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서울예술단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던 배우 최정수(41)가 극단 밖으로 외출했다.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를 무대화 한 창작 초연 뮤지컬 ‘노서아 가비(연출 황순심)’를 통해서다. 서울예술단 담장을 넘어 설렌다는 그는 다양한 작품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 외롭고 고단했던 남자 고종

2002년 서울예술단 안무 단원으로 입단한 최정수는 그동안 가무극 ‘뿌리깊은 나무’ ‘신과 함께 저승편’ ‘바람의 나라’ ‘국경의 남쪽’ 등을 통해 연기와 노래까지 소화하며 배우로서의 자질을 키워왔다. 영화 '가비'로도 개봉했던 이번 작품에서 그는 개화기 쇠락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을 맡아 멋을 알지만 외롭고 힘이 없어 괴로운 남자의 내면을 깊이 있게 연기했다.

원작과 같이 이번 작품은 개화기 조선을 배경으로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고종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바탕으로, 이를 둘러싼 조직간의 암투와 사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커피의 전래, 아관파천, 커피하우스, 독립문 주춧돌 행사, 러시아 황제 대관식 등 당시 역사적 사실들은 고증을 통해 무대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고종은 조선의 황제였지만, 19세기 말 열강 사이에 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이는 불쌍한 남자였죠. 일본의 억압에 못이겨 백성들에게 단발령을 내리고 그는 러시아로 도망을 가죠. 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고종을 한 남자로서 바라봤고, 속으로 어떤 고민들을 했을지 상상해 봤어요. 관객들을 설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 '잃어버린 얼굴'선 일본 공사 미우라

‘노서아 가비’가 공연되는 같은 시기 서울예술단에서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무대에 올린다. 최정수는 이 작품에도 출연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일본 공사 미우라로 변신한다.

"서울예술단의 허락이 없었다면 '노서아 가비' 출연은 꿈도 못 꿨겠죠. 저희 극단이 배우들의 외부 활동을 막지는 않아요. 극단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요. 박영수, 김도빈, 조풍래 등 서울예술단 출신 배우들이 외부 작품에 출연해 우리 극단의 실력을 뽐내는 걸 보면 늘 뿌듯했죠. 그런 점에서 부담이 되긴 해요. 두 작품에 동시에 출연하지만 고종 역은 더블캐스팅이고, '잃어버린 얼굴'에서 미우라 역은 단역이라 큰 무리는 없어요. 다만 '노서아 가비'에서 명성황후가 죽어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남편 고종을 연기하다가 ‘잃어버린 얼굴’에서는 명성황후를 시해해야 하니 괴롭긴 하더라고요."

 

◆ 아이돌 여인들과의 호흡

'노서아 가비'에는 최정수 외에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혜미와 금조, 멜로디데이의 여은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매력적 인물 따냐로 생애 첫 뮤지컬에 도전한다. 따냐는 고종에게 커피를 올리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이자 희대의 사기꾼이다.

"어린 친구들을 보니 제가 막 극단에 들어왔들 때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고민하고 답답해하며 죽도록 연습했던 시절이요. 그래도 아이돌 출신이라 그런지 순발력들이 뛰어나고 금방 배우더군요. 그리고 뭐든 배우려고 하고, 성실히 하려는 모습에 감명 받았어요."

 

◆ 최정수의 무용·노래·연기 

최정수의 전공은 무용이다. 2003년 한국무용연구회 젊은 안무가전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연기보다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캐릭터에 더 자신이 있다. 40대이지만 여전히 온몸의 근육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안썼던 근육을 썼다는 느낌이 들때 흥분한다.

"요즘 군살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몸을 마구 쓰고 싶은데. 무용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쓰지 않던 근육을 썼을 때 희열은 안느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아쉽게도 고종은 왕이라 전혀 몸을 쓰지 않아요.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세 걸음 정도 걷다가 다시 앉는 정도가 다죠. 하하. 다만 손끝으로 아니면 얼굴 각도로라도 고종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노서아 가비'는 연출 황순심, 음악감독 김진아, 안무 장대욱 등이 맡아 11월11일까지 서울 서초역에 위치한 흰물결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공연문의: 02) 3454-1401

 

사진 라운드테이블(이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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