 화제성 조사에서 드라마 부문 1위, OTT를 포함한 통합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출연자 화제성에선 엄정화와 김병철이 나란히 1, 2위를 휩쓸었다.

신인작가의 탄탄하고 사실적인 극본에 다소 무거울 법한 현실 공감 내용을 유쾌한 코미디로 풀어낸 연출, 에피소드마다 터지는 카타르시스, 엄정화를 비롯한 김병철·박준금·김미경·민우혁 등 배우들의 호연이 인기바람에 풀무질을 해대고 있다.

이 드라마는 실상 꽤나 잔인한 현실 풍경을 투사한다. 차정숙은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 의대에 입학, 황금빛 커리어를 꿈꿨으나 예기치 않은 임신과 결혼, 출산으로 전공의 과정을 포기했다. 의사인 남편, 까탈스런 시어머니, 두 아이를 위해 24시간을 갈아넣어 완벽한 가정을 일궜다 자부했다.

하지만 생사의 고비에 선 순간, 평생을 헌신한 아내가 위험한 줄 알면서도 결국 간이식을 거부한 이기적인 남편 및 시어머니와 맞닥뜨리며 현타(현실자각 타임)를 세게 맞았다. 20년 동안 가정을 꾸렸음에도 자신의 명의로 된 것이라곤 휴대폰 하나밖에 없는 일상은 호러 판타지였다.

지금부터라도 ‘나’로 살기로 각성한 차정숙은 가족들의 반대와 세상의 편견을 깨고 당당히 레지던트 1년차 도전에 성공한다. 어렵사리 대학병원에 입성했지만 꽃길은 커녕 자갈길의 연속이다. 가장 가까운 자들부터 발목을 잡는 법.

대학 동기이자 병원 동료 의사 최승희(명세빈)와 불륜 관계인 남편 서인호(김병철)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시어머니(박준금)는 아들의 출세길에 장애물이 될까봐, 고3 딸 이랑(이서연)은 미대입시에 지장이 있을까봐 죄다 도끼눈을 치켜뜬다. 한술 더 떠 '세컨드' 최승희까지 지위를 앞세워 가세한다.

20년 만에 복귀한 의료현장에서 40대 중반 '초짜'의 실수와 시행착오는 마침표가 없다. 면접 때부터 "나이 든 레지던트를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겠느냐. 그래서 (채용을)기피하는 거야"란 차별적 발언을 듣는가 하면 병원 간부에게 호출 당해 "젊은 친구들이 잘못하면 실수지만 나이 먹은 사람이 못하면 무능인 거야”란 핀잔을 듣는다.

이상의 극중 사례는 현실 속 전업주부와 워킹맘, 100세 시대 '인생 2막'을 꿈꾸는 경단녀와 중장년 재취업자들이라면 무시로 겪는 일들이다. 이러니 '닥차'에 감정이입하는 게 아닐까. 특히 나이 많은 게 핸디캡인 우리 사회(특히 연예계)에서 55살의 나이에 46살 차정숙을 연기하는 엄정화는 풍부한 표정과 장르 변주 연기로 공감지수를 더욱 높인다.

딸의 투정에 “엄마 희생이 당연한 거니? 너희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때가 됐다”라면서도 “엄마도 한 번쯤은 나 자신으로 살아보고 싶어. 지금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건 너희들의 응원과 지지야”란 말로 찡하게 만든다. 해당 병원 간부에겐 "나이가 많다고 해서 실수까지 무능으로 취급받는 건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배울 게 많은 1년차일 뿐입니다"라고 항변한다.

힘겨운 시대이다 보니 위로와 응원의 노래, 드라마, 영화는 많다. 요즘 '닥터 차정숙'이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저런 한계를 가졌으나 배려를 바라지도, 지적과 모진 말에도 실수를 인정하며 핑계 대지 않는 그녀의 모습 때문이지 않을까.

차가운 현실에 의기소침하기 보다 새로운 내일을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 차정숙의 현명함이 '존버' 세대에겐 그 자체로 응원이자 위로다.

사진=JTBC '닥터 차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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