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Ballad)란 서양 고전음악의 한 장르로, 본래는 중세시대 음유시인들이 불렀던 시와 노래의 형식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후 주로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느리고 서정적인 음악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로 발전했다.

한국에선 1980년대 후반 故 유재하, 이문세, 변진섭 등을 통해 태동하기 시작해 1990~2000년대 전성기를 맞게 된다. 전람회 '기억의 습작'(1994), 이승환 '천일동안'(1995), 임창정 '그때 또 다시'(1997), 조성모 '아시나요'(2000), 김범수 '보고 싶다'(2002), 이승철 '인연'(2005), 성시경 '거리에서'(2006)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쏟아졌다.

이 당시 정통 발라드 외 김종서, 김민종, 김정민, 버즈 등으로 대표되는 록발라드, 윤건, 나얼이 소속된 브라운 아이즈가 유행시킨 R&B발라드 등 발라드는 다양한 장르 혼합 형태로도 인기를 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발라드는 전성기 시절의 독보적인 위세에서 내려오고, '아이돌'이 한국 가요계의 중심에 서게 된다. 발라드의 '사랑 타령'이 예전만큼 먹혀들지 않게 됐다.

2000년대 발라드 전성기를 이끈 성시경은 후배 발라더 규현이 EP 'Restart'를 발매한 것을 기념해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그와 만났을 때 발라드가 최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이유로 '시대의 변화'를 들었다.

"너무 옛날 감성의 노래인 거야. 옛날에는 헤어지면 아예 사별이라니까. 개인 전화가 없다니까. 그 여자 집 번호밖에 없고. 이사 가면 전화번호가 바뀌는 거고. 그럴 때의 노래야 발라드는. 나는 2년 만나면 2년 쉬고 3년 만나면 3년 쉬고 했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나. 쉬려고가 아니라 되지가 않으니까. 그런 감성이 발라드야."

"근데 요즘 누가 그런 짓을 해. 2년이면 30명 만나겠다. 클럽에 가고 편하게 편하게 썸도 타고 빨리빨리 좋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The Black Eyed Peas 'I Gotta Feeling', 난 이 노래 듣고 깜짝 놀랐거든. 난 돈 있으니까 쓰고. 오늘 느낌이 좋아, 클럽 가면 되게 예쁜 여자 만날 것 같아. 그러니까 전 세계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거야."

또 성시경은 '셀프메이드'(self-made)를 언급했다.

"예전에는 내용물? 좋은 멜로디와 좋은 가사를 사람들이 들어줬어. 그런데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대신 노래해 주는, 내가 처음 시작했던 그런 게 점점 힘을 잃어간다고 해야 되나? 지금은 내 이야기를 하는 음악이 너무 사랑받는 시대인 거야. 명장의 곡을 이 사람이 부른다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내가 하는 음악 시장에 들어와 버린 거야. BTS도 그렇고. 어쨌든 아티스트가 동일시 돼 있는. 아티스트가 내가 아닌 사람을 연기하는 시장이 아니라."

물론 각광받는 '자작' 시도를 발라더들도 안 해본 건 아니다. 오늘(22일) 무려 10년 만에 정규 앨범 '여행'을 발매하는 김범수는 지난 정규 8집 'HIM'에서 직접 프로듀싱과 곡 제작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보컬리스트로서의 역할만을 자처했다. 싱글리스트와 인터뷰에서 김범수는 "직접 곡을 써보고 가사도 써보면서 든 생각은 내가 싱어송라이터 포지션으로 가야 할지, 보컬리스트로 가야 할지"라며 "제가 좀 더 좋은 노래를 내 노래로 만들고 하는 게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범수는 발라드의 인기 하락에 대한 조금은 다른 시선을 제시했다.

"어느 순간 제가 내린 정답은 우리가 어떻게 보면 너무 큰 사랑을 받은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잘 타고나서 너무 원 없이 사랑도 많이 받았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 우리가 마치 조금 주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몰라요."

맞는 말이다. 사실 발라드는 최정상은 아니어도 아직까지 가요계에서 건재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발매된 성시경·나얼의 특급 컬래버곡 '잠시라도 우리'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기존 세대들의 활약과 더불어 '광화문에서'의 규현, '너였다면'의 정승환, '헤어지자 말해요'의 박재정 등이 발라드 명맥을 훌륭히 잇고 있다. 아이유가 지난달 발표해 각종 음원차트 1위를 휩쓸고 있는 미니 6집 선공개곡 'Love wins all' 역시 발라드 장르에 속하는 노래다.

"우린 우리의 영역이 남아있고 내가 계속 할 일 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김범수)

"발라드를 하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요즘에 별로. 저는 그냥 이 사회가 어떻든 간에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처럼 있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주류가 될 수는 없겠지만, 댄스곡이든 힙합곡이든 이런 곡들이 주류일 텐데 저는 그냥 이 거 하고 싶어요."(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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